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없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 당파성이 기계적으로 적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프로문학의 예술적 이상은 개성적인 것과 일반적(계급적)인 것의 통일이었으며 이가 예술적 전형이었다.
1935~1945년 문학론
35년 카프해체, 37년 중일전쟁, 41년 태평양전쟁으로 식민지 전시체제가 더욱 강화되었다. 그래서 일본제국주의 파시즘화가 나타난다.
리얼리즘문학론
리얼리즘문학은 카프의 연장으로 일어난 것으로 임화와 김남천이 있다.
임화는 세태소설론과 본격문학론을 주장하였고, 김남천은 고발문학론과 장편소설론을 주장하였다.
임화의 세태소설론은 38년에 주장한 것으로 현실이 암흑하고 암담하다고 말하며 현재의 소설은 리얼리즘 소설에 도달하지 못하고 세태소설과 내성소설로 빠진다고 하였다. 그 예로 박태원의 <천변풍경>은 카메라로 찍은 듯 세태를 잘 보여주나 그 때문에 주제가 안 보인다고 하였고, 이상의 <날개>는 주인공의 내면만 그려져 있어 그 세계상을 모른다고 하였다. 말하려는 것과 그리려는 것의 분열인 것이다. 작가가 주장하고자 하는 바를 표현하려면 묘사되는 세계가 그와 부합되지 않고 묘사되는 것을 충실히 살리려고 하면 작가의 생각이 그와 일치할 수 없는 상태라고 하였다.
본격소설론에서는 우리가 사는 시대의 이상과 현실이 괴리되어 떨어진 현실 자체의 분열상을 반영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하였다. 그렇기에 리얼리즘소설로 가야 한다고 하였다. 사회적 모순과 그에 저항하는 주인공이 어우러진 소설이 인물, 사건, 배경 중 인물과 배경이 잘 어우러진 소설이라 하였다. 이태준과 박태원의 문학은 사회상에서 분열된 개성의 그림자(환영)만이 남아있고, 프로문학은 산 개성의 풍요성에서 떨어진 사회성의 실체만이 나타난다고 하며 본격소설로 인해 사회성과 개성의 이중 과제를 완수할 수 있다고 하였다.
김남천의 고발문학론은 먼저 프로문학이 도식적이라고 비판하였다. 부르주아 지식인들이 프로문학의 담당자가 되었기 때문에 판에 찍어낸 듯 같다고 하였다. 지식인의 소시민성은 현실을 도식주의적(말하는 대로 따르는 것)으로 파악하거나 관조주의적으로 파악하고 있다면서 프로문학의 과제는 지식인적 소시민의 극복이라 하였다. 김남천은 <유다적인 것의 문학>에서 그에 대해 말하였다. 예수가 처형 전 최후의 만찬 있는 날 밤 베드로에게 “유다와 같이 너도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나를 세 번 부정할 것이”라고 하였다. 유다는 예수를 팔았지만, 그의 처형사실을 알자, 그 값으로 받은 은 30냥을 바닥에 던져 버리고 자살했다고 한다. 이는 스승을 판 패덕과 스스로의 자결하는 양심사이의 형용할 수 없는 모순인데, 이것이야 말로 문학이 전취해야 할 “유다적인 것”이라 하였다. 프로문학의 침체에서 벗어나는 길은 작가내부의 “유다적인 것”과 철저한 투쟁을 통해 확보된다고 하였다. 김남천의 유다적인 것은 카프의 해체 후 소시민 지식인이 신봉하던 사상, 주의에서 이탈, 배신한 것이 아닌 예수의 처형뒤 자살에 이른 유다의 제2의 행동이라 하였다. 자기자신의 매각이라는 고도의 성찰을 통해 죽음에 이르는 현대의 영웅이라 하였다. 주체(작가)의 재건을 위해서는 주체의 자기완결성에 대한 의심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하며 자신의 내부에 숨은 소시민성을 폭로하였다. 그러나 임화는 이에 대해 소시민의 윤리적 결단은 누구나 다 하는 것이라 하면서 뭐가 대단하냐며 비판하였다.
이에 김남천은 장편소설론을 다시 내놓았는데, 리얼리즘소설이 되기 위해서는 장편소설이 좋다(유리하다)고 하면서 소재는 가족사가 좋다고 하였다. 가족구성원의 성장과 탄생, 변화, 쇠락을 굴곡적으로 다루어야 한다고 한다. 그는 <대하>(큰강)라는 소설을 통해 연대기적 가족사소설은 개인 및 가족의 삶을 당대 역사적 현실변화와 관련지어 그리고자 하는 장르적 특징을 가진다고 한다. 이는 당시의 가족사 소설이 인기가 있고 노벨상(펄벅, 대지(31))도 받아서 생긴 문학론이라 생각된다.
