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 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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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삼국유사 해제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一. 개제(開題)

二. 편목(篇目)

三. 선자(撰者)

四. 성질(性質)

五. 가치(價値)

六. 범위(範圍)

七. 평의(評議)

八. 인용서(引用書)

九. 고기(古記)

十. 승전(僧傳)

十一. 향가(鄕歌)

十二. 민속(民俗)과 설화(說話)

十三. 위서(魏 書)

十四. 선성년대(撰成年代)

十五. 형각(刊刻)

十六. 유포(流布)

十七. 번천의례(翻刋義例)

본문내용

王韻紀)」와 한가지 약간(若干)권이라 하였을 뿐 주기(注記)
) 주기(注記): 사물을 기록하는 일
가 없다.
순암수택본의 출현은 삼국유사의 상고에 일대편의를 제공하였으나 잘못된 글자와 끊어진 곳이 많아 오히려 진실한 면을 얻을 수 없고 또한 후세 사람의 분명치 못한 고침이 곳곳에 있는데 그 영인본들의 무색(墨色)이 뒤섞여 원각(原刻)인지 개획(改劃)인지 영본(零本)이 영남 어는 곳에서 출현하여 경성 송석하씨(宋錫夏氏)의 수장(收藏)한 바 되었는데 그 판식(板式)이 광문회장본의 일(一)에 부합하는 것으로서 종래제본의 미화(迷晦)한 부분을 여기에서 취정(就正)할 부분이 많다. 특히 알매( 昧)
) 알매( 昧): 아주 검어 알 수 없음
가 심한 왕력에서의 송본을 가지면 삼국유사 권 일(一), 삼(三), 사(四), 오(五)의 대교(對校)가 가능하나 제 二는 별본(別本)의 출현을 기대할 수 밖에 없다. 여기 동경·경도양대학천본의 첨자(添字)를 부재(附載)하여 유포의 적(迹)을 징(徵)하는 자(資)를 삼는다.
十七. 번천의례( 義例)
) 번천의례( 義例) : 번역과 글자의 모양에 있어서 바뀌고 없어진 올바른 예.
이본대교(異本對校)와 원거핵구(原據 究)와 본문공평(本文拱評)
) 이본대교(異本對校), 원거핵구(原據 究), 본문공평(本文拱評) : 삼국유사의 주석과 번역이 되는 원문(原文)
에서 삼국유사(三國遺事)의 정본(定本)을 작성한 사람은 다르니, 전파의 편리를 위하여 가장 많이 보급된 것을 계명구락부(啓明俱樂部)
) 계명구락부(啓明俱樂部) : 1931년에 민족계몽을 목적으로 설립된 민족계몽단체이다. 최남선, 박승빈, 오세창, 이능화 등 당시 지식인 33인이 발기하여 설립한 단체이며, 기관지인 '계명'과 함께 '낙원', '신천지', '신청년' 등의 잡지를 발간하고, '삼국유사', '금오신화' 등의 고전을 간행하여 민중교화에 힘씀.
에서 바꾸어 세상에 유용하게 쓰여졌다. 하지만 편의를 위하여 주(主)한 것이라서 판본과 글자 모양을 고려하지 않았다.
다만 송씨의 신수장본에 의지하여 왕력(王曆) · 사이(祀異)의 양편(兩篇)중에 중요한 정정을 할 수 있었음을 다행으로 알고, 이하에 전판이래(前板以來)의 예를 기록한다.
본판(本板)은 순암수택본(順庵手澤本)
) 순암수택본(順庵手澤本) : 5권이 갖추어진 완본으로, 이계복이 판각한 뒤 32년 이내에 인 출된 것이다. 훗날 순암 안정복(安鼎福)이 소장하면서 가필을 한 것 때문에 이와 같이 불린다. 이 본은 이마니시(今西龍)가 1916년부터 소장하였는데(일본인들은 흔히 금서본(今西本)이라 칭한다), 일본의 덴리대학 도서관의 귀중본으로 소장되어 있다.
의 영인건(影印件)과 조선광문회소장원서하권(朝鮮光文會所藏原書下卷)〈卷 第 三,四,五〉의 3종과 송석하(宋錫夏)씨 소장(所藏)의 卷 第 一을 중심으로 하였다.
