[한국고전소설론] 고전소설 배격론의 실체 - 18세기 문인들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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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고전소설론] 고전소설 배격론의 실체 - 18세기 문인들을 중심으로 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들어가며
2. 배격론에 대하여
2.1. 배격의 이유
2.2. 배격론의 본격화
3. 정조의 문체반정
3.1. 문체반정의 배경.
3.2. 배격론을 지지하던 문인들.
3.2.1. 정약용의 문체책
3.2.2. 이덕무의 소설배격론

4. 나가며
*참고문헌

본문내용

소개한 것인데, 이에 대해 이덕무는 소설의 제작과정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그는 소설의 작자는 시골 골목의 학구들일 뿐이며, 소설 창작의 도는 식욕과 같은 매우 저급한 욕구에서 나온 것으로 진지하지 못하고 작품성이 없다는 생각이 담겨 있다.
3.2.2.4 소설배격의 새로운 원인
소설은 가장 사람의 심술을 파괴하는 것이므로 자제들로 하여금 열어보게 해서는 안 도니다. 이것에 한번 집착하게 되면 빠져 헤어나지 못하는 자가 많다. 「靑莊館全書」 卷之五, 處雜稿一, ‘歲精惜譚’
이 글에서 이덕무는 소설배격의 원인을 심술의 파괴로 보고 있다. 이는 기존의 소설배격론자들과는 차이가 있다. 기존의 소설배격론자들은 소설의 허구성과 음란성을 비판하며 사회적 시각에서 소설이 풍속을 헤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덕무는 이러한 시각과는 다르게 소설이 인간의 심술을 파괴한다고 주장하며 인간 내면세계에 초점을 맞춰 심리적 측면에서 그 소설 비판의 이유를 찾고 있다. 또한 이덕무는 이러한 시각을 소설의 독자에게만 그치지 않고 소설의 작자에게까지 그 폐해를 확장하고 있다. 그는 위의 글에서 ‘한 때의 식욕 때문에 억지로 허랑한 말을 지어내니, 정력을 사용함이 극도로 피로하고 심술은 따라서 파괴된다.’고 주장하며 소설을 읽는 사람뿐만 아니라 소설을 짓는 사람까지도 심술이 파괴된다고 주장하였다. 이는 전통적인 소설배격론자들의 효용적인 관점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지만, 소설의 폐해에 대한 기존의 시각을 벗어나 소설배격론을 한 단계 심화 시켰다는 의의가 있다.
4. 나가며
지금까지 소설배격론에 실체에 대하여 알아보았다. 소설이 전성기에 접어들어 배격이 될 수밖에 없던 이유는 그 시대의 전후 상황과 관련하게 생각해볼 문제였다. 당시 18세기는 양난으로 겪은 상처를 회복하고 다시 나아가던 시기였다. 이 당시에 마치 대대적으로 유행처럼 번졌다고 전해지는 것이 바로 실학이다. 그러나 박정희 정권이 들어서고 나서, 기존의 역사를 재해석하던 중, 실학이라는 중화주의에서 벗어난, 우리나라의 자생적인 사상이 발견되었다. 그리고 이는 마치 조선 후기에 새롭게 등장한 자주적인 사상인양 그 지위를 확대나갔다. 이는 군부 정권이 실학을 과대 평가한 것이다. 조선 후기 소설이 대대적으로 성행 한 것에 대해서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이 당시 지배적인 사상은 나라를 되살리기 위한 예학의 재성행이었다. 이는 경북대학교 김기현 교수의 말을 인용한 것이다. 조선 후기는 예학을 바로 잡고자 하는 사상이 널리 퍼졌었다. 그러나 유신정권 당시 역사를 새롭게 재조명하면서 우리나라에서 자생적으로 발생되었다고 믿은 실학이 대대적으로 홍보되었다. 실학자들이 주장했던 이용후생, 경세치용은 그 당시 지식인뿐만 아니라 모든 민중들이 주장했던 것으로 대표적인 실학자인 정약용 역시 그 당시 널리 퍼졌던 생각들을 주장했을 뿐이다. 실학은 하나의 사상으로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선진적인 생각을 가진 지식인들의 주장에 불과하였다. 이러한 생각은 김기현 교수의 주장으로 이는 매우 신빙성이 있다고 생각하여 본고에 접목시켰다.
