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의 문체반정과 연암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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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정조의 문체반정과 연암체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정조의 문체반정과 연암체

1. 18세기 문학의 조류와 연암의 문학관과 사상 그리고「연암체」

2. 정조의 문학관과 문화정책

3. 문체반동과 그 반향

본문내용

갔던 燕巖體도 消康狀態로 들어가게 되었다.
文體反正이후 新文體變動은 뒷걸음을 했으며 燕巖의 文學은 훌륭한 계승자를 발견하지 못했다. 茶山과 같은 위대한 實學者가 불우한 처지로서나마 生存하여 農漁村의 참담한 현실과 苛斂誅求를 고발하는 社會詩와 民衆의 生活 및 언어감각에 통하는 朝鮮詩를 발표했으나, 漢詩라는 특성 때문인지 燕巖의 산문같이 크게 보급되고 영향을 미칠 추세는 아니었다.
實學派의 文學은 계속 발전하지 못하고 말았으나 다른 한편 그 비판과 저항의 맥은 민중적 예술, 판소리계의 庶民文學 탈춤 民謠에서 이어지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文體反正의 保守性은 言論과 思想의 桎梏을 가져왔고, 進步的 文人學者들의 思想과 文學藝術活動에 쐐기를 박은, 保守的 思想彈壓이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文體反正은 文學과 思想史에서 反時代的인 역할을 했다고 역사적 평가를 받아야 할 것이다.
끝으로, 燕巖體는 小說史的으로 稗官小品과 漢文短篇의 중간에 위치했다고 할 수 있다. 稗官小品의 文體가 流麗하고 세련되어 貴族的 香臭를 풍기는 것이고, 漢文短篇의 文體가 拙梏하고 日常口語에 접근해서 오히려 生動感을 줄 수 있는 것이라면, 稗官小品의 참신한 면을 攝取하고 풍자적 성격이 강한 燕巖體는 無名의 作家들에 의해 創作된 漢文短篇에 직접 간접으로 영향을 끼쳤던 것이다. 燕巖體 자체는 燕巖 자신의 熱河日記 以外에 특출한 作品을 만들어 낼 수 없었지만, 한편에서 漢文短篇이 쏟아져 나와 19세기 전반기에 靑邱野談등으로 集大成되게 된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그 批判과 抵抗의 脈은 민중적 예술, 판소리계의 서민문학, 탈춤, 民謠에서 이어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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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5페이지
  • 등록일2002.12.24
  • 저작시기2002.1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165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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