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조선 전기)의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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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16세기(조선 전기)의 문학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조선 전기 국문 시가문학은 악장, 경기체가, 가사, 시조가 주가 됨
2 조선 전기의 문학은 훈구파의 문학과 사림파의 문학으로 구분지을 수 있다.
3 사림파를 대표하는 학자이자 문학자 율곡 이이
4 이황의 문학사상
5 고산구곡가와 도산십이곡의 차이점

본문내용

모습, 이는 마치 한 폭의 동양화 속의 신선과 같은 모습으로 연상된다. 사실 이 병(病)은 이 작품이 작자의 만년(晩年)에 이루어진 것이므로 노병(老病)으로 풀이할 수도 있겠으나 초장에서의 천석 고황(泉石膏 )의 상태나 앞 시조로 미루어 보아 자연을 사랑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는 병으로 해석을 하고 보면, 이 작품의 내용과 분위기가 더더욱 운치가 있을 것이다.
[3] : 후덕하고 순박한 풍습 강조
순자의 성악설을 반대하고 맹자의 성선설을 지지하는 성리학적 입장이 나타나 있다. 또한 세상의 많은 영재들에게 성선설의 옳음을 말하며, 순박하고 후덕한 풍습을 강조하고 있다.
[4] : 임금을 그리워하는 마음(연군지정)
벼슬 자리를 떠나 자연에 흠뻑 빠져 지내면서도 임금을 잊지 못해 그리워하는 정을 노래함. 이 작품에 등장하는 난초와 흰 구름은 인간의 영욕 성쇠(榮辱盛衰)로 점철이 된 속세와는 무관한 것들로 탈속(脫俗)한 이미지를 드러내고 있는 비유어들이다
[5] : 자연을 멀리하는 현실 개탄
산 앞에는 낚시터가 있고 대 아래에는 맑은 물이 있으며 여기에 또한 갈매기들까지 내 벗이 되어 오락가락하는 이 좋은 곳을 놓아 두고 왜 먼지 낀 속세만을 그리워하고 갈망하는가 하고 세속인들을 나무라고 있다. '교교 백구(皎皎白駒)'는 본래 '현자(賢者)가 타는 말'이지만 여기서는 현자의 뜻으로 새기는 것이 좋을 듯하다. 결국 종장에서는 글이나 좀 읽고 수양을 쌓았다는 자들이 입신 양명에만 눈이 어두워 아름다운 자연을 등지는 안타까운 현실을 개탄하고 있다.
[6] : 대자연의 웅대함, 오묘함 예찬
초장에서 꽃피는 봄, 달뜨는 저녁의 경치를, 그리고 종장에서는 물 속의 고기떼와 하늘의 소리개, 구름이 흐르고 해가 비치는 대자연의 모습을 그려서 한없이 아름답고 끝없이 흥겨운 대자연의 조화를 무척 로맨틱하게 얘기하고 있다. 한마디로 대자연의 웅대함에 완전히 도취된 작자의 모습을 보이고 있는 작품이라 하겠다.
[7] : 독서하는 즐거움
일생을 학문의 연구에만 전념한 석학(碩學)인 작자가 독서 면학(勉學)의 즐거움과 그 여가에 산책하는 여유 있는 생활을 그린 작품이다.
[8] : 진리 터득의 중요성
여기서 '우뢰'나 '해'는 '진리', 곧 도(道)를 지칭하고 '귀머거리'와 '소경'은 '진리'를 터득하지 못한 자, 곧 '속세의 일에만 연연하여 인간의 참된 도리를 망각한 자'를 나타내고 있다. 그래서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걸 경계하며 반드시 '진리의 길'을 걸어야하는 인간의 참된 도리를 밝히고 있다.
[9] : 옛 성현의 도리를 본받고자 함
옛 성현들의 인륜지도(人倫之道)가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으니, 우리도 그 길을 실천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대구법과 연쇄법을 통해 나타내고 있다.
[10] : 학문 수양에 대한 새로운 다짐
