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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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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내용 요약
제 1 부 소유와 존재의 차이에 대한 이해
제 1 장 일반적 고찰
제 2 장 일상적 경험에 있어서의 소유와 존재
제 3 장 구약, 신약 성서 및 에크하르트의 저서에 있어서의 소유와 존재
제 2 부 두 가지 생존 양식의 근본적 차이 분석
제 4 장 소유 양식이란 무엇인가?
제 5 장 존재 양식이란 무엇인가?
제 6 장 소유와 존재의 심층적 고찰
제 3 부 새로운 인간, 새로운 사회
제 7 장 종교, 성격, 사회
제 8 장 인간 변혁의 조건과 새로운 인간의 특징
제 9 장 새로운 사회의 여러 가지 특징

Ⅱ. 감상평

본문내용

인간은 존재하고자 하는 욕구를 지니고 있다는 주장은 맞지만 실제로 그것이 자신의 고립을 극복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하는 것은 부족하다. 프롬 자신은 이 책에서 <정신적 탐욕이 애초에 극복해야 할 실재적인 공허, 권태, 고독, 억압 등은 그 탐욕을 충족시키는 것으로는 결코 제거 될 수 없다>고 말한 바 있다. ?공허, 권태, 고독, 억압? 이것은 인간이 지니고 있는 어쩔 수 없는 정신적 특성이다. 또한 이 고립감을 극복하기 위해 인간이 타자와 일체감을 체험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체험을 위해 인간이 나누어 가지고 베풀고 하나가 되는 존재적 특성을 본성에 갖추고 있다는 주장은 앞뒤가 바뀐 설명이다. 즉 이것으로 존재적 본성이 해명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자신의 고립감을 없애기 위해 존재적 방식으로 살아나갈 수도 있고, 소유적 방식으로 살아나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프롬은 우리는 \'소유란 삶의 방식\'에 집착하는 한 결코 행복해 질 수 없다고 주장한다. 프롬은 진정 행복해 지려면 오히려 소유가 아닌 자신의 \'존재\'에 집착해야 한다고 말한다. 존재의 삶의 방식이란 \'어떤 것을 소유하지도 않고 또 소유하려고 갈망하지도 않으면서 즐거워하고 자기의 재능을 생산적으로 사용하며 세계와 하나가 되게 살아가는 방식\'이다. 소유에 집착한 사람은 무언가를 얻기 위해 일한다. 그러나 자기 존재에 충실한 사람은 그 일이 자신의 삶을 더욱더 충실하게 해주기 때문에 일에 열중한다. 또, 소유에 집착한 사람은 자기 것을 빼앗아 갈까봐 다른 이들에게 적대적이지만 존재에 충실한 사람은 빼앗길 게 없기에 다른 이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간다. 지식에 있어서도 소유에 집착한 사람은 자신이 \'갖고 있는\' 지식이 파괴될까봐 자기 정당화에 급급한 반면에, 존재에 충실한 사람은 더 나은 완성을 이루기 위해 언제나 열린 마음으로 자기 지식을 수정할 준비가 되어 있다. 인류가 산업화가 가져온 불행과 소외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산업 사회의 \'소유란 삶의 방식\'을 \'존재란 삶의 방식\'으로 바꿔야 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에릭 프롬의 견해에 많은 공감을 하지만 다소 나의 견해와는 차이나는 부분도 있다. 현실적으로 볼 때 현대 사회의 특성상 두 가지의 방식을 적절히 혼용해야 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저자는 지금까지 사람들의 삶의 양식은 소유의 양식이 지배적이었고, 또 그로 인해 많은 문제가 발생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래서 철저하게 삶에서 소유를 버리고 존재로 옮겨갈 것을 주장한다. 저자는 푸른색 빛을 띠는 유리를 가지고 존재를 설명한다. 푸른색의 유리는 빛의 파장 중 푸른색 파장만을 제외하고 모든 파장을 흡수하기 때문에, 즉 푸른색의 파장만을 \'버리기\' 때문에 푸르게 보인다. 이와 똑같이 \'우리가 소유양식을 줄이는 정도에 따라서만 존재양식은 나타날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삶에서 모든 소유를 버리면 존재에게 남는 것은 무엇일까? 저자에 따르면 존재는 \'현재\'에만 관계한다. 하지만 과거 또한 현재로서 되살아 날 수 있다고 한다. 