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습의 생애와 금오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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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서론

본론
1. 김시습의 생애
생장수학기(1~21세)
강릉 落鄕期
방랑의 동기
방랑기
금오기 (隱居期)
失意期
晩年
2. 김시습의 思想
(1)김시습의 유학ㆍ정치사상
①古今帝王國家興亡論
②爲治必法三代論
③人才說
④生財說
⑤名分說
⑥人君義
⑦人臣義
⑧愛民義(애민의식)
⑨刑政義
3. 김시습의 귀신관
불교론

4.김시습과 『금오신화』

본문내용

려 하 겠습니까? 이는 반드시 호사가들이 내 가문을 지나치게 칭찬해서 규수댁을 속이려는 것입니다.”
13)마침내 가약을 맺게 되어 길을 택해서 혼례를 이루니 끊어졌던 사랑이 다시 이어졌다.
14)辛丑年 고려 공민왕 10(1361)년에 홍건적의 난에 해당.
홍건적이 서울을 점령하였는데, 이생의 가족을 데리고 궁벽한 산골에 숨어 있
었는데 한 도적이 칼을 빼어들고 쫓아왔다. 이생은 겨우 살아났는데, 여인은 도적에게 사
로잡혀 정조를 빼앗기려 하자, 도적에게 크게 꾸짖으니 도적은 노하여 여인을 한 칼에 죽
이고 살을 도려 흩었다.
15)도적의 무리가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부모님의 살던 옛집을 찾아갔으나 兵禍로 다 타버
렸다. 다시 아내의 집에 가 보니 행랑채는 쓸쓸하고 쥐들이 우글거리고 새들만 지저귈 뿐
이었다.
16)밤이 되자 희미한 달빛이 들보를 비춰주는데, 낭하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17)여인은 이생의 손을 잡고 한바탕 통곡을 하더니 곧 사정을 얘기하였다.
18)이튿날 여인은 이생과 함께 옛날 살던 개녕동을 찾아가니 거기에는 금은 몇 덩어리와
재물 약간이 있었다. 그들은 두 집 부모의 해골을 거두어 금은 재물을 팔아서 각각 五冠
山 기슭에 합장하고는 나무를 세우고 제사를 드려 모든 예절을 다 마쳤다.
19)그 후 이생은 벼슬을 구하지 않고 아내와 함께 살게 되니, 피란 갔던 노복들도 또한 찾
아들었다. 이생은 이로부터 인간의 모든 일을 잊어버리고서 친척과 귀한 손의 길흉사 방
문에도 문을 다고 나가지 않았으며, 늘 아내와 함께 시를 지어 주고받으며 즐거이 세월을
보냈다.
20)어느덧 두서너 해가 지난 어떤 날 저녁에 여인은 이생에게 말하였다.
“세번째 가약을 맺었습니다만 세상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았으므로 즐거움도 다하기 전에 슬픈 이별이 갑자기 닥쳐왔습니다.”
이생이 까닭을 물으니 여인은 대답하였다.
“저승길은 피할 수 없습니다. 하늘이 저와 낭군의 연분이 끊어지지 않았고 또 전생에 아
무런 죄악도 없으므로 잠시 낭군을 뵈어 시름을 풀게 하였던 것입니다. 오랫동안 인간
세상에 머물러 있으면서 산 사람을 유혹할 수는 없습니다.
20)이생은 아내가 말한 대로 그녀의 해골을 거두어 부모 무덤 곁에 장사를 지내 주었다.
그 후 아내를 지극히 생각한 나머지 병이 나서 두서너 달 만에 그도 또한 세상을 떠났
다.
21)이 사실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슬퍼하고 탄식하면서 그들의 절개를 사모하지 않는 사람
이 없었다.
<醉遊浮碧亭記>
1)松京의 홍씨 성을 가진 부호가 있었는데, 나이 젊고 얼굴이 잘 생기고 풍도가 있었으며
글도 잘 지었다.
2)추석에 흥에 취해 부벽정에 올랐다.
3)三更이 되었는데 문득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더니 뜻밖에도 나타
