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이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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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형이상학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형이상학>
서론)

본론)
1. 형이상학의 사전적 의미(形而上學, metaphysics)
2. 형이상학의 어원
3. 형이상, 형이하
4. 기하학과 형이상학
5. 형이상학의 정의
6. 형이상학과 근원적인 방향설정
7. 전통적 의미의 형이상학
8. 현대적 의미의 형이상학
9. 대표적인 형이상학 학자

결론)

본문내용

무게를 한몸에 짊어지는 사람이 되었다.
9) 쇼펜하우어
염세사상의 대표자로 불린다. 단치히 출생. 은행가와 여류작가인 부모 덕택에 평생 생활에 걱정 없이 지냈다. 1793년 단치히가 프로이센에 병합되자 자유도시 함부르크로 이사하였고, 1803년에는 유럽 주유의 대 여행을 떠났다. 1805년 그를 상인으로 만들려던 아버지가 죽자, 고타의 고등학교를 거쳐 1809년부터는 괴팅겐대학에서 철학과 자연과학을 배우고, G.E.슐체의 강의를 들었다.
이어 1811년에는 베를린대학으로 옮겨, J.G.피히테와 F.E.D.슐라이어마허를 청강하였으며, ‘충족이유율(充足理由律)의 네 가지근원에 관하여’(1813)로 예나대학에서 학위를 받았다. 그러나 이 때를 전후한 사교가인 모친 요한나와의 불화 ·대립은 유명한데, 이로 인해 햄릿과 같은 고뇌에 빠졌고, 그의 독특한 여성혐오, 여성멸시의 한 씨앗이 싹텄다. 바이마르에서 살면서 J.W.괴테와 친교를 맺었고, 그에게서 자극을 받아 색채 론을 연구하여 ‘시각과 색채에 대하여’(1816)를 저술하였다. 또한 동양학자 F.마이어와의 교우(交友)로 인도고전에도 눈을 뗬다. 드레스덴으로 옮겨 4년간의 노작인 저서 《의지와 표상(表象)으로서의 세계 Die Welt als Wille und Vorstellung》(1819)를 발표하였다. 이탈리아를 여행한 후 1820년에 베를린대학 강사가 되었으나, G.W.F.헤겔의 압도적 명성에 밀려 이듬해 사직하고, 1822∼1823년의 이탈리아 여행 후 1831년에는 당시 유행한 콜레라를 피해서 프랑크푸르트암마인으로 옮겨가 평생을 그곳에서 살았다. 그의 철학은 Ⅰ.칸트의 인식론에서 출발하여 피히테, F.W.J.셸링, 헤겔 등의 관념론적 철학자를 공격하였으나, 그 근본적 사상이나 체계의 구성은 같은 ‘독일 관념론’에 속한다. 그러나 플라톤의 이데아론 및 인도의 베다철학의 영향을 받아 염세관을 사상의 기조로 한다. 즉, 그는 칸트와 같이 인간의 인식의 대상으로서 눈앞에 전개되는 세계는 시간 ·공간 ·카테고리(category), 특히 인과율이라는 인간의 주관적인 인식의 형식으로 구성된 표상일 뿐, 그것 자체로서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세계 전체는 우리들의 표상이며 세계의 존재는 주관에 의존한다. 세계의 내적 본질은 ‘의지’이며, 이것이 곧 물(物) 자체로서, 현상은 이 원적 의지가 시간 ·공간인 개체화의 원리)에 의하여 한정되는 것이라고 한다. 다시 말하면 물 자체를 인식불가능으로 한 칸트와는 달리, 그는 표상으로서의 현상세계 배후에서 그것을 낳게 하는 원인이 되는 물 자체를 의지로써 단적으로 인식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또 세계의 원인인 이 의지는 맹목적인 ‘생에 대한 의지’ 바로 그것일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이 형이상학설을 배경으로 할 때, 인간생존의 문제는 이 의지에서 출발하여 인과적 연쇄에 의해 결정되는 세계에 사로잡히지 않고 어떻게 벗어날 수 있는가라는 문제가 남는다. 그러나 삶은 끊임없는 욕구의 계속이며, 따라서 삶은 고통일 수밖에 없으므로 이로부터 해탈하는 데는 무욕구의 상태, 즉 이 의지가 부정되고 형상세계가 무로 돌아가는 것(열반)에 의해서만 가능하다고 설파한다. 그는 이와 같이, 엄격한 금욕을 바탕으로 한 인도철학에서 말하는 해탈과 정적의 획득을 궁극적인 이상의 경지로서 제시하였고, 또한 그렇게 하여 자아의 고통에서 벗어나면서부터 시작되는 타인의 고통에 대한 동정, 즉 동고를 최고의 덕이자 윤리의 근본원리로 보았던 것이다. 