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철학번역] 플라톤의 국가론 원서 번역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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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고대철학번역] 플라톤의 국가론 원서 번역 과제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아니라 문학적으로도 걸작이며, 대화편 안에서 메타포, 직유, 비유, 신화 등의 문학적 장치들도 철학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훌륭한 방법으로 빈번히 사용된다.
때때로 이러한 문학적 장치들의 이용은 특별히 ‘문학적’ 스타일의 철학 저술의 특징으로, 특히 최근 들어 ‘대륙’철학을 연상시키는 것으로 간주된다. 그리고 이것은 영어권 국가들의 ‘명백’하고 ‘직접’적인 형식의 ‘분석’철학과 부정적인 의미를 담고 대비된다. 따라서 철학과 문학 사이에 있었던 고대의 반목은 오늘날까지 이어진다.
이러한 플라톤의 방식으로 철학과 문학 사이의 명백한 차이점을 이끌어 내려는 시도는 옹호할 수 없다. 철학은 이것의 형식이 무엇이든 언제나 설득의 방법으로 표현되고 전달된다.(당연히 잘 해낼 수도 있고 잘 못할 수 도 있겠지만) 문학적이고 수사학적인 측면은 모든 글에 있다. 이것은 가장 명백하고 가장 틀에 박힌 분석적 저술에서도, 가장 화려한 ‘문학적’ 산문에서처럼 역시 사실이다. 사실, 엄격하고 형식적인 형식 그 자체도 분석 철학의 하나의 수사학적 장치이다. 요약하자면, 철학적인 특성이 문학에도 있고, 문학적인 특정이 철학에도 있다는 것이다. 그 둘을 플라톤이 국가에서 제안한 그런 단정적인 방식으로의 구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것은 그 둘 사이에 플라톤이 보여주는 근본적인 차이점들이 있다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다. 플라톤이 시와 예술이 개별적인 것들을 엮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옳기 때문이다. 그들이 표현하는 모든 것은 언제나 특별한 인물과 사건과 형상들 속에서 실제의 개별적인 형태들을 구체화 시킨다. 비록 시와 희곡이 인간의 심리와 사람의 본성의 원칙을 이해함으로써 형성된 것으로서 사람의 행동을 묘사할지도 모르지만, 이러한 이해는 함축적으로 남아있다. 이것은 그들만으로는 형식화되지 않는다. 시인은 이러한 원칙들은 ‘설명 해주지’ 않는다. 그들은 플라톤이 말한 것처럼 그들의 작품을 설명해주지 못한다. 그 작품들은 불합리한 ‘영감’의 산물이지 지혜의 산물이 아니다. 명백하게 형식화된 지식을 위해서는 반드시 철학이나 심리학과 같은 이성적인 훈련을 해야 한다.
플라톤 식의 주장에 따르면, 철학은 시보다 더 높은 형태의 지식이라는 주장은 이러한 근거로 정당화 된다. 철학은 시 안에서 단지 함축적이고 불분명할 뿐인 것들을 명백하게 한다. 게다가 철학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실재인 보편적인 형상은 단순히 개별적인 것에서 온 것이 아니고 직접적으로 다루어진다. 지식은 따라서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것들과의 관계에서 자유롭고, 이것 자신 속에서만, 그리고 이것에 의해서만 숙고된다.
하지만 이 문제들은 무척 다른 방법으로 볼 수 도 있다. 괴테는 ‘삶은 녹색이지만 이론은 회색이다’라고 말했다. 개별적인 것을 구체화 하는 것으로 보편적인 것을 묘사하는 것에 의해, 예술은 사물들을 구체적으로 바라본다. 철학이 공론적이고 퇴색한 동안, 예술은 실제 세계의 풍요로움을 포착한다. 플라톤보다 더 균형 잡히고 만족할만한 주장은 철학과 시 모두가 표현의 타당한 형식이라는 것이다. 둘 다 지식의 진정한 형상을 구체화하고, 인간 정신을 경쟁적이 아닌 상호 보완적으로 표현한다.
시가 지식을 전달해야 한다고 강요하는 것은 때때로 플라톤이 철학의 기준에서 시에 대해 판단을 내리고 있다고, 그래서 단테는 ‘예술에서 철학적 권리를 박탈하는 것’이라고 부른 것을 시작하는 것이라고 말해진다. 플라톤의 철학은 이러한 비난에서 옹호될 수 있다. 가장 영속적인 면 중 하나는 예술은 실제적인 내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실제를 표현하며 이러한 견지에서 평가될 수 있다. 이것은 예술을 평가하는데 하나뿐인 기능이나 하나뿐인 기준은 아니다. 예술은 또한 정서나 오락 등을 일깨운다. 하지만 플라톤의 시각에서 실제의 표현은 진정한 예술의 필수적이고 근본적인 목적이다. 이것을 요구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예술을 철학의 하위에 두는 것이 아니다. 플라톤은 그렇지 않았지만, 우리는 예술과 철학이 다르지만 똑같이 타당한 방법을 수반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이 방법 안에서 실제는 표현될 수 있고 지식은 전달될 수 있다. 철학과 예술 사이의 고대의 반목은 반드시 초월되어야 한다.
예술과 정서
예술의 정서적 영향에 관한 플라톤의 설명 또한 논란의 여지가 있고 복잡한 문제들을 야기한다. 그는 예술이 심리적인 손해를 주는 영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정서를 도발하고 자아의 이성적인 부분을 억누르며, 따라서 이것의 균형을 해친다.
이러한 일들이 때때로 일어날지도 모르지만, 또다시 플라톤의 주장은 조악하고 단순해 보인다. 그 주장들은 예술을 이해하는 것 못지않게 예술을 더럽히려는 욕구에서 시작된 것처럼 보인다. 파이드루스에 좀 더 복잡하고 만족스러운 설명이 또 있다. 여기서는 문학이 발휘하는 ‘매력’과 그 매력이 좋게도 나쁘게도 쓰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국가에서의 플라톤의 설명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에서 인상적인 방식으로 비판받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적인 시는 ‘불안과 동정심’이라는 강한 감정을 도발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는 주장하기를 비극에 의해 야기된 감정들은 동시에 이 비극으로 인해 해소되고 정화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비극은 어떤 종류의 감정의 정화 혹은 katharsis를 수반한다. 이러한 감정을 이용해 우리는 도움으로 인해, 비극은 심리적으로 이롭고, 해롭지 않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어느 쪽도 이것에 관해서 완전히 진실이라고 볼 수 는 없다. 도리어 어떤 예술 작품들은 플라톤이 말한 영향을 가지고, 또 어떤 것들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것과 같아 보인다. 또 다른 대안 역시 있다. 예술은 상상, 넓은 경험, 기쁨, 매력 등을 자극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측면은 플라톤의 논증의 여력 이상이다. 그는 예술에 관한 완전한 이론을 제공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의 목적은 한정되어 있었고, 논쟁을 시작하려던 것이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국가는 예술의 본성과 효과를 철학적 견지에서 고찰한 최초의 작품들 중 하나이다. 그리고 그의 체계화들 중 몇 몇처럼 조악하고 불충분하지만, 그는 그 뒤 줄곧 예술 철학의 중심에 있어왔던 많은 논제들을 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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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9.04.21
  • 저작시기2019.4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1096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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