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통사 제 4판 1권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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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문학통사 제 4판 1권 정리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2. 원시문학
2.1. 구석기시대의 언어예술 1―51
2.2. 신석기시대로의 전환 1―54
2.3. 민족 형성의 연원과 과정 1―59

3. 고대문학
3.1. 건국신화ㆍ국중대회ㆍ건국서사시 1―65
3.2. 고조선 1―70
3.3. 부여ㆍ고구려계 전승 1―76
3.4. 삼한ㆍ신라ㆍ가락 쪽의 사정 1―83
3.5. 탐라국 건국서사시 1―91

4. 고대에서 중세로의 이행기문학4.1. 시대 설정의 근거 1―95
4.2. 전설ㆍ민담시대로의 전환 1―100
4.3. 짧은 노래 몇 편 1―104

5. 중세전기문학 제1기 삼국ㆍ남북국시대
5.1. 한문학의 등장과 그 구실 1―109
5.1.1. 한문 사용과 중세화 1―109
5.1.2. 나라의 위업을 알리는 금석문 1―118
5.1.3. 국내외의 정치문서 1―126
5.1.4. 이른 시기의 한시 1―130
5.2. 노래의 새로운 모습 1―135
5.2.1. 고구려 노래 1―135
5.2.2. 백제 노래 1―139
5.2.3. 신라 노래, 이른 시기의 모습 1―143
5.2.4. 향가ㆍ사뇌가 1―149
5.2.5. 향가의 율격 1―153
5.3. 향가의 작품세계 1―158
5.3.1. 민요 계통의 노래 1―158
5.3.2. 정치상황과 관련된 노래 1―164
5.3.3. 월명사와 충담사 1―170
5.3.4. 불교를 따른 노래 1―177
5.4. 불교문학에서 문제된 이치와 표현 1―183
5.4.1. 불교사와 문학사 1―183
5.4.2. 원효 1―187
5.4.3. 의상과 그 전후의 학승 1―192
5.4.4. 게송과 염불 1―197
5.4.5. 혜초의 기행문 1―202
5.5. 설화에 나타난 상하ㆍ남녀 관계 1―205
5.5.1. 신화적 상상의 유산 1―205
5.5.2. 고승의 신이한 행적 1―208
5.5.3. 영웅담의 성격 변화 1―215
5.5.4. 하층민의 소망과 시련 1―220
5.5.5. 설화의 정착과 변모 1―224
5.6. 연극의 자취를 찾아서 1―227
5.6.1. 중세의 굿ㆍ놀이ㆍ연극 1―227
5.6.2. 고구려ㆍ백제의 놀이와 연극 1―229
5.6.3. 신라 쪽의 상황과 처용극 1―233
5.6.4. 다섯 가지 놀이 1―237
5.7. 남북국시대의 상황과 문학 1―242
5.7.1. 동아시아문학의 판도 1―242
5.7.2. 발해문학의 위치 1―244
5.7.3. 발해문학의 작품 1―247
5.7.4. 신라문학과 대외 관계 1―253
5.8. 신라 한문학의 성숙 1―259
5.8.1. 신문왕과 설총 1―259
5.8.2. 전성기에 이룬 작품 1―262
5.8.3. 말기의 상황과 왕거인 1―267
5.8.4. 최치원의 성공과 번민 1―270
5.8.5. 최광유ㆍ박인범ㆍ최승우ㆍ최언위 1―277

6. 중세전기문학 제2기 고려전기
6.1. 쟁패와 창업의 신화적 표현 1―285
6.1.1. 건국신화의 재현 1―285
6.1.2. 고려의 건국신화 1―289
6.1.3 왕실 혈통의 위기 1―296
6.2. 향가 전통의 행방 1―300
6.2.1. 고려전기의 향가 1―300
6.2.2. 균여의 <보현시원가> 1―302
6.2.3. 예종의 <도이장가> 및 관련 작품 1―309
6.2.4. 정서의 <정과정곡> 1―314
6.3. 과거제 실시와 한문학 1―318
6.3.1. 고려 한문학의 출발점 1―318
6.3.2. 과거제 실시 1―321
6.3.3. 조익ㆍ왕융ㆍ최승로 1―327
6.3.4. 현종ㆍ최충ㆍ박인량 1―332
6.3.5. 김황원 1―337
6.4. 불교문학의 재정립 1―341
6.4.1. 고려전기 불교의 판도 1―341
6.4.2. 균여와 제관 1―343
6.4.3. 의천 1―348
6.4.4 계응ㆍ혜소ㆍ탄연 1―352
6.5. 설화와 역사 사이 1―356
6.5.1. 민간전승의 저류 1―356
6.5.2. 화풍과 국풍 1―357
6.5.3. 비범한 인물의 탄생 1―360
6.5.4. <가락국기> 1―365
6.5.5. <수이전> 1―367
6.5.6. <삼국사기> 1―372
6.6. 고려전기 귀족문학의 결산 1―380
6.6.1. 예종 시절의 풍류 1―380
6.6.2. 동조자와 비판자 1―384
6.6.3. 격동의 와중에서 1―388
6.6.4. 김부식의 시대 1―397
6.6.5. 무신란 직전의 상황 1―401
6.6.6. 제주시인 고조기 1―404

