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전략]미국의 젊은 백만장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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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한 편의 영화가 바꾸어 놓은 운명

2.엄마가 만들어 주시던 못난이 쿠키가 백만장자의 길을

3.멋쟁이 임부복으로 승부

4.취미를 직업으로 : 이십대에 백만장자가 된 스포츠광

본문내용

9.11 사건으로 세계경제는 더 심각한 침체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대기업들도 무너지고 있는 이 시기에 <우리에게 불황은 없다>고 외치는 젊은 백만장자들이 있다. 어떤 장애도 그들의 의지와 야망을 꺾을 수 없다. 30대에 이미 백만장자가 된 젊은이들. 그들은 과연 어떤 분야에서 어떻게 돈을 벌어서 백만장자가 되었을까? 백만장자로 가는 길은 의외로 그들 가까이 있었다. 누구나 주변을 잘 돌아보면 이들처럼 백만장자가 되는 방법을 발견할 수 있다.젊은 백만장자들의 성공 뒤에는 한결같은 공통점이 있다. 다른 사람들은 무심히 보고 넘어간 평범한 사실들을 특별한 눈으로 보고 그리고 그것을 사업으로 연결시켜 성공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모두 흙 속의 돌로 본 것들을 흙 속의 다이아몬드로 볼 수 있는 제 3의 눈을 가지고 있었다. 어떻게 평범한 것을 특별하게 변화시킬 수 있었는지 젊은 백만장자들의 얘기를 들어보자.한 편의 영화가 바꾸어 놓은 운명금년에 겨우 32살에 밖에 되지 않은 앤디 스텐즐러는 자신 소유의 가게를 60개나 가지고 연간 1억 달러를 벌어들이고 있는 백만장자이다. 젊은 나이에 그는 어떻게 백만장자가 되었을까? 그가 그 길을 발견한 것은 아주 우연이었다. 1994년 앤디는 갓 대학을 졸업한 25살의 청년이었다. 비즈니스 스쿨을 졸업한 앤디는 마음에 드는 직장을 찾지 못해서 빈둥빈둥 놀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영화는 정말 좋은 도피처였다. 같이 놀고 먹는 친구들이랑 영화를 보러 다니는 게 그의 유일한 낙이었다. 그 날도 그는 친구 닉 마쉬와 란 영화를 보러 갔다. 영화 내용은 별 거 없었다. 하루 종일 카페에 죽치고 앉아서 시간을 보내다가 밤이 되면 갈 곳이 없어서 집으로 돌아가곤 하는 앤디같은 젊은이들의 일상을 담고 있었다. 그들을 닮은 한 편의 영화가 앤디와 닉의 운명을 바꾸어 놓을 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그 날 그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앤디와 닉은 똑같은 생각을 했다. “갈 곳이 없어 헤매 이는 저 젊은 친구들에게 갈 곳을 제공해 줄 수는 없을까?” 두 친구는 동시에 같은 생각을 했다. “하루 종일 어울려 놀다가 밤이 되면 마지 못해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젊은이들이 밤이 되어도 편안하게 즐기고 놀 수 있는 곳은 왜 없을까?” 우연히 한 편의 영화를 보고 문득 떠올린 그 생각을 두 친구는 실천에 옮겼다. 영화를 본 후 1년 동안 앤디와 닉은 젊은 친구들이 좋아할 장소를 물색하기 위해 미국 동부 해안을 다 뒤지며 돌아다녔다. 그리고 24시간 문을 여는 카페 개업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여기 저기서 돈을 끌어 모았다. 그리하여 드디어 40만 불의 돈을 가지고 그들은 코넷티컷주에 있는 하포트에 최초의 24시간 카페를 오픈 할 수 있었다. 그들이 문을 연 카페 Xando Coffee Bar 가 타깃으로 삼은 층은 당연히 그들이 영화에서 본 놀고 먹는 젊은이들 층이었다. 밤이 되어도 집에 가지 않아도 되는 24시간 카페가 문을 열었다는 소식이 동부에 퍼지자 젊은이들이 구름 떼처럼 몰려들었다. 앤디의 카페는 그 지역 명소가 되었다. 지금은 너무도 편안한 카페의 분위기가 마음에 들어 평범한 젊은이들 뿐만 아니라 유명한 영화 배우들도 이 카페를 자주 찾는다. 편안한 의자에 앉아 쉬고 있는 애단 호크를 볼 수 있고, 음악을 들으며 고기를 구어 먹고 있는 줄리아 로버츠도 볼 수 있다. 