따라서 실학적인 관점에서 이 당시 소설배격론을 해석하려는 사고는 명백히 잘못된 것이다.
그리고 민중들은 근대에 들어 실학이라 일컬어지는 주장을 바탕으로 기존체제에 대한 비판의식과 청의 신문물로 인해 민중의 지식은 한층 고양되었고, 그러한 신문물에 대한 무비판적 수용으로 인해 나라의 기강을 어지럽혔다. 이에 정조는 문체를 바로잡아 옛 영화를 이어가고자 한 것이다. 하지만 소설은 신문체로 만들어진 18세기의 상징으로, 전대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배격 되어야만 했다. 또한 당시 유학자들의 기본적인 생각으로 문(文)이란 옛것을 본받아 다듬고 덧붙이는 것이지 창작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당시 소설이 대중화되고 문학 향유층이 사대부에서 서민들에게까지 넓어 진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주류의 문학은 다수가 향유하는 문학이 아니라 주축 세력인 사대부가 향유하던 문학을 말한다. 소설(小說)이라는 명칭에서도 나타나듯이 당시의 문학에 소설은 지극히 낮은 자리에 존재하던 양식이었다. 지금에 와 소설긍정론이 당연시 되어 소설의 가치가 재평가 되었지만, 지배권력층이자 문화권력층이기도 한 그들의 시선으로 소설을 바라보니 이러한 상황 속에서 소설이 배격되어야만 했던 이유가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근래에 들어 소설배격론과 관련된 논문은 좀처럼 보기 힘들다. 재해석이라는 이름으로 배격론 마저 현대의 시각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려 하는데 무비판적인 배격은 배제되어야 되지만 객관적이고 논리적인 시각하게 고전 소설의 배격론을 바라보는 연구는 계속 이어져야 할 것이다. 물론 소설이 이미 긍정적이고 큰 하나의 장르로 자라잡은 이 시점에서 배격론을 거론하는 것 자체에 시대착오적인 발상일 수도 있다. 그러나 소설 비평론적 관점에서 그 가치가 인정되고 또한 우리의 역사를 바로 세우기 위한 측면에서는 소설 배격론이란 것이 당시에 존재하였던 지배층들의 생각을 밝히기에 아주 명백한 증거로 그 지위를 확고히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혹자는 이덕무의 소설 배격론에 대해 이미 이덕무가 어린 시절 많은 소설을 읽어 보았다는 관점에서 눈 가리 아웅 하는 격이라 폄하하는 관점 역시 무시할 수 없겠으나 그 것이 청정관 이덕무가 주장했던 소설 배격론의 실체라고 단정 지울 수는 없다. 그러므로 소설 배격론은 그 당시의 역사적 상황에 맞추어 그 자체로 해석되고 연구되어야 할 필요가 있겠고, 더 나아가 소설 배격론이라는 것을 그 자체로 하나의 비평론으로 받아드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마음에서 본고를 마무리 짓고 싶다.
※ 참고문헌
1. 강혜선, 「정조의 문체반정과 경화문화」 『한국실학학회』 2012.
2. 장효현, 「18세기 문체반정에서의 소설 논의」『한국한문학회』1992.
3. 윤재민, 「문체반정의 재해석」『한국고전문학회』2002.
4. 송재소, <다산 정약용의 <문체책>에 대하여> 『韓國古典散文硏究』, 1981.
5. 이문규, 「고전 소설 비평사론」 새천문, 2003.
6. 황혜진, 「고전소설과 서사론」, 월인, 2007.
7. 간호윤, 「한국 고소설비평 연구」, 경인문화사,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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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8.04.19
  • 저작시기20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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