모더니즘 문학론
모더니즘문학론은 최재서의 풍자문학론과 교양지성론, 김기림의 글로 인해 나타난다. 최재서는 카프에 들어가 있지는 않았으나 가프해체 후 문단의 타계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면서 합리적으로 풍자문학론이 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작가는 현실에 대해 취하는 태도는 순응적 태도, 거부적 태도, 비평적 태도가 있는데, 비평적 태도를 지녀야 한다고 하였다. 당대 현실을 그대로 순응할 수도 거부할 수도 없는 과도기적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가는 중간의 비평적 태도를 지녀야 한다는 것이다. 그 비평적 태도는 풍자가 필요한데, 자기적 풍자를 해야 한다고 한다. 왜냐면 현대위기가 자기분열에서 비롯됨으로 자기풍자로 자아탐구를 해야 한다는 것인데, 이상의 <날개>가 그러한 예라고 한다. 이런 소설이 모더니즘이며 나아갈 길이라고 한다.
교양지성론은 <문학과 지성>(38)을 통해서 나타났다. 카프의 시대는 문학이 행동의 도구로서 작동하는데, 행동의 구속에서 벗어나 지성과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하였다. 카프식 행동이나 실천에서 벗어나서 새로운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하여 교양이나 지성과 같은 인문적 정신의 세련된 단계를 거쳐야 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지성은 “비행동적인 행동”으로 적극적으로 파시즘에 투항하기도 하였다.
김기림은 <시에 있어서의 기교주의의 반성과 발전>이라는 글을 통해 우리 문학의 문제는 너무 감성주의적이기에 부족하다고 하였다. 시들을 감성에 맡겨두는 것은 위험한 일이며, 감성의 비만은 감상주의에 빠진다고 하였다. 감성은 촉매로 작용하고 없어져야 한다. 이미지즘에서 감정은 객관적 상관물로 바뀌어야 한다는 엘리엇의 말을 들은 것이다. 그래서 주지주의를 주장한다.
순수주의문학론(예술지상주의)
모더니즘보다 현실에서의 후퇴가 더 극단적인 모습이다. 김동리 <순수이론>(39).
프로문학은 문학을 이념의 노예로 전락시켰고, 모더니즘은 외래적이기에 좀 그렇다. 문학은 인간의 생명과 개성의 구경(최종)적 의의를 탐구해야 한다고 하며 현실과 결연해야 한다고 하였다. 인간은 근원적이고 존재론적인 본질을 탐구하는 것이 근대문학의 핵심론적인 과제이다. 민속과 토속, 신화적 공간에서 이러한 본질을 탐구해야 한다.
1935~1945년 문학론
35년 카프해체, 37년 중일전쟁, 41년 태평양전쟁으로 식민지 전시체제가 더욱 강화되었다. 그래서 일본제국주의 파시즘화가 나타난다.
리얼리즘문학론
리얼리즘문학은 카프의 연장으로 일어난 것으로 임화와 김남천이 있다.
임화는 세태소설론과 본격문학론을 주장하였고, 김남천은 고발문학론과 장편소설론을 주장하였다.
임화의 세태소설론은 38년에 주장한 것으로 현실이 암흑하고 암담하다고 말하며 현재의 소설은 리얼리즘 소설에 도달하지 못하고 세태소설과 내성소설로 빠진다고 하였다. 그 예로 박태원의 <천변풍경>은 카메라로 찍은 듯 세태를 잘 보여주나 그 때문에 주제가 안 보인다고 하였고, 이상의 <날개>는 주인공의 내면만 그려져 있어 그 세계상을 모른다고 하였다. 말하려는 것과 그리려는 것의 분열인 것이다. 작가가 주장하고자 하는 바를 표현하려면 묘사되는 세계가 그와 부합되지 않고 묘사되는 것을 충실히 살리려고 하면 작가의 생각이 그와 일치할 수 없는 상태라고 하였다.
본격소설론에서는 우리가 사는 시대의 이상과 현실이 괴리되어 떨어진 현실 자체의 분열상을 반영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하였다. 그렇기에 리얼리즘소설로 가야 한다고 하였다. 사회적 모순과 그에 저항하는 주인공이 어우러진 소설이 인물, 사건, 배경 중 인물과 배경이 잘 어우러진 소설이라 하였다. 이태준과 박태원의 문학은 사회상에서 분열된 개성의 그림자(환영)만이 남아있고, 프로문학은 산 개성의 풍요성에서 떨어진 사회성의 실체만이 나타난다고 하며 본격소설로 인해 사회성과 개성의 이중 과제를 완수할 수 있다고 하였다.
