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미술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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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원시시대

2. 하(夏)․상(商)․주(周)

3. 춘추전국(春秋戰國)

4. 진(秦)․한(漢)

5. 위진․남북조(魏晉․南北朝)

6. 수(隋)

7. 당(唐)

8. 오대(五代)

9. 송(宋)

10. 원(元)

11. 명(明)

12. 청(淸)

13. 근대

14. 현대

본문내용

돌렸던 것이다. 팔대산인은 본명을 주답이라 하였는데 사승으로 대표되는 개성파 화가들 가운데 가장 기벽과 기행이 심했던 화가였다. <수묵사의화조화>를 많이 그린 팔대산인은 늘 팔대인각경을 지니고 다녔다. 그의 그림은 극히 단순하면서도 세련되었으며, 통치계급과 권세가에 대한 멸시와 나라를 잃은 슬픔을 반드시 나타냈다. 본래의 이름인 주도제보다도, 자 석도와 호 대척자 또는 고과화상으로 더 알려진 석도는 천변만화의 작품을 남겼고, 산수화, 화과화, 난죽화 등에 천재적인 재능이 있었다. 그는 언제나 다른 사람이 모방할 수 없는 독특한 그림을 그렸고, 수많은 작품 속에 자기와 한족의 비극적인 감정을 담았다. 그는 또 힘차면서도 환상적인 그림을 독창적인 구도로 그렸으며, 혁신적인 채색을 시도하였다. 이렇게 사왕 오운과 사승을 비롯한 명조 유민 화가들을 비교해 보면 청대는 확실히 보수와 개혁, 모방과 혁신이 대립한 시대였다고 할 수 있다.
13. 근대
중국 근대 회화는 청의 말기부터 시작되는데, 그 때 궁정화가가 화단의 중심이었던 풍토에서 벗어나 각지에서 유력한 화가의 배출을 기다리는 상황이 출현하였다. 아편전쟁 이후 중국 제일의 개항 도시가 된 상해에서는 화가들이 모여들었는데 여기에서 조지겸(趙之謙)과 임이, 오창석(吳昌碩)이 있다. 임이의 영향은 청 말부터 민국 초기에 걸쳐서 상해 화단 전반에 나타났으며 오창석의 영향도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임백년(任伯年)은 아편전쟁 뒤 상하이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해파(海派)의 중심인물로 청조의 회화전통을 근대로 이어 준 교량역할을 한 작가이다. 인물, 화조에 능했던 임백년의 화풍은 친근한 주제와 활달한 필치로 유명하다. <투색사녀도축(投色仕女圖軸)>, <인물도축(人物圖軸)>, <투색학수도축(投色鶴壽圖軸)> 등이 출품되었다. 화려하고 선명한 채색에 서양화 기법 중 음영법을 강조하는 입체감 나는 선묘로 주요 후원자로 떠오른 상인 계층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20세기 전반에는 노신(魯迅)의 제창으로 이루어지는 목각화 운동, 대중과의 의사소통을 주안점으로 한 새로운 중국 회화로의 방향도 주목되었다.
▶ 제백석(齊白石)
제백석(齊白石)은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목수 일을 하면서 전각과 그림으로 옮긴 대가였다. 중국의 근대기 화가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제백석의 기지와 해학이 넘친 그림들은 중국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를 비롯한 이웃나라 작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고 서방에까지도 널리 알려졌다. 제백석은 그의 그림에서 자연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자연에 기대어 살아가는 인간의 노동이 주는 건강함을 표현하려 하였다. "새나 벌레는 늙어서도 일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며 아흔 살이 넘어서까지 붓을 놓지 않았던 그는 생활 속에서 서민들과 함께 하며 얻은 소재를 재치와 직관 넘치는 화면에 담았다.
▶ 황빈홍(黃賓虹)
