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들어가는 말
Ⅱ. 독일적 비극의 시작
Ⅱ.1. 십자군 전쟁 시기
Ⅱ.2. 중세의 사회경제적 상황과 유대인
Ⅲ. 종교개혁 이후의 반유대주의
Ⅳ. 계몽주의, 프랑스 혁명의 이상과 현실
Ⅳ.1. 반유대주의의 이론적 논거
Ⅳ.2. 사회 속으로의 동화: “유럽 문화로 들어가는 입장권
Ⅴ. 종교적 반유대주의에서 정치적 반유대주의로
Ⅵ. 독일 유대인의 자의식과 정체성
Ⅶ. 나오는 말
Ⅱ. 독일적 비극의 시작
Ⅱ.1. 십자군 전쟁 시기
Ⅱ.2. 중세의 사회경제적 상황과 유대인
Ⅲ. 종교개혁 이후의 반유대주의
Ⅳ. 계몽주의, 프랑스 혁명의 이상과 현실
Ⅳ.1. 반유대주의의 이론적 논거
Ⅳ.2. 사회 속으로의 동화: “유럽 문화로 들어가는 입장권
Ⅴ. 종교적 반유대주의에서 정치적 반유대주의로
Ⅵ. 독일 유대인의 자의식과 정체성
Ⅶ. 나오는 말
본문내용
나라에서 이방인들은 다수의 뜻을 결정할 수 없다."
) Ismar Elbogen/Eleonore Sterling: 앞의 책, S. 277.
이 문제의 유일한 해결책은 유대인이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창조적 역량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는 독자적인 유대 국가권력을 창출하는 것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이 구상들을 실현하려는 헤르츨의 주장과 노력들은, 그러나 극소수 계층에서만 지지를 받았을 뿐이었다. 대다수 독일 유대인들은 반유대주의를 해결하고 완전한 사회적 동화를 보장해 줄 진보에 대한 믿음을 계속 간직하고 있었다. 따라서 시오니즘과 같은 '극단적인' 유대 민족주의와 선을 긋고 독일을 조국으로 인정한다는 입장을 견지한 <중앙협회>가 독일의 전 유대인을 포괄하는 단체로 자리매김했다. 독일계 유대인들의 이러한 자기인식과 독일에 대한 고향의식은 히틀러 집권 직후부터 홀로코스트의 징후가 감지되었던 수년의 기간에
) 이 시기의 나치의 유대인 말살 계획에 대해서는 하겐 슐체: 앞의 책, 270면 이하 참조.
비록 많은 유대인들이 독일 땅을 떠났음에도, '고향'에 남아 결국 비극을 맞이한 유대인들의 마음을 헤아리게 한다.
Ⅶ. 나오는 말
수 세기 동안 유럽에서 면면히 이어진 반유대주의는 각 시대별로 종교적 편견과 독단, 정치경제적 폐해와 궁핍의 배출구 등, 상당히 복합적이고 다각적인 배경과 원인을 안고 있었다. 특히 독일에서는 근세로 이어진 과도기의 반유대주의가 인종주의적 특성으로 변모된 과정에서 국수주의적인 지식인들이 제공한 호전적이며 편협한 이론적 논거들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행사했고 나치의 인종이데올로기의 빌미로 악용되었다.
또한 평등과 인간애, 인권 등 서구 세계의 독특한 휴머니즘적인 정신사적 전통의 가치들이 그 보편성이 갖는 긍정적인 의미에도 불구하고 반유대주의 역사의 스펙트럼에서 볼 때에는 오로지 그들에게만 적용된 개념이 아니었는가 하는 의문도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독단과 편견을 고착화하고 인간을 규격화하는 종교적 도그마와 억압적 이데올로기의 악마적 역기능이 반유대주의 역사의 중요한 사회문화사적 모티브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오늘날에도 팔레스타인, 르완다, 코소보 등, 세계 구석구석에서 자행된 그리고 자행되고 있는 인종과 종교 문제로 인한 무차별적 테러와 내전, 학살의 비극을 통해 이러한 불행한 유산이 되풀이되고 있음을 보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작은 지역사회에서 큰 국가공동체에 이르기까지 온갖 형태의 차별을 철폐하고 모든 형태의 소수집단에 대한 문화적 이해와 다양성의 수용, 관용과 성숙한 문화의식의 소중함과 절실함을 느끼게 된다.
Zusammenfassung
Das sozial-kulturhistorische Verstandnis der antisemitischen Geschichte in Deutschland. Von dem Mittelalter bis vor Weimarer Republik.
Suh, Jung Il (Chunan Univ.)
Das Schicksal der Juden wurde durch die politischen Wandlungen und Religionsangelegenheiten bestimmt. Die politsche und wirtschaftliche Lage der deutschen Jude war vor allem das Resulat einer Verfolgungspolitik der christlichen Gesellschaft in Europa. Der wirtschaftliche Anlas der Verfolgungen im Mittelalter war die Beschaftigung der Juden mit dem Geldhandel. Nach volkstumlicher Vorstellung war Geldgier und Habsucht eine judische Charaktereigenschaft.
Nach wie vor galten die Juden als fremde Gruppe. Der politsche Antisemitismus in Deutschland hatte die besondere Pragung. Staatlicher Zwang, schwere Wirtschaftskrisen und soziale Misstande verursachten Unzufriedenheit unter Bevolkerungsschichten. Aber diese Unzufriedenheit und Wut entluden sich uber den Juden.
Immer erwies sich der Judenhas als der die Herrschenden bequemste Weg, die Bevolkerung von den wirklichen Ursachen ihrer Lebensnot abzulenken. Der politsch-aggresssive Antisemitismus in Deutschland war jedoch keineswegs die Erfindung der Unterschichten. Hierbei spielten die Gelehrten und Volksdemagogen eine wichtige Rolle.
