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독일문화기행>
본문내용
하루의 여행 동행자들끼리도 헤어질 때는 정이 철철 흐르는 말로 여운을 남기며 아쉽게 헤어지는데, 이 사람들은 5일간이나 행동을 같이 해 놓고도 인사가 너무 간단하다. 무표정하게 앉았다가 나가는 사람과 눈이 마주치니 손가락 까딱하며 "바이 바이!"라고 하는게 전부이다.
서로 술대접까지 하며 남달리 정들였던 뒷좌석의 노부부, 식당에서 늘 먹을 것을 잘 챙겨주던 젊잖은 부부는 적어도 서로 연락처를 교환하자는 제안을 할것으로 기대하고 명함을 준비해 있었지만, 이들도 그냥 "바이 바이"뿐이다. 또 바로 앞 자리의 사내는 조금 전까지도 선착장에서 얘기를 나누며 중국에 관심이 많은데 한국인 친구를 알게 되어 다행이라고 했으니 틀림 없이 헤어질 때는 무슨 약속을 할듯도 한데, 이 자도 마찬가지다. 이민족인 나에게만 그런게 아니고 자기들끼리도 "다음에 또 만나자"는 헛말 인사 한 마디 조차 없다. 이러니 이 사람들은 같이 살다가 헤어질 때는 미련 없이 떠나는가봐.
한국인들처럼 억지스럽지 않고 업무에 관한한 사람을 가리지 않고 진지하고 성실하고 대해주는 영국인에게 처음에는 대개 호감을 갖게 된다. 이에 고무된 한국인들이 자기에게만 특히 호감을 가지는 줄로 알고 바짝 접근하여 공들여 친분을 쌓고는 이만하면 공사간에 무관하게 대해도 되겠다고 여기고 접하니, 어느새 또 살살해지더라며 영국인들을 변덕쟁이라고 표현하는 한국교포가 많은데, 그건 문화의 벽 때문이라 생각된다. 우리는 친한 사람한테는 안 될 일도 되게 해 주면서 소원한 사람한테는 되는 일도 안된다며 연막을 칠만큼 사리보다 친분을 앞세운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정보다 사리를 앞세우니 뭔가 핀트가 안 맞는다.
이 사람들은 상대와 의견이 같은가를 계속 확인하면서 대화를 이어 가는게 관습인데, 우리는 상대와의 논리적인 의견조정보다 오히려 서로 다를지 모르는 의견이 충돌할가 걱정하여, 솔직한 의견개진을 피하거나 의견차를 완충시킬 방법을 찾는 쪽으로 대화를 이끌어 간다. 저 쪽에서 토론자세로 나오면, 한국인들은 논리로 대응하기보다 정담으로 상대의 날카로운 말투를 누그려뜨려서 얼버무려 버리니, 말하자면 "우리 서로 따지지 말고 친해져서 적당히 봐주기 하자"는 식으로 술잔부터 권한다. 한국인을 상대해본 외교관이나 무역상담자들이 한국을 파고들려면 만반의 자료나 전문적 상담능력보다 술 대접솜씨나 좋고 능난한 뒷거래 실력만 갖추면 된다는 식의 한국인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국제무대에 번져가고 있어 걱정스럽다.
이 사람들의 의식구조와 관습이 우리의 체질에 맞지 않은 점이 허다한데도 국내에 있을 때만큼 화나는 일이 별로 없다는 말을 대부분의 교포들이 하는 것을 들을 수 있다. 우리는 아침 출근길 무질서한 끼어들기 교통전쟁에서부터 내 민족 인간들에 대한 악담이 치밀어 올라, 하루 종일 무질서와 부조리 속에서 질서지키려다가 손해보고 바보되는 일을 당하는게 일과였는데, 여기서는 "질서는 아름답고 기분 좋은 것"이란 말의 의미를 수시로 실감하도록 상쾌한 하루가 대부분이다. 어디를 가나 질서, 무엇을 하든 조리대로 되므로 날뛴다고 덕 볼일도, 체면 차리다가 손해볼 일도 없다. 그러기에 여기에 맛들인 교포들 중에는 귀국하기가 두렵다고 하는 이도 있다.