과거가 현재에 관계할 수 있다는 말은 무엇인가? 과거에 이루어진 것이 현재에도 가치있게 사용될 수 있다는 말일 것이다. 우리는 역사 속에서 문화와 지식을 축적한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한사람 한사람의 연구와 노력이 그 전사람의 노력을 바탕으로 성과를 거두며 다음사람의 새로운 노력의 바탕으로 축적되는 것이다. 저자가 말하는 소유양식에서는 모든 축적과 저축을 반대한다. 그러나 저자 자신도 과거가 현재에 관계한다는 말을 함으로써 이러한 축적을 인정해 버린 셈이다. 이러한 축적은 일종의 존재적 소유이다. 존재가 세계를 통찰하며 그 소외되지 않은 능동성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존재적 소유와 축적이 필요한 것이다.
존재적 양식의 삶의 양식을 가지고 사는 사람에게는 오직 존재적인 통찰을 통한 소외되지 않은 능동성을 발휘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다. 그러한 능동성이 지시하는 데로, 아니 의욕하는 데로 그는 행동할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도 약간의 문제가 있다. 그의 삶의 통찰, 생의 목표 설계는 소유에 대한 집착을 버렸다고 해서 언제나 올바른 방향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그는 자신의 삶을 법망을 피해 악을 저지르는 자를 제거하는 데 헌신하겠다고 생각하고 수많은 사람을 죽이려고 할 수도 있다. 좀더 극단적으로는 이 세상의 해악은 지나친 인구증가로 인해 발생했다는 신념을 가지고 핵폭탄이 발사되도록 기도할 수도 있다. 소유와 모든 집착을 버린 그에게는 삶이 그의 생명이 특별히 소중하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그는 더욱 강력하고 무모하다. 삶의 존재양식에서는 이렇게 무모하고 무식한 존재자를 만들 수 있는 위험성을 배제할 수는 없는 것이다.
삶의 존재양식에서는 소유, 이기심, 집착을 버리고, 자기 것을 나누어주고, 사랑하려 한다고 한다., 그런데 과연 누구에게 어떻게 그렇게 할 것인가? 그냥 내 옆에 있는 사람에게 매일 천원씩 주면 될 것인가? 아니면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세계 60억의 인구수로 나누어 조금씩 주면 되는가? 전혀 일하지 않고 놀기만 하는 베짱이들에게 내가 수고하여 수확한 것을 절반이상 나누어 주어야 하는가? 지금은 파이의 양이 부족하니 일단 적은 수에게 주고, 나중에 파이가 커지면 전체에게 나누어 주어야 하는가?
삶의 존재양식의 태도를 견지하기 위해서는 그에 앞서 무엇인가 기준이 필요하다. 이것은 내 태도를 존재적 태도로 바꾼다고 해서 당연히 얻어지는 것은 아님에 틀림없다.
존재란 삶의 방식이 상위가치에 두어야 된다는 견해에서는 동일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살 수없다고 생각된다. 만일 모든 사람들이 프롬이 말하는 그런 이상적인 삶을 산다고 가정하면 이 세상은 이론과는 다르게 살기 힘든 세상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본다. 다만 어떤 것에 더 무게를 두느냐는 개인적인 문제이고 기준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사회의 기준은 그 사회의 철학적 성숙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프롬이 말한 것은 개인적인 기준에서는 다소 모슨점이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가 제시한 존재적인 삶의 방식은 사회의 이상적인 기준으로 봄이 더 타당한 것이라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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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6.12.28
  • 저작시기2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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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385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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