본문내용

徐熙 >), 승려(균여<均如>), 장군(강감찬<姜邯贊>)등 비범한 인물에 관한 이야기가 신화적 요소를 지닌 영웅전설의 모습을 갖추어 전해졌다. 이는 선택된 인물이 위대하다는 사실에 이야기 형성의 이유가 있다기보다는, 민중영웅을 희구하는 전통이 특정인물과 결부되었으리라 여겨진다.
6.5.4. <가락국기>(駕洛國記)
신라 문종 정권 시 중앙집권적 통치 질서가 이미 확고한 시기라 지방 호족 세력은 몰락했고 독자적 문화능력도 없었다. <가락국기>는 수로왕의 후예라 자처하는 사람들이 오랜 전승을 자랑하며 지방문화를 육성해 왔던 금관(金官)-지금의 김해-에 수령으로 내려갔던 문인이 그 사실에 감명을 받아 저술했다고 한다. 기존 역사서를 따르지 않는 다각적인 서술을 했고 문헌기록의 미비점을 현지조사를 통해 보충했으나, 다양한 자료를 모은 책이라 서술에 체계가 부족하다.
6.5.5. <수이전>(殊異傳)
전문이 남아있지 않아 언제 누가 만들었는지 확실하지 않으나 설화 그 자체를 주제로 해 국풍(國風)을 존중하는 문인이 민간전승에 깊은 관심을 가진 자취를 나타내주어, 고려전기문학의 판도에서 <삼국사기>(三國史記)와 대립적 위치에 있다 평가된다. 문학적 윤색을 좋아하는 여러 사람들에 의해 오랜 기간에 걸쳐 보태고 다듬어졌으며, 제왕ㆍ고승ㆍ명장에서부터 일반 백성까지 두루 등장시켜 일상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를 깨고 미처 상상할 수 없었던 경험을 전하는 이야기를 모았다. 대부분 선덕여왕이나 김유신처럼 잘 알려진 인물과 결부시켜 전설적 증거력과 신빙성을 갖추도록 하면서 그런 인물이 훌륭했다는 통념을 뒤엎는 내용을 담고 있다.
6.5.6. <삼국사기>(三國史記)
<수이전>(殊異傳)과는 상반된 성격으로, 역사의 이해를 위한 자료로 필요한 범위 안에서 설화를 가려서 이용함으로써 설화에 대한 역사의 우위를 입증했다. 화풍(華風)으로 국풍(國風)까지 아울러서 독자적 전통의 의미도 유교적인 보편주의에 따라 해석했으며, 민간전승에 근거를 둔 하층문화의 개입을 되도록 줄이며 사실 위주의 서술이 중심이 된 중세 보편주의 가치관이 그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삼국사기> 편찬의 가장 빛나는 성과라고 할 수 있는 열전(列傳)은 김유신이나 을지문덕 같은 명장을 비롯해 명신, 학자, 충의지사 등을 다루었으며 일반 백성에 속한 미천한 인물이라도 행실이 아름다우면 열전에 등장시켰으며 그 마지막엔 반신과 역신을 소개했다. <삼국사기>는 그 내용과 문장 격식에서 ‘유교적 가치관 확립’이라는 의도와는 다른 상반된 모습도 보여준다. 열전(列傳)에는 지배질서와 어긋나는 내용이 많으며 설화를 소재로 해서 창작한 작품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문장 격식도 미천한 인물이 겪는 세상살이를 박진감 있게 묘사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6.6. 고려전기 귀족문학의 결산
6.6.1. 예종(睿宗) 시절의 풍류
고려전기 문화발전이 절정기에 이른 시기의 군주인 예종(1079~1122)은 태평성대의 풍류를 누렸다고 널리 알려져 있으며, 신하들과 격의 없이 화창(和唱)하던 일은 후대 문인들이 두고두고 흠모했다고 한다. 당시 이자겸 일파를 비롯한 몇몇 문벌귀족의 득세로 통치질서가 위태롭게 되었다. 예종은 국정을 장악할 수 있는 힘을 찾고자 했으나 실패하자 자주 궁중을 떠나 산천을 찾고 처사(處士)의 문학을 동경하면서, 과거에 급제했으나 벼슬을 하지 않고 은거해 살아가는 곽여(郭輿)나 이자현(李資玄) 같은 처사(處士)와 깊이 사귀었다 한다. 이러한 은거와 도피의 문학이 조선시대에까지 이어지게 된다.