김남천의 고발문학론은 먼저 프로문학이 도식적이라고 비판하였다. 부르주아 지식인들이 프로문학의 담당자가 되었기 때문에 판에 찍어낸 듯 같다고 하였다. 지식인의 소시민성은 현실을 도식주의적(말하는 대로 따르는 것)으로 파악하거나 관조주의적으로 파악하고 있다면서 프로문학의 과제는 지식인적 소시민의 극복이라 하였다. 김남천은 <유다적인 것의 문학>에서 그에 대해 말하였다. 예수가 처형 전 최후의 만찬 있는 날 밤 베드로에게 “유다와 같이 너도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나를 세 번 부정할 것이”라고 하였다. 유다는 예수를 팔았지만, 그의 처형사실을 알자, 그 값으로 받은 은 30냥을 바닥에 던져 버리고 자살했다고 한다. 이는 스승을 판 패덕과 스스로의 자결하는 양심사이의 형용할 수 없는 모순인데, 이것이야 말로 문학이 전취해야 할 “유다적인 것”이라 하였다. 프로문학의 침체에서 벗어나는 길은 작가내부의 “유다적인 것”과 철저한 투쟁을 통해 확보된다고 하였다. 김남천의 유다적인 것은 카프의 해체 후 소시민 지식인이 신봉하던 사상, 주의에서 이탈, 배신한 것이 아닌 예수의 처형뒤 자살에 이른 유다의 제2의 행동이라 하였다. 자기자신의 매각이라는 고도의 성찰을 통해 죽음에 이르는 현대의 영웅이라 하였다. 주체(작가)의 재건을 위해서는 주체의 자기완결성에 대한 의심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하며 자신의 내부에 숨은 소시민성을 폭로하였다. 그러나 임화는 이에 대해 소시민의 윤리적 결단은 누구나 다 하는 것이라 하면서 뭐가 대단하냐며 비판하였다.
이에 김남천은 장편소설론을 다시 내놓았는데, 리얼리즘소설이 되기 위해서는 장편소설이 좋다(유리하다)고 하면서 소재는 가족사가 좋다고 하였다. 가족구성원의 성장과 탄생, 변화, 쇠락을 굴곡적으로 다루어야 한다고 한다. 그는 <대하>(큰강)라는 소설을 통해 연대기적 가족사소설은 개인 및 가족의 삶을 당대 역사적 현실변화와 관련지어 그리고자 하는 장르적 특징을 가진다고 한다. 이는 당시의 가족사 소설이 인기가 있고 노벨상(펄벅, 대지(31))도 받아서 생긴 문학론이라 생각된다.
모더니즘 문학론
모더니즘문학론은 최재서의 풍자문학론과 교양지성론, 김기림의 글로 인해 나타난다. 최재서는 카프에 들어가 있지는 않았으나 가프해체 후 문단의 타계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면서 합리적으로 풍자문학론이 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작가는 현실에 대해 취하는 태도는 순응적 태도, 거부적 태도, 비평적 태도가 있는데, 비평적 태도를 지녀야 한다고 하였다. 당대 현실을 그대로 순응할 수도 거부할 수도 없는 과도기적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가는 중간의 비평적 태도를 지녀야 한다는 것이다. 그 비평적 태도는 풍자가 필요한데, 자기적 풍자를 해야 한다고 한다. 왜냐면 현대위기가 자기분열에서 비롯됨으로 자기풍자로 자아탐구를 해야 한다는 것인데, 이상의 <날개>가 그러한 예라고 한다. 이런 소설이 모더니즘이며 나아갈 길이라고 한다.
교양지성론은 <문학과 지성>(38)을 통해서 나타났다. 카프의 시대는 문학이 행동의 도구로서 작동하는데, 행동의 구속에서 벗어나 지성과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하였다. 카프식 행동이나 실천에서 벗어나서 새로운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하여 교양이나 지성과 같은 인문적 정신의 세련된 단계를 거쳐야 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지성은 “비행동적인 행동”으로 적극적으로 파시즘에 투항하기도 하였다.
김기림은 <시에 있어서의 기교주의의 반성과 발전>이라는 글을 통해 우리 문학의 문제는 너무 감성주의적이기에 부족하다고 하였다. 시들을 감성에 맡겨두는 것은 위험한 일이며, 감성의 비만은 감상주의에 빠진다고 하였다. 감성은 촉매로 작용하고 없어져야 한다. 이미지즘에서 감정은 객관적 상관물로 바뀌어야 한다는 엘리엇의 말을 들은 것이다. 그래서 주지주의를 주장한다.
순수주의문학론(예술지상주의)
모더니즘보다 현실에서의 후퇴가 더 극단적인 모습이다. 김동리 <순수이론>(39).
프로문학은 문학을 이념의 노예로 전락시켰고, 모더니즘은 외래적이기에 좀 그렇다. 문학은 인간의 생명과 개성의 구경(최종)적 의의를 탐구해야 한다고 하며 현실과 결연해야 한다고 하였다. 인간은 근원적이고 존재론적인 본질을 탐구하는 것이 근대문학의 핵심론적인 과제이다. 민속과 토속, 신화적 공간에서 이러한 본질을 탐구해야 한다.
소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