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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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건축의 이해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건축이란

2.건축의형성

3.건축설계

4.건축구조

5.건축시공

6.건축발생과발전과정

7.서양건축사

8.근대건축

9.현대건축

10.한국현대건축

본문내용

인하공대 기공관 및 기숙사, 종합설계 작 공군본부 청사, 1956년 강윤 작 이화여대 강당, 송민구 작 동국대학 본관, 1957년 강명구 작 서울농대(수원) 기숙사 등은 같은 계열의 작품으로 한국의 근대 건축기술 발전의 시초로 볼 수 있다.
소재로 엮어진 기능 위주의 건물이기 때문에 특이한 차이가 있을 수 없는 한국적 형의 여러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1957년 르 코르뷔지에에게 수학하고 귀국한 김중업(金重業)의 작품으로 명보극장과, 현상설계를 모집하긴 했으나, 실제로는 이천승의 주관으로 설계된 구(舊)시민회관 설계가 이루어졌으며, 이러한 작품들은 보다 참신한 건축양식을 띠었다.
1959년에는 '가장 기능적이고 이상적인 국회의사당, 대한민국 국회의사당으로서의 품격이 구현된 건축양식'을 내세워 국회의사당 현상설계를 모집한 결과, 재일교포로 구성된 박춘명 김수근 강병기 정경 정종태의 설계팀이 당선되었다. 1962년 위커힐 건물, 같은 해 을지로 입구 오양 빌딩(김수근 작)은 사무소 건축으로 새로운 경지를 보였는데 마감재료의 새로운 경향인 익스포즈드 콘크리트(exposed concrete)를 소재로 하여 새로운 면을 보였으며, 63년 마포아파트 건설은 주택공사의 주관 아래 새로운 도시주거 형태를 제시하였다. 1964년 김수근의 자유센터는 주한 프랑스대사관저(김중업 작) 이후 2번째로 등장한 획기적 작품으로 대두되는 등, 보다 적극적인 건축발전을 보게 되었다. 1965년은 건축가의 직분이 확립되는 해였다.
건축사법이 공포된 지 2년 만에, 제1회 건축사자격시험을 개최하여 많은 건축사를 배출하였다. 1968~69년의 한국 건축의 특징은 점차적인 건물의 대형화 고층화 현상이다. 정부종합청사(21층), 조선호텔(20층), 대연각호텔(20층), 삼일빌딩(31층) 등이 세워졌다. 종합청사는 특이한 구조를 자랑하였고, 조선호텔은 상업건물로서 특이한 평면형과 모든 세부처리방법 등이 한국적 경지를 초원한 예로 들 수 있다.
1969년을 장식하는 건축군으로서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으로서 보다 새로운 감각으로 주위환경에 조화하는 단지를 조성하였다. 1970년대 플라자호텔, 구 반도호텔 자리에 건설된 롯데호텔, 남산의 하얏트호텔과 1980년대에 대한생명63빌딩, 무역센터, 예술의 전당 등 국제적 수준의 건물들이 들어서서 건축 양상은 다채로워졌다.
유명 건축가
1. 김중업
평양에서 태어났다. 1941년 일본 요코하마[橫濱]공업고교 건축과를 졸업하고, 8 15광복 후 1946 1952년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조교수로 있었다. 1952년 한국 현대건축가로는 처음으로 유럽에 진출하여 프랑스의 르코르뷔지에 건축연구소에서 4년간 수업하고 귀국, 1956년 홍익대학교 건축미술과 교수, 같은 해 김중업 합동건축연구소장이 되었으며, 1956 1965년에는 대한미국미술전람회 심사위원으로 활약하였다.
1971 1978년 프랑스 파리 및 미국 프로비던스에서 활동하였다. 1972년 파리건축대학 대학원을 졸업하였으며, 1971 1975년에는 프랑스 문화부의 고문건축가였다. 1976년에는 미국 로드아일랜드 미술대학 교수와 하버드대학교 객원교수가 되는 등 유럽은 물론 미국에서도 크게 활약하였다.
프랑스 국가공로훈장, 서울시문화상, 산업훈장 등을 받았으며, 저서에 《김중업- 건축가의 빛과 그림자》가 있고, 설계작품으로 《서강대학 본관》 《주한 프랑스대사관》 《제주대학본관》 《삼일로 빌딩》 《육군박물관》 등이 있다.
2. 르코르뷔지에
스위스의 라쇼드퐁 출생. 본명 Charles-
douard Jeanneret. 스위스의 미술학교에서 공부하고 펠레와 베렌스의 건축사무소에서 얼마 동안 일하였으나 20대 전반은 주로 유럽과 중근동 각지를 여행하면서 그곳의 도시건축을 연구하였다. 본격적인 활동이 시작된 것은 1920년대 이후로, 잡지 《에스프리 누보:L'Esprit Nouveau》와 많은 저서, 도시계획과 실제 작품을 통해서 마침내 국제적인 합리주의 건축사상의 기수가 되었다. '집은 살기 위한 기계'라고 하는 그의 유명한 아포리즘으로 상징되는 신선한 기계미학이 이 시기의 모든 제작에 일관되어 있고, 이와 같은 건축사상은 《건축을 향하여》 《도시계획:Urbanisme》 등, 이 시기의 저서에 잘 나타나 있다. 또한 같은 사상이 구체적인 도시의 스케일로 나타난 것이 《현대도시》(1922)와 《플랑 부아쟁》(1995) 등이다.
실제 작업은 주택 중심으로, 페사크 주택단지(1926), 슈투트가르트 주택박람회의 집(1927), 가르셰의 주택(1927), 그리고 필로티 위에 떠 있는 명확한 원초적 형태라고 하는 푸아시의 사보이관(1930) 등을 완성하였다. 1927년 제네바 국제연맹 회관의 현상설계에서 그의 응모작이 최후 단계에서 심사원단에게 거부된 것을 계기로, 근대건축가의 국제적 조직의 필요성을 느끼고 이듬해 근대건축국제회의(Congr
s Internationaux d'Architecture Moderne:CIAM)를 주재하였다. 1930년대에는 파리 구세군회관, 파리의 스위스학생회관(1932), 파리교외 주말의 집(1935), 그리고 광대한 브리즈솔레유(차일)가 있는 브라질의 문교보건부(1935) 외에는 경제불황과 정치적 불안으로 인해 실제 작품은 적으며, 그래서 근대건축국제회의의 이념에 바탕을 둔 도시계획의 제안에 몰두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국제연합의 회의 사무시설을 위한 일(1946 1947)을 맡았으나 중도에서 물러나고, 이어 마르세유의 《유니테》라는 거대한 아파트(1952)를 설계하였다. 모뒤롤에 의한 이 건축은 그의 오랫동안의 도시주거 연구의 집대성이었다. 이어 자유분방한 롱샹의 교회당(1955), 리옹 근교의 라툴레트수도원(1957), 아마다바트의 미술관, 그리고 만년에 가장 정성을 기울인 인도 찬디가르의 신도시 건설이 있으며, 그곳에 최고재판소 등의 청사건축을 남겼다. 1920년대에 시작되는 근대합리주의 건축의 국제적 양식 속에 서양건축의 기조인 고전주의 미학을 조화시켜, 철근콘크리트 건축의 새로운 국면을 개척한 점에서 그의 위대성을 발견할 수 있다. 한국인 제자로 김중업(金重業)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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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4.07.30
  • 저작시기2004.07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6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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