이 카페는 가족적인 편안한 분위기를 주기 위해서 각자 테이블에서 음식을 해 먹을 수 있는 시설을 마련해 놓았다. 처음 본 사람들이라도 시끌벅적한 분위기에서 같이 음식을 해 먹고 고기를 구어 먹다 보면 서먹서먹한 분위기는 다 사라져 버린다. 이러한 분위기가 이 커피 바를 바로 미국 동부 명소로 만든 것이다. Xando Coffee Bar의 모토는 <모닝 콜에서 라스트 콜까지> 이다. 이 모토가 보여주듯이 아침에 이 카페에서 간단한 빵과 카푸치노 커피로 아침을 때운 젊은 사업가들이 점심때 이 카페에서 샌드위치를 먹고 그리고 저녁에 일과를 끝내고 다시 카페로 돌아와 술 한잔 하며 즐기는 모습을 우리는 쉽게 볼 수 있다. 어떻게 하면 카페를 찾는 고객들을 더 편안하고 즐겁게 해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색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게 해줄까? 같은 카페이지만 전혀 다른 분위기를 주기 위해서 이 카페는 밤낮으로 컨셉을 바꾼다. 낮 동안인 오후 5시 까지는 손님이 카운터에 와서 주문을 하는 셀프서비스 제를 적용한다. 그러나 오후 5시가 되면 감춰져 있던 리커바가 드러나고 손님들은 편안하게 각자 앉은 테이블에서 주문을 하는 고급 레스토랑 분위기로 바뀐다. 그렇게 컨셉 전환을 하기 때문에 아침에 왔던 카페에 저녁에 다시 와도 사람들은 신선함을 느낀다. 1999년 이 카페 안에 새로이 샌드위치 코너가 들어왔다. 주머니가 가벼운 젊은이들의 사정을 고려해서다. 할 일 없는 젊은이들을 겨냥해서 시작했던 Xando Coffe Bar는 이제 더 이상 할 일 없는 젊은이들만 모이는 곳이 아니다. 수많은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그리고 연령층도 높아져 요즘에는 술 한 잔 앞에 놓고 고기를 구어 먹으며 분위기를 즐기는 멋쟁이 노인들도 쉽게 볼 수 있다. 이러한 수많은 고객들 덕분에 이제 Xando Coffee Bar의 수는 60개로 늘어났다. 그리고 그 수는 더욱 늘어만 갈 것이다.앤디와 닉이 1994년 별볼일 없는 3류 영화를 보고 아무 생각 없이 지나갔다면 그들은 오늘날 백만장자가 될 수 있었을까? 수많은 사람들이 같은 영화를 보았지만 백만장자가 되는 길을 발견한 사람은 앤디와 닉 뿐이다. 흔한 것에서 특별한 것을 발견하는 눈과 마음, 그것이 바로 백만장자로 가는 길을 열어준 것이다.엄마가 만들어 주시던 못난이 쿠키가 백만장자의 길을…엘렌 스피텐리와 데이비드 크레베츠는 금년에 35살 된 동갑내기 백만장자이다. 동갑내기 일 뿐만 아니라 이들은 어렸을 적부터 한 동네에서 같이 자란 소꿉친구이다. 같은 동네에서 서로의 집을 드나들며 자라는 동안 데이비드와 엘렌은 데이비드 엄마가 만들어 주시곤 하던 갈색 부라우니 쿠키를 많이 먹었다. 엄마가 만들어 주시던 그 쿠키가 이 두 소꿉친구들을 백만장자로 만들어줄 줄은 아무도 몰랐었다. 엘렌과 데이비드도 처음에는 다른 친구들처럼 학교를 졸업하고 취직을 했다. 몇 년 동안 해 본 직장생활에 둘 다 싫증을 느꼈을 즈음 두 친구는 고등학교 다닐 때 했던 서로의 약속을 생각해 냈다. 나중에 언젠가 사업을 시작하게 되면 꼭 동업을 하자고 두 소꿉친구는 약속했었던 것이다.그리하여 두 친구는 다시 만났다. 좋은 사업거리가 없을까 고민하다가 엘렌과 데이비드는 어릴 적에 즐겨먹던 그 쿠키를 생각해냈다. 데이비드의 엄마가 만드셨던 그 쿠키의 맛은 정말 특별했었다. 시중에서 생산되는 어떤 쿠키도 그런 맛을 낼 수 없을 거라는 확신을 가진 두 젊은 친구는 쿠키 사업을 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돈이 없었다. 돈만 없는 것이 아니라 과자나 빵을 만들어본 경험도 그리고 제조업이나 마케팅 분야에서 일을 해 본 경험도 없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용기와 그리고 엄마의 쿠키비법이 있었다.가난했던 이들은 첫 해에는 친구의 음식점 주방을 빌려서 쿠키를 만들었다. 그리고 판매는 카탈로그를 통해서 했다. 맛있는 쿠키를 발견한 사람들의 입 소문을 통해 쿠키가 꾸준히 팔려나가자 1993년 엘렌과 데이비드는 자기 소유의 제과점을 사서 이사를 했다. 그리고 웹사이트도 오픈 했다. 현재 이 웹사이트를 통해서 들어오는 주문량이 전체 주문량의 25%를 차지한다. 엘렌과 데이비드는 1994년 여름을 결코 잊지 못한다. 