질서가 너무 중시되고, 개인의 사생활이 너무 존중되어 공동주택의 이웃끼리도 청하지 않으면 평생 문 한번 두드리는 일이 없을 정도로 정나눔이 없는 것이 덜 좋다 싶을 때는, 지지고 싸워도 정으로 엉켜 사는 한국이 좋다고 하는 사람이 많은데, 이들은 대개 40대 이상의 사람들이나 이곳에 재미를 못 붙힌 사람들이다. 정문화 사회는 끈적끈적한 인정이 사회를 얽어매는 구실을 하지만, 때론 정이 합리를 흐트려 부조리가 많은 것이 탈이고, 이곳처럼 합리주의 사회는 정연한 조리로 능률의 극대화를 기할 수는 있으나 훈기가 적어 덜 좋다.
우리는 초면이라도 만났다하면 서로 관계설정을 위해서 나이, 성씨, 고향, 출신교, 직업 등 제반 인적사항을 숨 가쁘게 물어, 말을 높히고 낮추는 등 절충작업에 들어간다. 친분을 다지기 위한 공통점이 잘 안 나타나면, 군대근무지, 자식들 애기까지 끌어내어 동류의식을 찾는다. 이런 기초조사를 바탕으로 고스톱, 술대작 등으로 벽허물기를 몇 차례 해 버리면 곧 형, 아우가 되어 못 할말이 없어진다. 이렇게 만난 것도 보통 인연이 아니라며 헤어질 때는 연락처를 적어주고 차후의 만남을 기약하는 일도 수 없이 하는 등 인간관계를 다지기에 바쁘다.
이 사람들을 우리식으로 접근하려 들면 뭔가 대화의 핀트가 계속 빗나가 당혹스러울 때가 많다. 우리가 쉽게 밝히는 나이, 결혼여부 등은 대단한 비밀인듯 연막을 치고, 우리로서는 대단한 수치라고 여겨 철저히 숨길 이혼한 전 남편 이야기나, 자기 아내의 남자친구에 대한 언급 등 응답하기 곤란한 얘기를 서슴 없이 늘어 놓으니, 우리와는 가치관이 크게 다르다는 것을 수시로 확인하며, 친숙해지다가도 뚫기 어려운 벽에 부딛친다. 누구의 가치관이 옳으냐고 흑백을 가릴 성질이 아니니 서로를 인정하며 서로 필요한 만큼 주고 받는 수 밖에 없겠다.
정이 실리지 않은 몇 마디 "바이 바이"소리를 들으며 주차장을 벗어나니 속까지 찬 바람이 이는데 설상가상으로 비바람이 몰아쳐 안팎이 으슬으슬하다. 택씨를 잡으려도 보이지 않자 아내가 그냥 걷자기에 끝까지 모험을 해보자고 마음 먹었다. 새찬 겨울 비바람에 뒤로 제쳐지는 우산을 날려 보내지 않으려고 부등켜 잡고 앞서고 뒷따르며 새벽 세시의 텅빈 거리를 헤쳐가는 두 남녀의 모습은 극적인 영화의 한 장면이라 해도 손색이 없겠다. 갈 때 20분 걸린 길을 마구 달려 15분만에 집에 이르렀다.
