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노 VS 에로B급 VS 예술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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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문학이든 영화든 심지어 철학이든 에로티시즘을 이야기할 때는 상업주의라는 함정을 벗어나지 못한다. 현실에서는 보고 싶어도 보기 힘든 장면을 보여주거나 묘사한다는 점에서 에로티시즘은 충분한 장사거리가 되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문화예술 중 산업적 측면이 가장 강한 영화에서의 에로티시즘은 언제나 상업성과 외설 시비에 휘말렸다. 실제로 포르노 영화의 범람은 상업성 때문일 것이다. 미국의 영화평론가 메이틀란드 맥도나우는 그의 저서 [세계에서 가장 에로틱한 영화 베스트50]에서,

`엿보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뭔가를 지켜보며 전율을 느낀다. 그리고 영화는 우리 모두를 관음증 환자로 만들어 버린다. 훔쳐보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잘 알고 있는 사실이겠지만 아무리 일상적인 장면이라 할지라도 은밀하게 숨어서 지켜보게 되면 묘한 흥미를 자아낸다.`

라는 말로 영화 속 에로티시즘의 매력을 설명하였다. 영화의 이러한 성격 때문에 상황에 따라서 상업주의의 함정에 빠지곤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에로티시즘과 관계된 모든 영화를 상업주의라는 칼날로 내려치는 것은 무리가 있다. 맥도나우는 여기서 좀 더 나아가 로맨틱한 영화, 에로틱한 영화, 포르노 영화 간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지적하였다.

본문내용

서 있긴 뭐 하니 <거짓말>이라는 사회적 문제작 앞에 서 있었던 것이라고.
문제는 다시 다양성이다.
위에서 에로티시즘 영화가 서 있는 경계를 살펴보았다. 하나는 로맨틱 영화와 포르노물의 경계, 다른 하나는 리얼리즘의 경계. 이 경계를 구분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건 맥도나우의 말처럼 에로티시즘은 상당히 개인적인 문제로서 성별, 성장과정, 성에 대한 신념에 따라 좌우되기 때문이다.
그럼 답은 간단하다. <사랑과 영혼>을 에로영화로 본 사람은 에로영화로 그렇게 보는 것이고 <애련화>를 포르노로 본 사람은 그렇게 보는 것이다. <거짓말>을 보고 감동받아 눈물을 흘리는 사람은 흘리는 것이고 성적 쾌를 느낀 사람은 소리를 지르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각자의 취향에 따라 받은 예술적 감동과 쾌에서 우열관계를 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특히 성적인 쾌를 주겠다는 목적으로 제작되는 에로티시즘 영화라면 더욱 그렇다. 왜 <사랑과 영혼>을 보고 에로틱한 상상을 하는 건 괜찮고 <애련화>를 보고 에로틱한 상상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인가?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통속적인 예술이 진지한 예술의 진지성에 위축되어 어중간한 진지성을 흉내내며 어떻게 예술이 되어 볼까 하는 기회주의적 발상입니다.
<대중예술의 이해>의 박상봉 선생의 이 말은 마치 포르노와 에로티시즘 그리고 리얼리즘과 에로티시즘을 구태여 구별하려고 하는 태도에 대한 비판으로 들린다. 그냥 "영화 어땠어?" 이렇게 물으면 "화끈했어." 이런 답을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으면 되지 않을까? 그게 바로 마광수 교수가 말한 리얼리즘적 에로티시즘이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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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5페이지
  • 등록일2002.10.01
  • 저작시기2002.10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04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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