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해설-시편의 해설-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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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성경해설-시편의 해설-23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소개의 글

2. 시편의 개요

3. 광야의 의미

4. 양과 염소의 차이

5.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6.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7. 저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8. 잔잔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도다.

9.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10.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

11. 나와 함께 하심이라

12.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13. 주께서 나와 함께 계시다 1

14.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15. 내 잔이 넘치나이다

16.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17.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본문내용

워 말아라; 내가 곁에 있다”고 잔잔히 말씀하는 음성이 들린다면 바로 주님이신 줄 알라.
내 잔이 넘치나이다.
이 본문은 양과 목자의 모습이 아니라 고대 유대인들의 연회를 하는 모습으로 장면이 바뀌었다.
잔은 부어야 맛이다....ㅎㅎㅎ; 잔이라는 것은 유대인들의 개념에 여러 가지를 상징한다.
유대인의 풍습 가운데 손님이 오면 손님과 함께 식사를 하는데, 이제 상상을 하자. 여러분이 뜨거운 햇빛이 내리쬐는 길을 걸어서 여러분의 친구의 집에 당도했다. 시간이 되어서 식사가 나오고 음료수를 내오고... 친구가 여러분의 잔에다 음료수를 따라 주는데... 정말 물이 귀한 곳에서 손님에게 포도주를 부어 주는데, 잔에 반절 정도만 부어 준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느껴지겠는가?
“당신이 내게 있어서 존경과 사랑을 받으실만한 분입니다”라는 표현을 할 때, 즉 손님을 존경하고 사랑하고 있다는 표현을 할 때, 바로 잔에 포도주를 붓는데 넘치게 부어 주는 것이다. 이런 행동이 바로 “내가 당신을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라는 표현인 것이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내게 부으시는 잔이 넘칩니다”라는 말은 바로 하나님이 나를 그만큼 사랑하고 아끼며 나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이해를 하는 것이 좋다.
그러나, 특히 이 “잔”은 지금 언급되고 있는 상황이 어떤 것이냐에 따라서 그 의미가 완전히 달라진다.
(눅 22:39)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좇아 감람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좇았더니
(22:40) 그 곳에 이르러 저희에게 이르시되 시험에 들지 않기를 기도하라 하시고
(22:41) 저희를 떠나 돌 던질 만큼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여
(22:42) 가라사대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 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22:43) 사자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돕더라.
(22:44)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방울 같이 되더라
이 성경구절에서의 겟세마네에서의 기도 제목은 무엇이었나??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잔이란...- 십자가를 가리키나?
예를 들어, 지금 말하고 있는 상황이 결혼식의 상황인데, 이 상황에서 “잔을 채우라” 그러면 그 잔은 기쁨의 의미가 되고, 장례식의 상황에서 “이 잔이 내게 쓰도다” 그러면 그때의 잔은 슬픔을 상징하게 된다. 실제적으로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말씀하시는 잔은 바로 슬픔의 잔이고, 여기 시편 23편에서 이야기하는 잔은 바로 기쁨의 잔이라는 뜻이 된다.
그러므로 “내 잔이 넘치나이다. 라는 말은 곧 “내 기쁨이 넘치나이다.라는 말과 같은 말이 된다.
예수님이 말씀하고 계시는 잔은 바로 슬픔의 잔이었다. 즉 예수님이 기도하시는 내용은 십자가를 지지 않겠다는 내용이 아니라 육체적인 고통인 십자가는 “지고 가겠습니다. 그러나 마음속에 죄어오는 슬픔은 견디지 못하겠습니다.라는 말이다. 그것은 대신 지신 죄로 인해서 하나님에게서부터 등 돌림을 당하는 슬픔이었던 것이다. 그 증거는 바로 엘리엘리 라마 사박다니 인데...이 말도 “왜 나를 버리셨습니까?” 라는 항변이 아니다. 시편 22편 1절을 보시면 바로 이 말씀이 있는데, 예수님은 “엘리엘리 라마 사박다니”라는 시편의 한 구절을 암송하신 것이다. 시편 22편을 자세히 살펴 보라; 어떤 내용인가??
환난과 고통의 시간에 하나님께 도우심을 구하는 시편이며, 결국 이 시편의 마침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시로 마쳐지고 있다.
예수님은 결코 겟세마네 동산에서 십자가를 안 질 수 없겠냐고 하나님께 땀방울이 핏방울처럼 되면서 기도하시는 분은 아니시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지금까지의 필자의 경험을 통하여 생각해 볼 때, 그분이 나를 영원히 지켜주시고, 보호해 주시고, 인도해주시고, 성실하심으로 나를 아껴주시고, 내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실 줄을 알고 있다. 그것은 어렴풋이 아는 것이 아니라 그분을 겪어 볼 때 확실한 것이다. 그래서 이것은 확실한 신뢰이다. 그분의 자비와 선하심이 영원히 나와 함께 거하리라라는 것을 안다. 그분이 나와 함께 하리라는 것을 안다.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하나님의 집, 또는 하나님 나라는 어떻게 생겼을까요?
1세기 당시의 묵시 문학에 의하면 천국은 그 사방이 1500 마일이고, 높이 역시 1500마일이다. 고대에는 정방형이라는 것은 완전함을 의미했다.
성경의 중요한 개념 중의 하나인데, “내가 누구누구의 집에 있습니다. 라는 표현은 곧 “내가 그분의 보호하심 아래 있습니다.라는 말과 같다.
(시 135: 2) 여호와의 전정에 섰는 너희여
이 말은 곧 “여호와의 보호하심 아래에 있는 너희여” 라는 말과 같은 의미이다.
자 이제 여호와가 주인이 되시고 보호자가 되시는 그 개념이 광야에서는 어떤 개념인지 알아봅시다. 양의 우리가 있습니다. 거기에 목자가 앉아 있습니다. 목자가 양의 문에 앉아 있는 이유는 바로 양을 보호하기 위한 것입니다. 따라서 “내가 여호와의 집에 .. 거하리라”는 말은 “나는 그분의 보호하심아래 영원히 있겠다”는 말입니다. 그분은 또 나를 영원히 보호하실 것이라는 말이 되구요.
(요 10:9)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요한복음의 이 말씀도 같은 의미입니다.
또 그분의 집에 머문다는 것은 그분의 가족이 된다는 것을 의미 합니다. 고대에 가족이란 의미는 너의 문제가 곧 나의 문제라는 말과 같습니다. 내가 여호와의 집에 거할 때 내 문제는 더 이상 내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아버지가 담당해야 할 문제이고, 그분이 내 목자인 이상 내 문제는 그분의 문제입니다. 그분이 성실하심을 갖고서 나의 문제를 풀어 가실 것입니다. 여기는 또 한 가지 주의해야 할 것이 있는데, 가족이란 권리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의무도 있습니다. 내 문제를 아버지 곧 나의 목자 되시는 분이 풀어 가시는 동안 나는 아버지의 가족으로서 아버지의 양으로서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시편, 참아름 다워라, 나의 목자, 광야, 성경해설, 구약해설, 시편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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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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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7.06.01
  • 저작시기200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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