문 열고 들어 서기 바쁘게 흠뻑 젖은 옷을 벗어 던지고 막 틀어 놓은 라지에다에 등을 대고 오들오들 떨며 빨리 달아오기를 기다리는데 윗층으로 올라간 아내가 기척이 없어 덜컥 갑이 났다. 뛰어 올라 가보니 히터를 틀어 놓고 이불을 머리 끝까지 덮어 쓰고 누워있다. 둘이가 이 길로 제발 몸져 눕지만 않는다면 아직 몸은 쓸만하다는 것이 입증되었으니 다음부터는 무지막지한 모험보다 슬기로운 여행을 계획하여 많이 배워가야지 다짐하며 자리에 누우니 거진 5시다
서로 술대접까지 하며 남달리 정들였던 뒷좌석의 노부부, 식당에서 늘 먹을 것을 잘 챙겨주던 젊잖은 부부는 적어도 서로 연락처를 교환하자는 제안을 할것으로 기대하고 명함을 준비해 있었지만, 이들도 그냥 "바이 바이"뿐이다. 또 바로 앞 자리의 사내는 조금 전까지도 선착장에서 얘기를 나누며 중국에 관심이 많은데 한국인 친구를 알게 되어 다행이라고 했으니 틀림 없이 헤어질 때는 무슨 약속을 할듯도 한데, 이 자도 마찬가지다. 이민족인 나에게만 그런게 아니고 자기들끼리도 "다음에 또 만나자"는 헛말 인사 한 마디 조차 없다. 이러니 이 사람들은 같이 살다가 헤어질 때는 미련 없이 떠나는가봐.
한국인들처럼 억지스럽지 않고 업무에 관한한 사람을 가리지 않고 진지하고 성실하고 대해주는 영국인에게 처음에는 대개 호감을 갖게 된다. 이에 고무된 한국인들이 자기에게만 특히 호감을 가지는 줄로 알고 바짝 접근하여 공들여 친분을 쌓고는 이만하면 공사간에 무관하게 대해도 되겠다고 여기고 접하니, 어느새 또 살살해지더라며 영국인들을 변덕쟁이라고 표현하는 한국교포가 많은데, 그건 문화의 벽 때문이라 생각된다. 우리는 친한 사람한테는 안 될 일도 되게 해 주면서 소원한 사람한테는 되는 일도 안된다며 연막을 칠만큼 사리보다 친분을 앞세운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정보다 사리를 앞세우니 뭔가 핀트가 안 맞는다.
이 사람들은 상대와 의견이 같은가를 계속 확인하면서 대화를 이어 가는게 관습인데, 우리는 상대와의 논리적인 의견조정보다 오히려 서로 다를지 모르는 의견이 충돌할가 걱정하여, 솔직한 의견개진을 피하거나 의견차를 완충시킬 방법을 찾는 쪽으로 대화를 이끌어 간다. 저 쪽에서 토론자세로 나오면, 한국인들은 논리로 대응하기보다 정담으로 상대의 날카로운 말투를 누그려뜨려서 얼버무려 버리니, 말하자면 "우리 서로 따지지 말고 친해져서 적당히 봐주기 하자"는 식으로 술잔부터 권한다. 한국인을 상대해본 외교관이나 무역상담자들이 한국을 파고들려면 만반의 자료나 전문적 상담능력보다 술 대접솜씨나 좋고 능난한 뒷거래 실력만 갖추면 된다는 식의 한국인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국제무대에 번져가고 있어 걱정스럽다.
이 사람들의 의식구조와 관습이 우리의 체질에 맞지 않은 점이 허다한데도 국내에 있을 때만큼 화나는 일이 별로 없다는 말을 대부분의 교포들이 하는 것을 들을 수 있다. 우리는 아침 출근길 무질서한 끼어들기 교통전쟁에서부터 내 민족 인간들에 대한 악담이 치밀어 올라, 하루 종일 무질서와 부조리 속에서 질서지키려다가 손해보고 바보되는 일을 당하는게 일과였는데, 여기서는 "질서는 아름답고 기분 좋은 것"이란 말의 의미를 수시로 실감하도록 상쾌한 하루가 대부분이다. 어디를 가나 질서, 무엇을 하든 조리대로 되므로 날뛴다고 덕 볼일도, 체면 차리다가 손해볼 일도 없다. 그러기에 여기에 맛들인 교포들 중에는 귀국하기가 두렵다고 하는 이도 있다.
