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중국의 사회문화적 차이와 양국간 문화차이 사례배경과 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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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 론

Ⅱ. 본 론
1. 문화란
2. 한국과 중국의 명분문화
3. 한국과 중국의 대인관계 방식의 차이

Ⅲ. 한국과 중국의 전통혼례문화 사례비교
1. 한국의 전통혼례(傳統婚禮)방식
1) 전통혼례의 의미
2) 전통혼례의 유래와 변천
3) 전통혼례의 절차
2. 중국의 일반적인 전통혼례
3. 중국 내 각 민족들의 특징적인 혼례
1) 한족의 혼례
2) 만족의 혼례
3) 몽고족의 혼례
4) 묘족의 혼례
5) 위구족의 혼례
5. 한국과 중국의 전통혼례문화 차이 배경과 원인

Ⅳ. 결 론

본문내용

한다. 이 문을 닫아거는 습관은 아직도 초원에서 유행되고 있는 대표적 풍습이다.
4) 묘족의 혼례
묘족들은 일반적으로 몇 집이나 몇 십 집씩 마을을 이루어 산비탈이나 교통이 편리한 곳에 산다. 주로 농업으로 생활을 하나 일부는 목축업에 종사하기도 한다.
① 시낭혼 : 묘족의 언어로 남녀간의 자유연애 결혼을 '시낭'이라고 한다. 이런 혼인은 묘족 가운데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데, 이 시낭혼은 반드시 '遊方(유방)'이라는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유방'이라는 것은, 젊은 남자와 여자가 공개적으로 연애를 하면서 이성관계를 마음껏 추구하는 대명사이다. '유방'은 일종의 혼인 풍속으로서 젊은 남자와 여자가 일정한 시기, 일정한 지점에서 공개적으로, 혹은 암암리에 집단적으로 혹은 개별적으로 서로 이야기를 나누거나 和唱(화창)하는 방법으로 연애할 수 있다. 묘족에 속한 남녀들은 거의 80%정도가 이러한 '유방'활동을 통해 혼인을 한다.
② 좌가 : 좌가는 부모의 의사에 의하여 아들과 딸의 혼인을 결정하는 것으로 좌가의 주요한 특징은, 신부가 임신하기 전에는 주로 본가에 있으며 시집에 가 있는 기간이 며칠 안 되므로 손님이나 다름없다. 신부는 이 기간에 친정에 머무르며 자신이 평생 입을 옷과 아이의 옷을 짜고 이런 기간이 끝나면 시집에서는 길일을 택해서 제사를 지낸 후 시어머니와 기타 3-4명의 여성들이 신부를 데려간다. 이후에는 본가로 거의 가지 않고 시집에서 살게 된다.
5) 위구족의 혼례
위구족은 목장을 생활단위로 하여 부락을 이루고 사는데, 그들의 사회에는 원시부락의 흔적이 있는가 하면, 봉건적인 통치의 특징도 있다. 그들의 혼인 풍속도 이를 반영하고 있었던 부분들이 많았다.
① 매매혼인 : 이 혼인은 완벽하게 중매인의 중매와 부모의 의사에 의해 진행되어진다. 만약 남자 집에서 어느 처녀가 마음에 들면 중매인에게 술과 하다를 주면서 여자 집에 가서 구혼하고 여자 집에서 그 선물을 받으면 약혼을 허락하는 것이다. 약혼을 허락하는 경우, 중매인과 남자 측 가족들 중 10-20명이 여자 집에 가서 납채 예물을 의논하는데, 여자 측에서는 처음엔 관습대로 엄청난 예물을 요구하지만, 점차 줄여 나가 일반적으로 말 한 필, 소 한 마리, 양 10여 마리, 차 두덩이, 천 등이다.
5. 한국과 중국의 전통혼례문화 차이 배경과 원인
살펴 본 바와 같이 중국은 그 영토가 광활한 관계로 그 안의 많은 민족들이 주거환경이나 역사적 배경에 따라 저마다의 독특한 혼인풍습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중국의 전통혼례문화는 주육례(周六禮)와 주자사례(朱子四禮)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반면에 우리나라의 일반적인 전통혼례문화는 중국의 주육례(周六禮)와 주자사례(朱子四禮)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전통적으로 행해져온 우리 민족 고유의 전통혼례문화를 말한다. 그 까닭은 주육례(周六禮)나 주자사례(朱子四禮)는 왕실이나 상류의 지배계층에서나 행해졌고 절대다수의 일반민중은 전통적인 관습에 의한 혼례를 행했기 때문이다. 