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황 이발설의 의미론적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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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머리말

Ⅱ. 이관에 보이는 이발

Ⅲ. 심통성정도에 나타난 이발

Ⅳ. 심과 이의 관계에서 본 이발

Ⅴ. 이도…이발의 사물로의 확대
1. 이도
2. 심위태극

Ⅵ. 맺음말

본문내용

은 각성된 心이어야 한다. 그래야만 心은 다만 理를 갖추었다는 데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의미에서의 주재가 된다. 즉 心靜의 상태에서는 本具之理였던 太極이 動의 상태에서 心의 주재력에 따라 주체를 실현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내안에 있는 太極(人極)은 心의 動에 따라 用을 행할 수 있고 그것이 바로 심성론에서는 理發의 의미로 되는 것이다. 또한 理到說은 사물의 理에 따라 心의 주재가 이루어지고 사물의 理가 이에 스스로 대응하는 것이다.
이황은 西銘考證講義에서 횡거는 또한 仁이란 비록 천지만물과 일체라고 하였으나 그러나 필히 먼저 자기가 本原이 되고 주재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모름지기 物我一理가 상관되는 친절한 의미를 볼수 있다.
) 『全書』, 卷7, 「西銘考證講義」, 一卷, 218쪽 「橫渠亦以爲仁者與天地萬物爲一體, 然必先要從自己爲本原主宰, 仍須見得物我一理相關親切意味」.
고 하였다. 이는 仁(도덕주체라는 의미가 강조된 理)은 心靜의 상태에서는 本原(本具之理)이 되고 心動의 상태에서는 주재가 된다는 의미라고 생각된다. 이 의미를 아는 방법이 心의 각성인 敬이다. 그래서 이황은 敬이란 철두철미한 것이니 진실로 능히 경을 지니는 방법을 알면 理가 밝아지고, 心이 정하여져서 格物을 하면 物이 나의 살핌을 벗어나지 아니하고, 事에 應하면 事가 心의 累가 되지 아니한다.
) 『全書』, 卷28, 「答金惇敍」, 二卷, 64쪽. 「敬者徹頭徹尾 句能知持敬之方 則理明而心定 以之格物 則物不能逃吾之鑑 以之應事 則事不能爲心之累」.
고 말했던 것이다.
-482-
Ⅵ. 맺음말
유학의 특징은 인간의 발견에 있다. 인간의 주체, 자주자율성에 대한 발견이다. 이 주체는 도덕주체이다. 天(命)에 예속되어 있던 인간이 孔子에 이르러 도덕실천에 있어서 자주자율의 입장으로 바뀌는 것으로부터 유학의 본모습이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유학적 인간상은 본래부터 이중적인 성격을 지닌다. 그 하나는 극복의 대상으로서의 나이고 다른 하나는 긍정의 대상으로서의 나이다. 긍정의 나가 바로 도덕실천의 자주자율성을 지닌 나이다. 공자는 긍정의 나를 爲仁由己의 己로 표현하였고, 부정의 나를 克己復禮의 己로 나타내었다.
孟子에 이르면 긍정의 나는 君子之性의 性으로 이해되었고 그것은 性善이라고 표현되었다. 맹자의 性善은 긍정의 나가 철저히 강조된 것이다. 성이 천부적 도덕성으로 긍정되는 반면에 君子不謂性이라고 하는 食色의 자연성은 부정된다. 그것이 否定의 나였다. 부정의 나이므로 맹자는 그것을 性이라 하지 않았던 것이다. 맹자의 경우 또한 心과 耳目이 각각 大體와 小體로서 긍정의 나와 부정의 나로 나뉜다. 그런데 맹자가 大體로 파악하고 그 기능을 思라고 파악한 心은 분열의 가능성을 잠재하고 있다. 맹자에 있어 盡心, 存心, 四端之心의 心은 그대로가 긍정의 나이고 주체이지만, 求放心의 心은 바로 心이 思라고 하는 주체의 역량을 지니면서도 耳目의 감각을 따라 달아나는 放心이 될 수도 있는 것으로 파악되기 때문이다.