퇴계가 23세 때 등과하여 치사 귀향(致仕歸鄕)한 것은 69세 때였다. 젊을 때 학문에 뜻을 두었다가 수양의 정도(正道)를 버리고 벼슬을 지낸 자신을 후회하면서, 이제 깨달음을 가졌으니 늦지 않게 학문 수양에 힘쓰리라는 다짐을 하고 있다.
[11] : 학문 정진에의 의지
청산과 유수라는 자연의 영원 불변성을 소재로 하여, 그러한 자연을 닮아 변치 않는 지조와 인품으로 살아가겠다는 다짐과 아울러 교훈적인 의미를 전하고 있다. 정신적인 학문 수양을 꾸준히 그침없이 나아가 한결같은 마음으로 '만고상청'하는 우리의 삶을 이루어 보자는 내용이다.
[12] : 학문에의 영원한 정진
학문에 뜻을 둔다는 것은 어리석은 사람도 쉽게 알며 행하려고 하지만, 막상 그 실천의 과정에서는 성인이라도 끝없는 학문의 길을 못 다 이룬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학문 수양의 길이 쉽든 어렵든 간에 실천해 나가고 있는 중에는, 몰입하고 있는 자신이 세월이 흘러 늙어가는 것 또한 모를 정도라고 하면서 영원한 학문 수양의 길을 강조하고 있다.
§도산십이곡에 드러난 이황의 문학관
이황은 도학과 문학이 밀접한 관련성을 지닌다고 보고, 문학이 도를 담는 그릇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도산십이곡」발문에서 이황은, 한시는 읊을 수는 있어도 노래부를 수는 없으므로 우리말로 된 노래가 필요한데,「한림별곡」류의 경기체가는 방탕하여 승상할 바가 못 되며, 이별의 육가는 그보다 낫지만 온유돈후(溫柔敦厚)한 맛이 부족하다고 하였다. 그러나 부족한 대로 이 형식을 따라「도산십이곡」을 짓는다고 하였다. 그리고 노래른 도학을 전하는 데 그치지 않고 홍취로 체득하게 하는 중요한 구실을 맡아야 한다고 하며, 그리기에 한시보다 시조가 소중하다고 하였다. 이를 통해 볼 때 이황은 문학을 도를 담는 그릇으로 보아 문학의 효용성을 중시했던 것을 알 수 있다.
§이황의 문학이 지니는 한계성
이황은 문학이 도를 담는 그릇이 되어야 한다고 하여 문학의 효용론을 강조하였으므로 이런 점을 이해한다.
이황은 도학을 강조하여 문학을 통해 도학을 전하고자 하였으므로 자신의 사상을 시조에 담아 표현하였는데, 그 표현보다는 내용을 더욱 중시하였다.
이처럼 문학 자체의 가치를 도외시한 채 문학의 목적성만을 강조한 결과, 독창적이고 참신한 내용과 표현을 개척하지는 못하였다.
*고산구곡가와 도산십이곡의 차이점
율곡은 고산구곡가를 통하여 훈계나 설교 등 기타 교훈적인 말들을 하지 않았다
이러한 경향은 도산십이곡과 가장 두드러진 차이점의 하나다
또한 고산구곡가는 도산십이곡에 비해 보다 서정적인면이 짙게 나타난 작품이다
조윤제는 "율곡시는 퇴계시와 같이 우아한 맛은 없어도 청상한 맛은 있고, 심사적은 아니나마 감성적인 곳은 있다"고 진술하였다 같은맥락에서 조동일은 "감흥이 고양되고 시상이 활달해서 주희나 이황에게는 볼 수 없던 기풍을 지닌다"고 하였다
고산구곡가가 이념의 틀에서 벗어나 경물을 변화있게 그려내서 보여주는 회화적인 성격은 높이 살 만하다
더구나 퇴계의 경물시가 사물과 시인 사이에 개재하는 사실만을 말할 뿐 외경 자체를 꾸미지 않는 특성이 있는 반면에 율곡이 노래한 풍경은 좀더 다채로운 경물 형상 색채를 보여주며 정서는 매우 고양되어 있기 때문에 서정시로서의 성격이 크다.

키워드

16,   조선,   전기,   문학,   훈구파,   사람파,   율곡,   이황
  • 가격1,000
  • 페이지수10페이지
  • 등록일2005.03.21
  • 저작시기2005.03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89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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