6.6.2. 동조자와 비판자
박호(朴浩) 예종때 학사 노릇을 했으며 왕조의 위엄을 빛내고 국왕이 하는 일을 찬양하는 문학을 담당 했다. 권적(權適)은 공신의 후예이며 예종을 도와 <국학예의규식>(國學禮意規式)을 짓고 운영책임자인 제주(祭酒)를 맡았다. 최약(崔)과 정극영(鄭克永)은 문벌귀족의 득세와 예종의 도가 취향을 강하게 비판했다.
6.6.3. 격동의 와중에서
이자겸(李資謙)의 난이 평정된 후 김부식을 중심으로 한 문벌귀족세력인 개경파와 서경을 기반으로 하는 신진세력인 서경파의 대립이 심화되었다. 이자겸의 난으로 개경이 황폐해지자 서경천도운동(西京遷都運動)이 본격적으로 일어났으며, 이에 기득권을 포기하려 하지 않았던 문벌귀족은 인종을 자기네 편으로 끌어들여 서경천도를 막으려 했다. 개경파는 불교와 유학을 통해 최상의 이론을 갖추고 오랜 기간에 걸쳐 다듬어져 논리적 우위가 뚜렷했으며, 서경파는 고구려 정통론을 내세우며 하층민을 아우르는 큰 인기를 얻었으나 중세 후기를 이끌어나갈 만한 강령을 갖추지는 못했다. 개경파와 서경파의 대표 격인 김부식과 정지상은 여러모로 대조가 되며, 문학의 역량을 두고서도 상당한 경쟁을 했다. 김부식이 노력을 통해 고답적 규범을 수립하고자 했다면, 정지상은 타고난 재질로써 자기 고장인 서경에 대한 향토의 정서를 살리면서 아름다운 표현을 살리고자 했다.
6.6.4. 김부식(金富軾)의 시대
고려전기 대표적 문벌귀족의 하나인 경주김씨 가문의 네 형제는 걸출한 인물들로서, 최상의 위치에 올라서면 도덕적ㆍ정신적 의무가 있다는 것을 알고 실천했다. 형제들 가운데 우뚝했던 김부식은 최고의 지위를 차지했고 그런 지위에 상응하는 임무를 자각하고 각별한 노력을 했다. 문학이 부귀영달을 위해 필요한 수단이 아니고, 가치관을 바로잡고 질서를 이룩하는 근본이라 여겨 유교의 경전을 모범으로 삼아야 한다고 했다.
6.6.5. 무신란 직전의 상황
인종(仁宗)의 아들 의종(毅宗)이 왕위를 계승하고 방탕한 놀이를 일삼고 정사를 돌보지 않자, 일반백성과 집권층에서 불만이 거세게 일어났고 1170년(의종24)에 무신난(武臣亂)이 일어나 고려전기는 막을 내리게 된다. 의종이 정치를 망치는 기간 동안 주위의 문인들은 비판하다가 박해를 당하기도 하고 함께 휩쓸려 정권과 운명을 같이 하기도 했다.
6.6.6. 제주시인 고조기
탐라고씨는 탐라국의 왕족으로서 고조기(高兆基)의 아버지 대에 이르러 처음으로 중앙 정계의 벼슬을 얻고, 고조기가 과거에 정식으로 급제하게 된다. 시를 잘 짓고 특시 오언시(五言詩)에 능하다는 평을 듣는데 <동문선>(同文選)에 수록된 시가 7수나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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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7.07.01
  • 저작시기200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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