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가의 <북학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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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박제가의 <북학의>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들어가며

2. 박제가의 생애와 사상

3. 시대상황과 북학의 당위성

4, 내, 외편으로 본 북학의

5. 진소본 북학의

6. 나오며

# 참고문헌

# 별첨 - 박제가 실학사상의 특징

본문내용

죄를 줄 것 같으면, 이에 비로소 먼 지방에서 글 읽는 선비들과 신분은 미천하나 뛰어난 재능을 가진자들이 모두 조정에 설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여, 신분의 귀천에 관계없이 재능과 능력이 있는 자가 조정에 설 수 잇도록 신분제의 개혁을 주장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신분제의 개혁에 있어서 그는 혁신적인 방안을 제시하였는데, 이것은 바로 양반층의 상인화이다. 양반의 상인화의 예를 중국에서 찾아, “중국사람들은 가난하면 장사꾼이 되는데, 이것은 참으로 현명한 일이다. 거기서는 장사꾼으로 나서도 풍류와 명예가 그대로 있다. 이는 청의 풍속이 아니고 벌써 송명 시대부터 이어져 오는 풍속으로 간주하고 있다. 초정은 좀과 같이 놀고먹는 양반들을 상업에 종사시킴으로써 양반의 놀고먹는 풍속을 바로잡으며, 성과가 좋은 자는 조정의 높은 벼슬에 발탁함으로써 자연스러운 신분제의 개혁을 시도하였던 것이다.
2. 이용후생론적 과학기술론
초정은 유민익국의 방도로써 이용후생론적 과학기술론에 대해 남다른 관심을 보였다. 경세치용학파들은 그 당시 상황으로 전혀 실현 불가능한 이상론인 전제개혁론 등에 대해 관심이 집중되었던 것에 비해 『북학의』 전편에 흐르는 수레배기와벽돌도로교량농기구목축 등 이용후생론적 과학기술론은 사회의 혼란 없이 쉽게 실현할 수 있는 것이었다. 초정은 먼저 중국의 제도를 배워 그것의 허실을 살펴 쓰고 물리치면 10년 이내에 중국의 기술을 모두 배워 사방천리가 비로소 사방천리의 구실을 할 수 있을 것이고, 34년 동안에 수확할 수 있는 것을 1년 동안에 수확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초정의 과학기술론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수레와 배 등 교통문제였던 것이다. 초정은 “영동에서는 꿀이 생산되지만 소금은 없고, 관서에서는 철이 생산되지만 밀감이나 유자는 없다. 함경도에서는 삼은 잘 되지만 면포는 귀하다.”고 하여, 물자의 편재성을 지적하였다. 이러한 것은 운반수단이 불편하기 때문에 물자를 시의 적절하게 이용할 수 없게 만든다. 그렇기 때문에 백성들이 물자를 이용하여 풍족하게 하고 싶어도 운반하는 힘이 자라지 못하기 때문에 백성들의 생활은 궁핍하게 된다는 것이다. 또 수레가 다닐 만 한 길을 닦으면 토지 몇 마지기는 없어지겠지만 수레를 사용하여 얻는 이익이 땅값을 제하고도 넉넉할 것이라고 하여 수레의 유용성을 주장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대저 수레 백 채에 싣는 양이 배 한 척에 싣는 것에 미치지 못하고, 육로로 천리를 가는 것이 뱃길로 만리를 가는 것보다 편리하지 못하다.”고 하였다. 이는 수레를 이용하는 것이 말을 이용하는 것보다 몇 배의 이익이 되며, 수레를 이용하는 것보다 배를 이용하는 것이 몇 배의 이익이 된다고 하여 용선(用船)을 주장하였던 것이다.
3. 중상론 및 해외통상론
초정의 개혁사상 중에 가장 핵심적인 것이 바로 중상론(重商論)과 해외통상론(海外通商論)이라 할 수 있다. 이는 단순히 상업을 장려한다는 것이 아니라,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전인구의 반이 넘는 비생산적인 양반을 도태시켜 상업에 종사시키고자 하는 근대지행적인 신분제 개혁론을 내포하는 그의 개혁사상이라 할 수 있다. 사실 신분제를 타파하고 백성 모두가 노동을 해야 한다는 만민개로(萬民皆勞)사상은 담헌에서 이미 제기되었고, 농암 유수원도 양반상인론을 주장하였지만, 초정은 보다 구체적이며 능동적인 국가시책으로서 장려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수레와 배를 이용한 상품의 유통은 결국에는 물가가 안정되며, 전국적으로 시장이 형성되어 생산물의 수요가 확대되어 농업과 수공업이 다 함께 발전하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검소하다는 것은 물건이 있어도 남용하지 않음을 뜻하지만 자신에게 물건이 없다하여 스스로 단념하여 말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하여 그릇된 절검사상을 배격하고, 대저 제물을 비유하면 우물과 같은 것이다. 퍼내면 차고 버려두면 말라 버린다고 하여, 소비를 단순한 소비로 인식하지 않고, 소비가 생산을 촉진시킨다고 하는 시장경제 원리에 의한 생산 활동으로 보았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초정은 “비단옷을 입지 않으므로 나라 안에 비단 짜는 사람이 없어 여공이 쇠하였다. 그 뿐만 아니라 농사도 방법을 몰라서 흉년이 자주 들고 장사도 물건을 팔 줄 몰라서 이익이 박하다. 그러니 사민이 모두 궁하여져서 서로 도울 길이 없다. 고 하여, 상인도 사민 중의 한 사람으로서 매우 중요하다고 인식하고, 상인의 역할을 강조하였던 것이다. 이처럼 초정은 국내 시장을 단일화하여 상품의 활발한 유통에 의해 생산을 제고하며, 아울러 해외통상을 통한 구빈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는 우리나라는 국토가 좁고 백성들이 가난하기 때문에 가난을 구제하기 위해서는 중국과 통상하는 길 뿐 이라고 하였다. 그런 다음 차츰 국력을 키워 다른 나라들과도 통상해야 한다는 점진적인 방법을 추진하고 있다.
“제 나라를 부강하게 하고 싶지 않은 사람은 없겠지만, 도대체 그 술법을 왜 남에게 양보만 하는가. 이제 선박으로 통상하려면 왜국은 간사하여 항상 이웃 나라를 넘겨보고, 안남유구대만 등지는 모두 험하고 멀어서 통상할 수 없으니, 마땅한 곳은 오직 중국뿐이다.…… 오직 중국 배만 통하게 하고 해외 모든 나라와는 통하지 않는다는 것은 또한 일시적인 술책일 뿐 정론은 아니다. 국가의 힘이 조금 강해지고 백성의 생업이 안정되면 차례차례 통하는 것이 마땅하다.” 라고 하여, 궁극적으로는 해외 여러 나라들과의 통상을 주장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초정에 있어서 해외통상론의 목적은 단순히 상품을 유통하는 단계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니다. 그의 궁극적인 목적은 사상의 개방성으로 파악하는 것이 옳은 것이다. “이제 우리는 그 기술을 배우고 그 나라 풍속을 탐방하여 백성들의 견문을 넓혀 주어서 천하가 큰 줄을 알게 하고 ‘우물 안 개구리’가 부끄러운 줄 알게 되면 세도를 위하는 것이 어찌 통상하는 이익뿐이랴!” 이와 같은 초정의 해외통상을 통한 개방성의 강조와 외국 문물을 접함으로서 사상적 폐쇄성을 극복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초정의 해외통상론과 사상의 개방성은 뒤에 개화파들의 개국통상론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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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6.05.06
  • 저작시기2006.4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48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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