荀子의 性은 食色과 같은 자연적 욕구, 心의 好利 등이다. 그렇기 때문에 부정의 대상이 된다. 그것을 性惡이라 표현하였다. 순자의 성악은 부정의 나를 강조한 것이다. 그런데 순자의 경우 心은 부정의 대상만이 아니고 긍정의 대상이기도 하다. 心의 지각 판단능력이 善과 禮를 이끌어내는 근거이기 때문에 순자에 있어서도 心은 분열의 가능성을 지닌 것이고 이는 道心 人心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즉 순자도 인간을 이중적으로 긍정의 나와 부정의 나로 파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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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대의 성리학자들의 天理와 人欲, 本然之性과 氣質之性, 人心과 道心論도 모두 긍정과 부정의 이중적 나를 표현한 것이다. 필자는 조선조의 사단칠정론과 인심도심론 또한 자기부정과 자기긍정의 범주에 포함될 수 있고, 그에 따라 분석될 수 있다고 본다
이들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어떻게 부정의 나를 극복하고 긍정의 나를 확인 내지 실현하느냐에 있었다. 부정이든 긍정이든 모두 나의 문제이므로 내 안에서 해결방안을 찾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이다. 긍정의 나와 부정의 나가 공존하면서 분열의 가능성이 잠재해 있는 인간의 心이 중요한 까닭은 거기에 있고 이황이 심학에 지대한 관심을 지니고 心과 理를 合一하려고 한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이황은 주자학의 체계를 철저히 자기화하여 수용했다. 理發, 理動, 理到說 등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心과 理의 합일추구 등이 또한 그렇다. 그는 사물의 理와 나의 주체가 보편적 존재근거라는 점에서 공통된다는 사실을 수용하면서도, 주자학의 주지주의적 窮理가 인간문제를 해결해주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어느 면에서는 인간의 능동적 주체역량을 약화시키거나 아니면 心과 사물의 理가 이분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고, 결국 양명학의 心과 理의 분리에 대한 비판을 초래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心과 理의 합일을 위한 心의 수양방법으로서의 敬을 강조하였고, 理到說에서는 理의 自到를 주장하여 心과 理의 합일을 제시했던 것이 아닐까 한다.
이황의 학문 목표는 人欲存天理에 있고, 그 방법은 敬에 있다고 본다. 사단칠정론의 전개에 있어 理發이 제시된 의도가 心의 각성을 통한 人欲存天理(부정의 나를 극복하고 긍정의 나를 보존한다)에 있슴을 인정한다면 理發은 바로 긍정의 내(나의 주체)가 능동적으로 실천되어야 한다는 강한 자기긍정 입장의 표현이라 생각된다. 긍정의 나는 단지 체인·확인의 대상이 아니라 실천의 주체이어야 하는 것이다. 나의 주체(理)를 철저히 긍정하고 실천하기 위해서는 다른 하나의 나는 철저히 부정되어야 했고 그것이 또 하나의 나인 氣를 단지 有爲가 아닌 有欲으로 이해하는 한 원인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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理發과 氣發의 엄격한 구분은 바로 긍정의 나와 부정의 나는 어떠한 경우에도 같은 차원에서 논의될 수 없다는 철저한 자기긍정이자 자기부정이다. 부정의 나도 또한 사실로 존재하는 나일진대 이 나를 철저히 부정할 수 있는지는 일단 접어두기로 하자. 물론 理發氣隨, 氣發理乘이라 하여 긍정의 나와 부정의 나를 논리적으로 연결시키고 있기는 하지만 이황의 기본입장은 자기긍정의 철저화와 자기부정의 엄격성에 있는 것으로 잠정적으로 추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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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2.04.26
  • 저작시기20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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