Der bergang vom religiosen Antisemitismus zum Rassenantisemitismus war fliesend in den biologistische Gesellschaftstheorien der zweiten Halfte des 20 Jhs. Wahrend der christlich gepragte Antijudaismus den Juden ein Mittel gab, durch die Taufe "das Entreebillet zur europaischen Kultur" (Heinrich Heine) zu verschaffen, versperrte der Rassenantisemitismus diesen Ausweg ganzlich.
출전: 뷔히너와 현대문학, 18호 (2002년 5월)
학회URL: http://buechner.german.or.kr/
) Ismar Elbogen/Eleonore Sterling: 앞의 책, S. 277.
이 문제의 유일한 해결책은 유대인이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창조적 역량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는 독자적인 유대 국가권력을 창출하는 것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이 구상들을 실현하려는 헤르츨의 주장과 노력들은, 그러나 극소수 계층에서만 지지를 받았을 뿐이었다. 대다수 독일 유대인들은 반유대주의를 해결하고 완전한 사회적 동화를 보장해 줄 진보에 대한 믿음을 계속 간직하고 있었다. 따라서 시오니즘과 같은 '극단적인' 유대 민족주의와 선을 긋고 독일을 조국으로 인정한다는 입장을 견지한 <중앙협회>가 독일의 전 유대인을 포괄하는 단체로 자리매김했다. 독일계 유대인들의 이러한 자기인식과 독일에 대한 고향의식은 히틀러 집권 직후부터 홀로코스트의 징후가 감지되었던 수년의 기간에
) 이 시기의 나치의 유대인 말살 계획에 대해서는 하겐 슐체: 앞의 책, 270면 이하 참조.
비록 많은 유대인들이 독일 땅을 떠났음에도, '고향'에 남아 결국 비극을 맞이한 유대인들의 마음을 헤아리게 한다.
Ⅶ. 나오는 말
수 세기 동안 유럽에서 면면히 이어진 반유대주의는 각 시대별로 종교적 편견과 독단, 정치경제적 폐해와 궁핍의 배출구 등, 상당히 복합적이고 다각적인 배경과 원인을 안고 있었다. 특히 독일에서는 근세로 이어진 과도기의 반유대주의가 인종주의적 특성으로 변모된 과정에서 국수주의적인 지식인들이 제공한 호전적이며 편협한 이론적 논거들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행사했고 나치의 인종이데올로기의 빌미로 악용되었다.
또한 평등과 인간애, 인권 등 서구 세계의 독특한 휴머니즘적인 정신사적 전통의 가치들이 그 보편성이 갖는 긍정적인 의미에도 불구하고 반유대주의 역사의 스펙트럼에서 볼 때에는 오로지 그들에게만 적용된 개념이 아니었는가 하는 의문도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독단과 편견을 고착화하고 인간을 규격화하는 종교적 도그마와 억압적 이데올로기의 악마적 역기능이 반유대주의 역사의 중요한 사회문화사적 모티브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오늘날에도 팔레스타인, 르완다, 코소보 등, 세계 구석구석에서 자행된 그리고 자행되고 있는 인종과 종교 문제로 인한 무차별적 테러와 내전, 학살의 비극을 통해 이러한 불행한 유산이 되풀이되고 있음을 보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작은 지역사회에서 큰 국가공동체에 이르기까지 온갖 형태의 차별을 철폐하고 모든 형태의 소수집단에 대한 문화적 이해와 다양성의 수용, 관용과 성숙한 문화의식의 소중함과 절실함을 느끼게 된다.
Zusammenfassung
Das sozial-kulturhistorische Verstandnis der antisemitischen Geschichte in Deutschland. Von dem Mittelalter bis vor Weimarer Republik.
Suh, Jung Il (Chunan Univ.)
Das Schicksal der Juden wurde durch die politischen Wandlungen und Religionsangelegenheiten bestimmt. Die politsche und wirtschaftliche Lage der deutschen Jude war vor allem das Resulat einer Verfolgungspolitik der christlichen Gesellschaft in Europa. Der wirtschaftliche Anlas der Verfolgungen im Mittelalter war die Beschaftigung der Juden mit dem Geldhandel. Nach volkstumlicher Vorstellung war Geldgier und Habsucht eine judische Charaktereigenschaft.
Nach wie vor galten die Juden als fremde Gruppe. Der politsche Antisemitismus in Deutschland hatte die besondere Pragung. Staatlicher Zwang, schwere Wirtschaftskrisen und soziale Misstande verursachten Unzufriedenheit unter Bevolkerungsschichten. Aber diese Unzufriedenheit und Wut entluden sich uber den Juden.
Immer erwies sich der Judenhas als der die Herrschenden bequemste Weg, die Bevolkerung von den wirklichen Ursachen ihrer Lebensnot abzulenken. Der politsch-aggresssive Antisemitismus in Deutschland war jedoch keineswegs die Erfindung der Unterschichten. Hierbei spielten die Gelehrten und Volksdemagogen eine wichtige Rolle.
Der bergang vom religiosen Antisemitismus zum Rassenantisemitismus war fliesend in den biologistische Gesellschaftstheorien der zweiten Halfte des 20 Jhs. Wahrend der christlich gepragte Antijudaismus den Juden ein Mittel gab, durch die Taufe "das Entreebillet zur europaischen Kultur" (Heinrich Heine) zu verschaffen, versperrte der Rassenantisemitismus diesen Ausweg ganzlich.
출전: 뷔히너와 현대문학, 18호 (2002년 5월)
학회URL: http://buechner.german.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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