그 해가 그들의 사업에 날개를 달아준 해이기 때문이다. 1994년 그들이 만든 맛있는 쿠키 이야기가 뉴욕타임즈에 실리게 되었다. 그 쿠키의 맛을 궁금하게 여긴 사람들의 주문이 쇄도했다. 사람들은 12가지 종류의 과자가 담긴 쿠키선물세트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선물을 했다. 그리고 그 선물을 받아 쿠키를 먹어본 사람들은 또 다른 사람들에게 그 쿠키를 선물했다. 이렇게 이어진 선물 행진 덕분에 엘렌과 데이비드가 만든 Fairytale Brownies 쿠키는 올들어 벌써 3백7십5만 달러 상당의 매출을 기록했다.두 소꿉친구가 어릴 적 엄마의 손 맛을 기억해 내고 만든 쿠키가 젊은이들을 백만장자로 만들어 줄 것을 누가 짐작이나 했을까? 도대체 그 쿠키가 맛있는 비법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데이비드는 비법은 말해줄 수 없지만 “모든 사람들이 쵸콜렛을 좋아한다는 사실에 착안을 했다”며 웃는다. 현재로도 만족을 하지만, 사람들의 기호를 더 잘 반영하기 위해 이 두 친구는 오늘도 끊임없는 연구를 한다. 맛있는 쿠키를 만들 수 있는 엄마를 둔 사람은 많다. 그러나 엄마의 손 맛을 백만 달러가 넘는 사업으로 키울 수 있는 안목이 누구에게나 있는 것은 아니다. 멋쟁이 임부복으로 승부신디 크래포드나 캐터린 제타존스 같은 멋쟁이 스타들은 임신을 하고서도 여전히 멋쟁이로 보이기를 원한다. 그런 멋쟁이 스타들이 임신하면 달려가는 곳이 있다. 그 곳은 바로 금년 35세 된 리즈 레인쥐가 운영하는 임부복 전문 부티크이다. 그가 운영하는 부티크에는 멋쟁이 스타들을 만족시킬만한 딱 붙는 바지, 캐시미어 스웨터, 그리고 몸매를 드러내주는 이브닝 드레스도 있다. 전세계 어디를 가도 임신부들을 위한 이런 특별한 옷들을 파는 곳은 없다. 그 옷들은 바로 Liz Lange Maternity 에서만 구입할 수 있다. 이 멋쟁이 임신복을 디자인하고 판매하면서 리즈는 백만장자가 되었다. 평범한 옷을 디자인 하던 리즈가 어떻게 멋쟁이 임부복에 눈을 돌리게 되었을까? 리즈는 주변 친구들이나 고객들이 임신을 하는 연령기에 접어들면서 불평을 하는 소리를 귀담아 들었다. 리즈의 친구들은 임부복 하면 흔히 떠오르는 펑퍼짐한 원피스, 맬빵달린 통바지를 거부하고 리즈에게 멋쟁이 임부복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을 했다. 사실 임신 기간인 9개월은 짧은 기간은 아니다. 내내 멋쟁이로 지내던 여성들, 특히 직장 여성들은 이 기간 동안 펑퍼짐한 기존의 임부복을 입고 싶어하지 않는다. 리즈는 이러한 멋쟁이 여성심리를 사업으로 연결시켰다. 1996년 친구들의 임부복을 디자인해서 만들어주기 시작한 것을 계기로 리즈는 사업 가능성을 타진해 보기 시작했다. 우선 몇 몇 소매점에 만일 고급 임부복을 만들면 판매해줄 수 있는 지 그 가능성에 대해 시장성을 조사해 보았다. 그러나 리즈의 기대와는 달리 소매점에서는 회의적인 대답만 돌아왔다. 그들의 대답은 한결같이, “임신한 여성들은 비싼 옷에 투자를 안한다” 는 것이었다. 그러나 리즈는 자신이 선택한 길에 가능성이 있다고 믿었다. 그리하여 가족 친구들에게 빌린 5만 불로 리즈는 뉴욕 시에 작은 임신복 맞춤가게를 열었다. 리즈는 주문을 미리 받아 원하는 스타일의 임신복을 맞춤 제작해 주는 고급 부티크 형태로 이 가게를 운영했다. 리즈의 가게에 주문이 쇄도하기 시작한 것은 리즈의 가게가 1997년 뉴욕타임즈에 소개되고 나서부터이다. 평범한 것을 거부하는 수많은 여성들이 리즈의 가게에서 임신복을 맞추기 위해 달려왔다. 그들에게 리즈가 만들어주는 옷은 일종의 혁명처럼 느껴졌다. 이처럼 리즈의 옷이 인기를 끌자 그전에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던 백화점 그리고 도매점들이 리즈의 옷을 판매하겠다는 요청을 해왔다. 그러나 리즈는 이를 거부하고 극소수의 고급 부티크에만 자신의 옷을 제공해주고 있다. 자신이 만든 옷을 싸구려로 전락시키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사업이 붐을 타자 리즈는 1998년 넓은 장소로 가게를 옮겼다. 그러나 그의 가게는 늘 비좁게만 느껴진다. 그가 만들어낸 고급 임신복을 입기 위해 몰려오는 젊은 여성들의 수가 점점 늘고 있기 때문이다. 