난 사람은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4)서로 시를 수창하다가 홍생이 그녀의 성을 물었더니, 그녀는 은나라 왕실의 후손이 箕氏
의 딸이라고 하였다.
5)서로 뜻이 맞아 시를 수창하다가 회오리바람이 불어와 서생이 앉은 자리를 걷어 갔다. 그
리고 시도 앗아가 버렸으며 그녀의 간곳도 알 수 없었다.
6)그 후 서생은 그 연인을 잊지 못해 병을 얻어 쇠약한 몸으로 집으로 돌아갔으나, 정신이
흐리멍덩해지고 언어에 두서가 없었다.
7)어느 날 밤에 한 여인이 상제께서 선비의 재주를 사랑하시어 屬官으로 삼을 것이라고 하
였다.
8)그는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南炎浮洲志>
1)成化 명나라 현종의 연호. 조선 세조 11(1465)년.
초에 경주에 朴生이 살고 있었다. 그는 일찍이 유학을 공부하여 太學館에 적을 두
고 있었으나 과거에 급제하지 못해 항상 불쾌한 감정을 품고 있었다.
2)박생은 일찍부터 불교ㆍ巫覡ㆍ귀신 등 모든 설에 대해 의심을 품고 있었으나 어떤 결단을
내리지 못하였는데, 후에 『중용』과 『주역』을 읽고서 자신의 견해를 믿게 되었다.
어느 날인가는 스님에서 극락과 지옥설에 대해 바르지 못함을 말하기도 하였다.
3)박생을 일찍이 一理論이란 글을 지어서 자신을 깨우쳤는데, 이단의 유혹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한 일이었다.
4)어느 날 박생은 자기의 거실에서 밤에 등불을 돋우고 글을 읽다가 베개에 기대어 옷을 입
은 채 잤는데, 꿈에 한 날에 이르니, 곧 바닷 속 한 섬이었다.
5)그는 염라대왕과 담론을 하게 된다.
박생은 자신의 의견을 염라대왕에게 개진한다. 그것은 공자의 도ㆍ 석가의 도ㆍ 귀신론ㆍ
왕은 백성에 의해 추대 받아야 하고 한 나라에는 두 임금이 없다는 의론ㆍ 삼강오륜 등이
다.
6)염라대왕이 박생에게 禪位한다.
7)박생이 하직하고 문 밖으로 나와 수레에 올랐다. 그때 수레를 끌던 사람이 발을 헛디뎌서
수레바퀴가 넘어졌다. 그 바람에 박생도 쓰러졌다. 놀라 일어나니 한바탕 꿈이었다.
8)두서너 달 후에 박생은 병을 얻었는데 결코 살아나지 못할 줄 알았으므로 의원도 무당도
사절하고 끝내 세상을 떠났다.
<龍宮赴宴錄>
1)고려 때 韓生이 살고 있었는데, 젊어서부터 글을 잘 지어 조정에 이름이 알려져서, 文士
로 평판이 있었다.
2)어느 날 용왕의 분부라면서 관원이 한생을 이끌어 용궁문 밖에 도착하였다.
3)용왕이 한생을 맞이하였다.
4)용왕이 말하길 자신의 딸의 집의 上樑文을 지어달라고 하였다.
5)한생은 고개를 숙이 엎드렸다가 상량문을 써 내려 가는데, 글은 구름과 연기가 서로 얽히
는 듯하였다.
6)한생은 그 글을 쓰기를 마치자 곧 용왕에게 바치었다. 용왕은 크게 기뻐하여 이에 세 신
에게 명하여 이 글을 보게 하니 세 신이 모두 떠들썩하게 감탄하고 칭찬하였다. 용왕은
한생을 대접하기 위하여 잔치를 열게 하였다.
7)한생이 돌아가려고 하니, 使者 한 사람이 犀角을 휘두르면서 앞에서 인도하니, 마치 공중
으로 올라 날아가는 것 같았는데 다만 바람 소리와 물소리가 잠깐 동안이라도 끊어지지
않았을 뿐이었다.
8)이윽고 소리가 그치어 눈을 떠 보니 다만 자기 몸은 거처하는 방안에 누워 있을 뿐이었
다.
9)그 후에 한생은 세상의 명예와 이익에는 생각을 두지 않고 명산에 들어갔는데, 그가 어디
서 세상을 마쳤는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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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7.09.11
  • 저작시기200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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