그의 철학은 만년에 이르기까지 크게 인정을 받지 못하였으나, 19세기 후반 염세관의 사조에 영합하여 크게 보급되었는데, 의지의 형이상학으로서는 F.W.니체의 권력의지에 근거하는 능동적 니힐리즘의 사상으로 계승되어 오늘날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그 밖에도 W.R.바그너의 음악, K.R.E.하르트만, P.도이센의 철학을 비롯한 여러 예술분야에 상당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결론)
우리가 형이상학을 강단분과라고 하여 부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형이상학’이라는 칭호를 우리는 무슨 권리고 그리고 이 말은 동시에 다음을 말하는데, 어떠한 뜻으로 확정하려고 하는가? 라는 다른 물음을 우리는 함께 다루고 있다.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을 우리는 그 낱말의 역사를 통해서 얻어내려고 했다. 그 결과는 무엇인가? 이 낱말의 역사는 우리로 하여금 두 가지 뜻, 즉 시초의 기술적인 뜻과 나중의 내용적인 뜻을 알게 해 주었다. 물론 우리는 첫 번째 뜻에 더 이상 몰두할 수 없다. 만일 우리가 ‘철학은 형이상학적 물음이다’라고 말하고 있다면, 그 경우 우리는 ‘형이상학’을 두 번째 뜻으로, 즉 내용적인 뜻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셈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형이상학을 프로테 필로소피아를 지칭하기 위한 칭호로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즉 우리는 형이상학을 순전한 칭호로서 받아들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 형이상학이라는 낱말이 본래적인 철학함인 바로 그것을 표현해주고 있는 것으로 그것을 받아들이고 있다. 이 모든 사정을 어쨌든 잘 정돈해 보면 이렇다. 즉 우리는 전통을 따르고 있다. 과연 프로테 필로소피아에 대한 현실적인 이해에서부터 형이상학의 내용적인 뜻이 길러내어져 그것이 프로테 필로소피아에 대한 해석으로 획득되었는가? 아니면 이와는 반대로 형이상학에 대한 비교적 우발적인 해석에 맞추어 프로테 필로소피아가 파악된 것은 아닌가? 사실상 사정은 후자와 같다고 보인다. 형이상학에 대한 두 번째 뜻의 전개과정은 우리에게 ‘형이상학’이라는 표현이 내용적으로 초감각적인 것에 대한 인식으로서 간주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형이상학’이라는 칭호가 전통 속에서는 바로 그러한 의미로 유지되어왔는데, 정작 우리는 형이상학을 그러한 뜻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될 것이다.
형이상학이란 존재의 의미에 대한 탐구를 말한다. 형이상학을 개별과학과 비교해서 뜻을 살펴보면 개별과학은 인간의 각각의 성질, 즉 의학, 인간학, 윤리학 등을 일컫는다. 그것들에 의한 존재의 의미를 탐구하는 것이 개별과학이라면 형이상학이란 통합적인, 그러니까 우리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의미의 탐구를 일컫는 것이 바로 '형이상학'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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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6.09.12
  • 저작시기200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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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363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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