질서가 너무 중시되고, 개인의 사생활이 너무 존중되어 공동주택의 이웃끼리도 청하지 않으면 평생 문 한번 두드리는 일이 없을 정도로 정나눔이 없는 것이 덜 좋다 싶을 때는, 지지고 싸워도 정으로 엉켜 사는 한국이 좋다고 하는 사람이 많은데, 이들은 대개 40대 이상의 사람들이나 이곳에 재미를 못 붙힌 사람들이다. 정문화 사회는 끈적끈적한 인정이 사회를 얽어매는 구실을 하지만, 때론 정이 합리를 흐트려 부조리가 많은 것이 탈이고, 이곳처럼 합리주의 사회는 정연한 조리로 능률의 극대화를 기할 수는 있으나 훈기가 적어 덜 좋다.
우리는 초면이라도 만났다하면 서로 관계설정을 위해서 나이, 성씨, 고향, 출신교, 직업 등 제반 인적사항을 숨 가쁘게 물어, 말을 높히고 낮추는 등 절충작업에 들어간다. 친분을 다지기 위한 공통점이 잘 안 나타나면, 군대근무지, 자식들 애기까지 끌어내어 동류의식을 찾는다. 이런 기초조사를 바탕으로 고스톱, 술대작 등으로 벽허물기를 몇 차례 해 버리면 곧 형, 아우가 되어 못 할말이 없어진다. 이렇게 만난 것도 보통 인연이 아니라며 헤어질 때는 연락처를 적어주고 차후의 만남을 기약하는 일도 수 없이 하는 등 인간관계를 다지기에 바쁘다.
이 사람들을 우리식으로 접근하려 들면 뭔가 대화의 핀트가 계속 빗나가 당혹스러울 때가 많다. 우리가 쉽게 밝히는 나이, 결혼여부 등은 대단한 비밀인듯 연막을 치고, 우리로서는 대단한 수치라고 여겨 철저히 숨길 이혼한 전 남편 이야기나, 자기 아내의 남자친구에 대한 언급 등 응답하기 곤란한 얘기를 서슴 없이 늘어 놓으니, 우리와는 가치관이 크게 다르다는 것을 수시로 확인하며, 친숙해지다가도 뚫기 어려운 벽에 부딛친다. 누구의 가치관이 옳으냐고 흑백을 가릴 성질이 아니니 서로를 인정하며 서로 필요한 만큼 주고 받는 수 밖에 없겠다.
정이 실리지 않은 몇 마디 "바이 바이"소리를 들으며 주차장을 벗어나니 속까지 찬 바람이 이는데 설상가상으로 비바람이 몰아쳐 안팎이 으슬으슬하다. 택씨를 잡으려도 보이지 않자 아내가 그냥 걷자기에 끝까지 모험을 해보자고 마음 먹었다. 새찬 겨울 비바람에 뒤로 제쳐지는 우산을 날려 보내지 않으려고 부등켜 잡고 앞서고 뒷따르며 새벽 세시의 텅빈 거리를 헤쳐가는 두 남녀의 모습은 극적인 영화의 한 장면이라 해도 손색이 없겠다. 갈 때 20분 걸린 길을 마구 달려 15분만에 집에 이르렀다.
문 열고 들어 서기 바쁘게 흠뻑 젖은 옷을 벗어 던지고 막 틀어 놓은 라지에다에 등을 대고 오들오들 떨며 빨리 달아오기를 기다리는데 윗층으로 올라간 아내가 기척이 없어 덜컥 갑이 났다. 뛰어 올라 가보니 히터를 틀어 놓고 이불을 머리 끝까지 덮어 쓰고 누워있다. 둘이가 이 길로 제발 몸져 눕지만 않는다면 아직 몸은 쓸만하다는 것이 입증되었으니 다음부터는 무지막지한 모험보다 슬기로운 여행을 계획하여 많이 배워가야지 다짐하며 자리에 누우니 거진 5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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