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역사왜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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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서 론

2. 본 론
1) 일본 역사 왜곡의 배경
2)일본의 역사 왜곡과 그 진실은 무엇인가?
(1) 새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
- 모임 결성의 배경
- ‘만드는모임’이 추진하는 역사개찬 ‘국민운동’의 실태
(2) 왜곡된 역사와 진실
- 고대사 (임나일본부설)
- 조선시대 (임진왜란, 조선통신사)
- 개화기 ( 정한론, 강화도조약)
- 일제강점기 (한일병합, 위안부)



3. 결 론

본문내용

이를 거부하고 있다. 일본군위안부는 오랫동안 정신대(挺身隊)라는 이름으로 불려왔으나 이는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정신대란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친 부대라는 뜻으로 일제시대 노동인력으로 징발되었던 사람들을 가리킨다. 이들 중 ‘여자근로정신대’의 일부가 일본군위안부로 끌려가기도 하였으나 두 제도를 동일한 것으로 볼 수는 없다. 이와 더불어 혼용되어 쓰이는 용어가 종군위안부(從軍慰安婦) 이는 자발적으로 군을 따라 다닌 위안부라는 의미로 강제로 성노예 생활을 해야 했던 일본군위안부의 실상을 감추려고 일본이 만들어낸 용어다. 현재 공식적인 용어로는 한국, 중국 등 한자 문화권에서는 ‘일본군위안부’, UN 등 국제기구를 포함한 영어권에서는 ‘일본에 의한 성노예’가 쓰이고 있다.
이다.
일본은 만주사변(1931년)과 중일전쟁(1937년 발발)으로 전선이 확대되고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늘어나는 주민 강간과 성병을 막고 군의 사기를 진작한다는 명목 하에 ‘군위안부’ 제도를 만들었다. 일본군이 군 위안소를 만든 시기는 1932년경이며 본격적으로 설치한 것은 중일전쟁이 일어난 1937년 말부터이다. 일본군은 위안소의 설치 목적, 관리감독, 위안부 동원에 대한 명확한 원칙을 가지고 체계적으로 실행했다. 일본, 한국, 중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많은 여성들이 은밀하면서도 체계적으로 군위안부로 동원되었다. 총 숫자는 적게는 5만 명에서 많게는 수십만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특히 당시 식민지였던 우리 나라에서 가장 많은 수가 동원되었으나 정확한 숫자는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 끌려간 여성들의 나이는 10대 초반부터 40대까지 광범위했다. 가난한 집안의 여성들이 식당종업원, 간호사, 여공 모집 등 취업사기에 속아 끌려갔으며, 유괴나 강제 연행 형식으로 끌려간 경우도 많았다. 일본군이 직접 나서거나 군의 협조 하에 민간인이 동원을 담당하였다. 이 여성들은 열악한 군위안소에서 치욕적인 성노예 생활을 강요당했다. 위안소는 군부대 주둔지 근처에 별도의 건물로 들어서거나 군용 막사나 트럭이 이용되기도 했다. 서너 명에서 많게는 수십 명의 위안부가 같이 생활하는 위안소는 변변한 위생시설조차 갖추지 않은 열악한 환경이었으며, 피해 여성들은 인권을 유린당한 채 소모품 취급을 받았다. 여성들은 하루에 평균 10명 내외에서 30명 이상의 군인을 상대로 성적행위를 강요당했다. 여성들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외출도 엄격히 제한되었으며, 우리말도 쓰지 못하게 했다. 또한 많은 여성들이 성병에 걸려 고생했다.
일본이 패망하자 위안부들은 철저하게 버려졌다. 일본군이 패주하면서 소개(疏開) 사실을 알리지 않아 폭격 등으로 많은 위안부들이 사망하였다. 퇴각하면서 위안부들을 한데 모아 죽이는 일까지 자행되었다. 살아남은 이들은 연합군 포로수용소에 수용되었다가 귀국하거나, 개별적으로 힘겹게 돌아오기도 했다. 하지만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경우도 많았다. 돌아오는 방법을 몰랐거나 알았어도 포기하고 이국에 잔류하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일본교과서에는 반인륜적 전쟁범죄 행위인 동시에 민족차별이며, 성차별이었던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기술이 반드시 교과서에 서술되어야 한다.
3. 결 론
‘ 眼下無人(안하무인)’ 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사람됨이 교만하여 남을 업신여기는 행태를 일컫는 말이다. 일본의 역사 왜곡은 이러한 안하무인의 모습으로 보여 진다. 아무리 ‘황국사관’이다, ‘극우익세력이다’ 라고 하여도 역사의 부분에서 이러한 왜곡과 은폐를 한다는 것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본문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일본은 역사의 어느 특정한 부분만이 아니라 전반적인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 한국이 시정요구를 하면 글자 하나만 바꿔서 교묘하게 피해가는 전략을 쓰고 있다. 우리나라를 침략하여 식민 지배를 하고 입에 담기도 어려운 極惡無道(극악무도)한 행위를 일삼고서 사과는 커녕 그 사실을 숨기기에 바쁘다. 이러한 왜곡된 역사교과서로 공부하는 학생들은 자신의 나라가 한 행위도 모른체 일본은 주변국을 개화할 수 있도록 도와준 좋은 국가이며 한국은 이런 도움을 받고서도 모른체 하는 경우 없는 국가로 생각할 수 있다. 독도 문제만 해도 그렇다. 어느 한순간 무작정 우기기 시작하여 조례까지 정한걸 보면 밀어붙이기식 정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 知彼知己(지피지기)면 百戰百勝(백전백승)’ 이라는 말처럼 우리나라는 일본의 이러한 역사왜곡에 맞서, 우리 역사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갖고 더 정확히 알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제대로 알지 못하고서는 반박할 수 없다. 우리 국민이 무관심하다면 우리의 역사는 왜곡된 채로 알려질 것이다. 일본은 아시아의 선진국으로서 세계에 그 위상을 널리 알리고 있다. 기술의 선진화, 제도의 선진화가 이루어지기 전에 역사 인식의 선진화가 먼저 이루어지도록 노력해야할 것이다. 또한 우리 정부 역시 지금 선진국으로 가고 있는 지금, 올바른 역사를 세계에 알리도록 백방으로 노력해야 할 것이고, 우리 국민 역시 위에서 언급한대로 우리 역사를 전도하는 사람으로서 먼저 우리 역사를 올바로 알고 배우는 자세가 필요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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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와라 요시후미, 「위험한 교과서」, 역사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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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준환,「하나 되는 한국사」, 한국교육진흥재단, 2002
<참고사이트>
국회도서관 일본역사교과서왜곡자전시관
  • 가격2,500
  • 페이지수19페이지
  • 등록일2007.11.02
  • 저작시기2007.10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434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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