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남미의 춤과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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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써 이 장르에 변화를 주었다. 현재의 corrido는 거의 대부분이 불법 마약 밀매업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래서 이것을 narcocorrido라고 부르게 되었다.
Narcocorrido는 옛날에 corridos de gavilleros를 현대적인 해석으로이 착한 밀매업자"를 다룬것이며 단, 현재의 등장 인물들은 불법 마약 거래와 관련이 있는 사람들이란 것이다. 이렇게 밀수업자들과 그에 관련된 corrido가 영웅적인 혁명가들의 자리를 가로채게 된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narcocorrido가 corrido에 포함되었을까? 어떻게 밀매업자들이 그들의 용기로 인해 칭찬과 존경을 받는 것일까? 끈질기고도 격렬한 개인사를 묵인해 주는 듯 그들의 이야기는 듣는 사람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 Narcocorrido가 범죄에 대한 표본임에도 불구하고 노래와 춤으로 사교모임에 등장하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Narcorrido는 삶의 방식과 관습, 철학, 의상, 남자다움에 대한 열광 그리고 마약 밀매인들의 윤리를 노래한다. 또 화제가 되었던 노래 가사의 또 다른 것은 배신자, 무기, 짐을 실은 여행"에 대한 모험, 법에 대한 조롱, 카르텔이나 비즈니스와 공무원들의 연류 등에 있다.
나는 법에서 벗어나,
밀매업을 하는데,
나는 가난하게 살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며
게으르지도 않다.
나는 나의 운을 떠보고 싶었고
이미 그것을 입증해주었다.
이 곡은 의심할 여지 없이 마약 밀매업자들을 주제로하여 대중 음악과 민속 음악 사이에서 히트가 되었다. 또한, 미국에서는 치카나 (멕시코계 미국인) 교민 사회에서 narcocorrido가 musica grupera(그룹음악)"와 "Tex-Mex"의 장르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우리는 그곳에서 Los Tigres del Norte (북쪽 호랑이)"라는 북부지역 음악 그룹에 의해 마약밀매와 배신, 빨간차의 악당"과 같은 마약밀매자들에 관한 corrido가 탄생된 것임을 되새겨 볼 수 있다.
⑨멕시코의 마리아치
마리아차의 의미와 어원
마리아치는 멕시코의 전통음악뿐 아니라 음악가도 지칭하는 말이다. 우리나라에 알려진 라 꾸까라차나 베사메 무초가 대표적인 마리아치음악이다. 기본악기로는 기타, 기타론(저음을 내기위해 기타를 변형) 비우엘라(고음을 내기위해 기타를 변형) 트럼펫, 바이올린이고 악기구성에 따라 5-12명정도로 구성된다.
어원에 관한 얘기는 다양하다. 하나는 결혼을 뜻하는 불어의 mariage에 있다. 잠시 멕시코의 꼭두각시황제가 된 오스트리아아의 막시밀리아노 대공의 재위기간(1864-67)중에 황실에서 자주 울려펴지던 혼축하행진곡이 유행된 것이다.
또 하나는 할리스코주 과달라하라 근교인 꼬꿀라에서 처음생겼다는 것이다. 스페인선교사가 인디언에게 가르친데서 비롯한 것으로 성모마리아에게 바치는 노래 또난찐(아즈떼까의 여신)을 숭배했던 디헤나들에게 또난찐 대신 성모마리아를 찬양하라고 기타를 줘서 시작된 것으로 KBS TV문화기행의 한 인터뷰를 보면 꿀라지방의 사람들은 마리아치를 성모마리아를 위한 음악이라고 답한다. "마리아 데 손" 음악이 바로 비르헨 텔라 벨라 마리아를 위한 곡이다. 지금도 과달루뻬성당에 가면 마리아를위해 연주하는 마리아치를볼 수 있다.
마리아치의 확산과 창법
1800년대 결성되기 시작한 마리아치는 악보는 볼줄모르는 노래꾼들로 머리속에 음악을 저장해서 연주한다. 반복연습으로 몸에 익히는게 교육의 전부인 것이다.
상업적으로 성공한 마리아치는 시릴로 마르몰레호에 의한것인데 그는 종교적이고 여성적인 마리아치음악에 강한 남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차로복장을 이용하였다. 차로복장이 이때부터 마리아치의 공식적인 의상이 된 것이다. 1900년 그는 멕시코 시티의 가리발디 광장에서 첫 무대를 가졌고 지금도 가리발디광장은 마리아치의 메카이다.
멕시코혁명을 통해 군악대의 역할을 하게되어 남성적으로 변모되고 전국적으로 확산된다. 그 대표적인 음악이 바로 라 꾸까라차이다.
전국이 안정되면서 비로소 최초로 정규 음악 교육을 받은 사람이 나타나는데 그가 바로 실베스트레 바르가스이다. 그는 마리아치 바르가스를 창설해 큰 인기를 몰았다. 라디오전파를 통해 전국적으로 더 마리아치 열풍을 몰았다. 현재 제 4대 마리아치 바르가스가 활동하고 있다.
가성을 사용한 마리아치 창법을 와방고라 한다. 마리아치는 멕시코사람들에게는 남녀노소할것 없이 인기있는 노래일뿐 아니라 인생이다. 기쁨과 슬픔이 있을 때 항상 함께 하는 음악이다. 현재 멕시코 청소년에게 인기있는 한 밴드도 이 마리아치음악을 바탕으로 노래를 부르고 있다. 전통적인 마리아치 음악은 아니지만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있는 플라시도 도밍고도 My Latin Soul이란 음반으로 마리아치 음악을 부르기도 했다.
마리아치의 기원과 의상
가리발디 광장 Plaza Garibaldi, 일명 마리아치들의 광장이다.
주말 저녁이면 수많은 마리아치 Mariachi 악단들이 연인들을 위해 연주를 하며 근처의 공연 바아로 손님들을 유도하고 있다. 바아에서 식사와 함께 술을 마시며 이들의 연주와 전통 멕시코 무용단들의 춤을 감상한다.
마리아치의 기원은 정복이후, 프랑스 나폴레옹 3세의 임명으로 막시밀리아노 대공이 잠시 멕시코의 황제가 된 적이 있었는데, 그의 재위기간 동안 황실에서 결혼 축하 행진곡으로 Marriage가 자주 연주되던 것이 대중음악으로 퍼져 나간 것이라 한다.
이들의 의상은 스페인의 투우사를 연상시키는 온몸에 쫘악 달라붙고 바지 옆 솔을 따라 금속장식이 줄지어 붙어있는 장식이 요란한 옷이다. 대부분 검은색이나 흰색 회색이고 요즘에는 새롭게 파란색이나 적색 종류의 의상을 입은 마리아치도 종종 눈에 뜨인다. 또한 마리아치의 특징은 유별나게 챙이 크고 화려한 솜브레로(멕시코 모자)를 쓰는 것인데, 외국인들이 기념품으로 매우 좋아하는 것들 중의 하나이다.
이들은 이곳 광장에서만 활약하는 것이 아니라 각 가정의 개인적인 파티나 행사에 불려가 음악을 연주해주기도 한다. 자동차가 지나가면서 잽싸게 이들과 계약하는걸 보면 멕시코 사람들이 집안 잔치에 마리아치 음악을 빼놓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가격2,000
  • 페이지수16페이지
  • 등록일2004.07.01
  • 저작시기2004.06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588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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