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천 박사저작선집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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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메이천 박사저작선집요약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제1장 메이천 박사의 신학에 대한 이해
Ⅰ. 서 론
Ⅱ. 메이천의 작품에 대한 고찰
1. 누가복음 1장에 나타난 찬양시들
2. 누가복음 첫 두장의 기원
3. 2세기의 동정녀 탄생
4. 예수님과 바울
5. 기독교 문화
6. 역사와 신앙
Ⅲ. 결론

제2장 예수님과 바울
Ⅰ. 서문
Ⅱ. 예수님과 바울

제3장 누가복음 1장에 나타난 찬양시들

제4장 누가복음 첫 두장의 기원

제5장 2세기의 동정녀 탄생

제6장 기독교 문화

제7장 역사와 신앙

제8장 투쟁하는 기독교

메이천의 신학 방법론

본문내용

것이라는 그의 확신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
메이천은 때로는 하나님의 직접적인 개입을 인정하지 않고는 설명할 수 없는 역사적 사건들이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인정하였다. 메이천과 여타 역사주의 가정들을 받아들이고 있던 하드락과 같은 성경학자들 사이의 결정적인 차이는 그 같은 신적 개입에 대한 메이천의 개방성에 있었다.
그는 활동 초기부터 성경에 대한 역사적 접근법을 통해 다음과 같은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신앙은 모든 증거들을 배제한 비이성적 도약이 아니라, 오히려 정확하게 해석만 된다면 그 증거들과 완전히 일치하는 확신이라고 하는 점이다.
1912년 「프린스톤 신학평론」에 실린 메이천의 세 번째 논문 "2세기의 동정녀 탄생"에서 메이천은 사도신경의 기초가 된 고대 로마의 신앙고백에서 드러난 증거와, 교부들이 남긴 증거들을 검토하여 110년에 이르러 이미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에 대한 믿음이 기독교 공동체에 확고히 뿌리내리고 있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 논문에서 성경에 대한 역사적 탐구라고 하는 메이천의 접근법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에게 있어, 동정녀 탄생이 2세기 기독교 신앙의 근본적인 요소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것이 이미 1세기 기독교의 독자적이고 기본적인 가르침의 일부로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메이천이 가졌던 기독교 정신에 바탕한 철학적 전제들을 이용해, 당시 역사적 방법을 사용하고 있던 기존의 많은 사람들과는 다른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그가 선택한 논의는 역사적 방법을 받아들이면서도, 다른 역사가들에 의해 채택된 일부 전제들을 배제하는 것이었다. 메이천은 성경에 나타난 역사적 기적들에 대해 단순히 개연성 있는 설명만 아니라, 보다 정확한 설명을 추구하였다.
1912년 신학교 설립 100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프린스톤 신학교 교수들에 의해 발간된 「성경 신학연구」를 통해 메이천의 그 해 마지막 논문 "예수님과 바울"이 발표되었다.
이 논문에서 메이천의 기본 주장은 바울이 예수의 참된 제자였다는 것이다. 그는 바울사상의 중심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교통이라고 주장하였다. 이것이 바울 자신의 삶의 원천이라고 생각하였다.
이 논문에서 그는 기독교의 초자연적 이해와 자연적인 이해를 구분하고, 자신은 이 둘 사이의 지적 중간지점을 만들어 두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메이천에게 있어서 초자연적 구속 종교인 기독교에 대한 타당성 있는 유일한 설명은 역사적 해석이다. 결국 메이천은 역사적 신앙의 열렬한 옹호자가 되었다.