1) 편찬자의 생각으로 그 필요에 의해 수정을 하고, 일일이 괄호로 표시하여 명확한 구별을 하는데 편리하게 하였다.
2) 이 글의 특별한 예일 것 같은 것은 비록 명백한 오류임에도 불구하고 고치지 않았으며, 필례(筆例)
) 필례(筆例) : 자기가 써서 만든 것(예).
와 도습(刀習)
) 도습(刀習) : 새겨 판 것.
으로 생긴 오류가 분명한 것은 독자의 편의를 위하여 간혹 개 정을 하였다.
이를 테면, 를 으로 잘못 알아서 협순(浹旬)의 浹이 俠으로 혼용되는 것과 같이 과 , 土와 才, 그리고 貝, 具, 貞, 眞 등이 많이 혼용되었으나 극히 명백한 것만 개정 하였다.
이 외에 압록(鴨綠)의 綠과 , 의상(義湘)의 湘과 相과 廂, 노예(弩禮)의 奴와 弩와 努, 미추(味鄒)의 末과 未와 味, 정승(政丞)의 丞과 承, 아나(阿那)의 邪와 那와 耶 등은 혼용 을 끊이지 않았으며, 제(第)와 제(弟)는 당연히 통용되었을지 모르나, 혼잡이라고 할 수도 있으며, 이 밖에도 세밀히 들춰보면 끝이 없는데, 그 중에서 분명한 글자에 한하여 활 자(活字)
) 활자(活字) : 활판(活版)을 짜기 위하여 연(鉛)·안티몬 등을 원료로 하여 주조(鑄造)한 글자.
에 편한 대로 개정을 하였다.
3) 원서의 권 제 1 신라시조편(新羅始祖篇)중 「이씨조(李氏祖)」하권(下卷)의 협주(夾注)와 권 제 3 원종흥법편수(原宗興法篇首) 「신라본(新羅本)하권(下卷)의 협주는 본문으로 넣어 야 할 것이며, 권 제 3 락산이대성편(洛山二大聖篇)「안기상(安其像)」下卷(하권)의 협주 중「재어회거지후상창 170여세(在於會去之後相昌 百七十餘歲)」는 去와 昌이 바뀐 것이 며, 권 제 2 남부여편(南夫餘篇)중 「백제부부지별종(百濟扶夫之別種)」의 부부(扶夫)는 부여(扶餘)의 틀린 글자이며, 권 제 2 경덕왕편말(景德王篇末)「왕옥경장팔촌(王玉莖長八 寸)」의 하권과 동가락국기편(同駕洛國記篇) 「류공류덕(留功留德)」하권에는 빠뜨린 문장 이 있으며, 또 권 2 남부여편(南夫餘篇)의 「이상주(已上注)」라고 표시한 것이 본문의 장 행(長行)과 연속해서 쓰여 졌는데, 이런 것은 명백한 오류이지만 편의를 따라 개정하기도 하고, 그냥 두기도 하였다.
4) 권 제 2(卷第二) 가락국기(駕洛國記) 중의 「미유자자생(未有玆子生)」의 玆子는 字의 파급된 글이고, 권 제 三 어산불영(魚山佛影) 중의 「혹견멱등(或見覓等)」의 覓은 不과 見의 합자(合字)임을 분명히 알 수 있으나, 옛 것을 보존하기 위하여 그대로 두었다.
5) 원서 권 제 2 금전대왕편(金傳大王篇)의 책상부고(冊尙父誥)와 삼국사기(三國史記)의 사 론(史論)을 인용(引用)한 것에는 오류가 많은데 그 중에서 문장을 이룰 수 없는 여러 곳 은 원본에 의하여 정정을 하였다.
6) 왕력(王曆) 제 1중에는 잘못된 부분이 많은데 동경대학교본(東京大學校本)을 모방하여 수정을 하고, 또한 괄호로써 표시하였다.
7) 원본에는 서예(序例)와 목록(目錄)이 없는데 검색(檢索)의 편의를 위하여 목록을 붙였으 며, 상세한 내용 검색은 다음을 기하기로 하였다.
8) 구절을 읽음에는 매우 신경을 썼으나 착오가 있을 것이고, 문장의 뜻이 상세하지 않은 여러 곳은 빼기(삭제)도 하였다.
9) 일연(一然)의 비문을 옛 것에 의하여 부록(附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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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7.02.20
  • 저작시기2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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