리즈는 이제 뉴욕의 메디슨 에비뉴에, 그리고 캘리포니아의 비버리힐즈에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이러한 직접 주문생산 외에도 온라인 카달로그로도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두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리즈의 야심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리즈의 꿈은 런던과 파리에도 자신의 가게를 여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거부한 길을 선택한 리즈, 그녀가 임부복 단 하나로 일년에 벌어들이고 있는 돈은 3백만 달러이다. 다른 사람들은 외면한 길을 선택함으로써 그녀는 백만장자가 된 것이다.취미를 직업으로 : 이십대에 백만장자가 된 스포츠광금년28세인 마이클 루빈은 ‘전형적인’ 이란 단어를 제일 싫어한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평범한 걸 싫어했다. 다른 친구들처럼 평범하게 공부만 하는 것도 싫었다. 그리하여 그는 한창 공부할 나이인 13세 때 이미 자신의 사업을 시작했다. 다른 친구들이 푼돈을 벌기 위해 길가에서 동네 어른들을 상대로 음료수를 팔고 있을 때, 그는 자기집 지하에 스키 수리점을 연 것이다. 얼마나 사업이 잘 되었는지 마이클이 고등학교를 졸업할 즈음에는 가게가 5개로 늘어나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1991년 자신의 스키 수리점들을 다 정리한 후, 마이클은 KPR Sports International 이라는 유명메이커 스포츠웨어 할인 판매업체를 설립했다. 사업이 승승장구하자 판매품목을 다변화하면서 회사이름도 Global Sports Inc로 바꾸었다. 1999년은 마이클의 사업은 전환기를 맞게 된다. 인터넷이 부르는 소리를 들었던 것이다. 인터넷을 통하지 않고서는 사업에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확신한 마이클은 그 해에Global Sports Interactive라는 인터넷을 통한 스포츠 e-commerce 전문업체를 설립한다 . 펜실베니아 킹어브 프러시아에 본부를 둔 이 회사는 The Athlete’s Foot, oxsports.com 같은 회사들을 위한 스포츠용품 e-commerce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다. 루빈의 회사는 기술개발에서부터 최종주문을 받는 것까지 다 개입을 한다. B2B 뿐만 아니라 B2C까지 다 커버를 함으로써 마이클의 회사는 불황이 무엇인지 모른다. 물건을 싸게 구입한 사람들이 기뻐하는 걸 볼 때 보람을 느낀다는 마이클의 회사는 광고비가 많이 들지 않는다. 고객들이 제발로 다 찾아오기 때문이다. 스포츠용품 e-commerce로 그가 2000년에 벌어들인 돈은 4천2백 8십만 달러이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스포츠광이었다. 스포츠에 대한 열정이 스포츠 관련 사업에 눈길을 돌리게 했고, 그는 지금 백만장자가 되었다. 수많은 대기업들이 그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그는 현재 Kmart’s Bluelight.com, 그리고 Northeast retailer Modell’s Sporting Goods 등을 위해 일을 하고 있다. 마이클의 주변 사람들은 얘기한다. 마이클이야 말로 <스포츠 e-commerce의 타이거 우즈>라고.*사례분석 출처: Entrepreneur 2001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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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2.09.29
  • 저작시기20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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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2045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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