다만 한자문화의 영향으로 주자사례의 절차방법이 원용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의 일반적인 전통혼례문화는 그 정신과 큰 흐름은 고유의 방법이고 세부적인 절차는 주자사례에 의하고 있다고 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또한 중국의 혼례와 우리 나라의 전통혼례가 두드러지게 다른 점은 친영 즉, 혼인예식의 거행 방법이다. 중국의 친영은 신랑이 신부의 집에 가서 친히 신부를 맞아다가 신랑의 집에서 혼인예식을 거행한 반면에 우리나라의 전통혼례는 신랑이 신부의 집에 가서 혼인예식을 거행하고 하루나 3일, 또는 신부가 아이를 낳은 다음에 우귀 또는 신부우례라고 해서 신부가 시댁으로 들어왔다. 마지막으로 중국의 예법이라 할 수 있는 주자사례는 남성위주로 그 명칭이 정해지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전통혼례는 남녀의 일이 형평하게 주체별로 명명되었다는 점에 차이가 있다.
Ⅳ. 결 론
한국과 중국의 혼례문화는 그 절차와 사용하는 호칭부터가 아주 유사하다. 그러나 중국전통혼례는 주문공이 지은 <가례>라는 책 속에 <혼례>편에 실리어 있는 바와 같이. 배달겨레 전통혼례가 중원겨레 전통혼례보다 수준이 높은 짜임새로 되어 있는데도, 중원사람들은 배달겨레 전통 혼례를 기롱해 왔다. 그들이 기롱하였던 말인즉, 이러했다. 이를테면, <세상살이 모든 이치가 양 이 음을 이끌어야 마땅하게 되는데, 조선혼례는 신랑이 신부집으로 가서 신부집에서 혼례를 치르고, 그 뒤 며칠 동안 처가집에서 밥을 얻어먹고 지내다가 신랑 혼자 자기집으로 돌아오니, 이것 은 신랑이 신부를 이끌지 못하고, 도리어 신랑이 신부에게 끌려 간 것이 아니냐.>라고. 중원사람 들이 기롱하였던 이 같은 말을 듣고, 중원겨레 전통혼례에 따르려고, 애를 썼던 배달겨레가 있었는 가 하면, 배달겨레 전통혼례를 굳세게 지킨이가 포은선생 이었다. 포은이 지켰던 조선혼례를 점필 재가 이어받아서 조선혼례를 굳게 지켰다. 그 경로는 이러했다. 포은이 야은에게 전했고, 야은이 강호에게 전했고, 강호가 그의 아들 점필재에게 전했던 것이다. 이 말인즉, 인조시대 선비 오휴당 안신이 지은 김점필재라는 전기에 들어 있다.
지금까지의 자료를 보면 서로 상관관계를 많이 가지고 있지만, 우리나라 특유의 문화답게 걸러서 받아들였다는 것을 한눈에 찾아 볼 수 있다. 하지만, 가까운 나라답게 정말 같은 점 을 많이 볼 수 있고, 우리나라가 한자를 많이 쓰고 있기에 그런지, 언어적인 면에서 도 같은 점이 참으로 많다는 걸 알 수 있다. 혼례문화가 비슷한 만큼 생활방식도 여러 면에서 비슷할 것이란 생각을 해 본다. 중국과 우리나라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문화가 존재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보면 중국은 가깝고도 먼 나라가 아닌가 싶다.
참고문헌
정석원, 불가사이한 중국인, 도서출판 대흥
曲欣欣,人文地理, , 2004,p.122~128
임돈희,『빛깔있는 책들-조상제례』대원사, 1990
임재해,『빛깔있는 책들-전통상례』대원사, 1990
이영춘,『차례와 제사』대원사, 1994
朴柱弘, 韓國民俗學槪論, 螢雪出版社, 1992,
권순만, 종합 관혼상제, 일신서적출판사,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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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7.03.31
  • 저작시기200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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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401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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