미술학자이기도 했던 황빈홍(黃賓虹)은 당송 시대 회화의 깊은 맛을 살린 산수를 그렸다. 황빈홍은 대표적인 지식인 화가이자 출판 운동을 벌인 야인이었다. 감식에 뛰어났던 그는 중국 미술의 각 시대와 방면의 우수작을 집성한 <미술총서>를 1913년에 펴냈는데 이 1백20권짜리 대작은 오늘까지 그 가치를 평가받는다. 황빈홍은 임백년과 오창석의 뒤에 등장한 산수화의 거장이다. 가난한 선비집안 출신으로 과거시험에 실패한 후 서화예술연구에 전념하여 학문과 예술을 겸비한 지조 있는 지식인으로서의 일생을 보냈다. 황빈홍은 자연과 우주에 대한 이해를 산수화에 담고자 하였다. 그의 그림은 실경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실경을 뛰어넘는 내면적이고 정신적인 풍경을 전개시킨다. 먹을 여러 겹 쌓아올려 채색처럼 쓴 그의 산수화는 지금 보아도 현대적이다.
▶ 서비홍(徐悲鴻)
서비홍(徐悲鴻)은 "수묵의 정신을 유화로 표현해야한다"는 '중국화 개량론'을 폈던 이론가로 유명하다. 5대가 중 가장 늦게 태어난 서비홍은 중국의 미술전통과 서구의 조형기법을 접목시키는 일에 평생을 바친 작가이자 교육자, 미술행정가였다. 유럽에서 사실주의 회화기법을 터득하였고 중국미술의 사실주의 전통을 확립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분마(奔馬)>, <음마(飮馬)> 등으로 명명된 서비홍의 말 그림은 특히 유명한데 이는 중국군인들의 영웅적 정신을 말에 비유한 때문이다. 화가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8년에 걸친 유럽 유학으로 유화 기법에 능했으며, 그 화법을 중국화에 융합시켜 나갔다. 전통 기법인 선묘와 선염에 서양화의 소묘법을 혼용한 작품들은 인물화와 동물화, 특히 말 그림에서 그 장기를 발휘했다.
14. 현대
현대 중국회화는 중국 내부의 사회 문화적 격변이 가져온 다양한 변화와 복잡한 문제를 동시에 반영하고 있다. 중국의 경제나 정치적 상황이 엄청난 변화를 보이고 있는 것처럼 미술경향도 많은 변모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 가장 중요한 요소로 손꼽히는 것은 무엇보다도 다수 외국유학생들에 의한 직접적인 영향이며 다음으로는 미디어의 위력을 들 수 있다-실제 전국의 단과대학 체제로 독립된 미술대학의 도서관에서는 세계의 주요미술잡지 수십 권 정도는 정기 구독되고 있으며 상당량의 독자적인 전문서적을 보유하고 있다. 1970년대 후반 이후 개혁개방의 물결이 이루어지면서 전통적인 중국의 산수화나 문인화적인 요소가 한순간에 몰락하고, 유문서(劉文西), 요유신(姚有信) 등 수많은 사실적 인물화파가 탄생하였다. 1980년대 천안문 사태(1989)와 동구 사회주의의 몰락은 냉소와 허무를 야기하였고, 사실주의를 바탕으로 한 초현실주의나 팝아트표현주의 양식을 차용한 작품이 많이 등장하였다. 나중립(羅中立)의 「부친父親」은 이 시기의 대표작이다. 천안문 사태 이후 반체제 지식인들이 모여 살던 원명원의 강제 해산(1996) 이후에는 다양하고 다원화된 형식과 장르가 고르게 발전하고,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자신감이 전 시기의 경험들과 어우러져 각각의 개성으로 발현되었다.
*목 차
1. 원시시대
2. 하(夏)상(商)주(周)
3. 춘추전국(春秋戰國)
4. 진(秦)한(漢)
5. 위진남북조(魏晉南北朝)
6. 수(隋)
7. 당(唐)
8. 오대(五代)
9. 송(宋)
10. 원(元)
11. 명(明)
12. 청(淸)
13. 근대
14. 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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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6.09.13
  • 저작시기200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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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3637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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