1912년 9월 20일 프린스톤 신학교 설립 100주년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기독교 문화"라는 제목으로 연설을 하게 되었다. 메이천은 이 논문에서 기독교가 문화를 헌신케 하여 궁극적으로 하나님께 봉사하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메이천은 기독교로부터 초자연적인 것들을 제거하고, 기독교 신앙을 자연과 문화, 역사적 힘의 산물로 재해석하려는 시도 이면에서 작용하고 있는 역사주의 가정들을 분명히 깨닫고 있었다. 그가 역사주의적 정신이 이미 교회에 침투하였다고 말했을 때, 그는 사실 신학적 자유주의를 역사주의의 산물로 정의하였던 것이다. 역사주의적 해석에 반대하는 이유는 그것이 초자연적인 것들을 문화적 상대주의 의미로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메이천이 기독교에 대해 가장 심각한 사상적 적대 세력의 특징을 정확히 꼬집어 내었고, 활발한 지적 활동이야말로 그것과 싸우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던 것으로 결론지을 수 있다.
1915년 5월에 신약신학 조교수로 임용되어 취임 연설 제목이 "역사와 신앙"이었다. 메이천의 작업은 주로 역사에 기초하고 있다. 이 책의 목적은 기독교 경건을 보다 확고한 역사적 지식 위에 세우는 것이었다.
메이천의 고백주의가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 것이 이 책을 통해서이다. 이 책에서 메이천은 성경의 가르침에 대한 뛰어난 진술이라 할 수 있는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를 수 차례 걸쳐 인용하고 있다. 그가 인용한 것은 언제나 소요리 문답이었다. 또한 메이천은 기독교가 반드시 동시대의 사상을 이해하기 위한 지적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을 역설한다.
메이천의 문화와 역사에 대한 관심과 당대의 지적 투쟁에 대한 참여는 그를 근본주의자들과 구별시키는 요인들이다. 그는 자유주의 공격에 직면해 교회의 일치와 순결 사이에서 성경적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근본주의자들과 함께 한 개혁주의 신학자였다.
그는 이 책에서 처음부터 줄곧 성경을 역사적으로 연구할 것에 대한 자신의 관심을 역설하였다. 메이천은 급진적 역사주의와 신학적 자유주의 모두의 뿌리엔 자연주의적 가정들이 자리하고 있음을 분명하게 지적하였다.
연설을 마치면서, 메이천은 역사와 신앙의 관계 문제를 다시 언급한다. 그에게 있어 이 둘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어, 역사는 신앙의 객관적 기초를 제공하며, 역으로 신앙은 역사를 경험적으로 확증하는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역사와 신앙의 관계를 다루면서 메이천은 간단하면서도 매우 날카롭게 성경의 권위를 강조하고 있다. 성경은 "바로 한 가운데 있다. 예수님에 관한 기사에 있어 그러할 뿐 아니라, 성경은 그 자체의 본질적 주장을 확증하여 주었다." 그는 성경이 교회의 기초라고 주장하였다.
메이천이 교회 내 일치와 순결의 균형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 것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들기 위한 그의 관심 때문 이었다. 메이천은 장로교 논쟁에 심각하게 말려들어 있었다. 그것은 성경의 신실함과 명료함에 대한 강한 확신에 기초한 것이었다.
메이천은 이미 그의 활동 초기에 성경에 대한 역사적 연구가 정당한 것일 뿐 아니라 필연적인 것이라고 단정하였다. 그러나 역사주의의 본질적 교의들은 거부하였다.
정확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자, 신앙과 행위의 정확 무오한 유일의 법칙으로서 성경이 가진 신뢰성에 대한 메이천의 확신은 그가 자란 미국 남부 배경의 영향으로, 어릴 적부터 강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메이천은 1906년 프린스톤의 교수로 임명된 뒤 성경과 당대의 학문에 대한 세밀한 연구를 시작하였다. 이러한 연구의 결과 그는 자신이 가졌던 최초의 확신을 재확인할 수 있었으며, 그의 관점은 1915년에 이르러 완전히 자리 잡게 되었다.

키워드

메이천,   요약,   신학
  • 가격3,000
  • 페이지수28페이지
  • 등록일2004.06.15
  • 저작시기2004.06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55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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