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학사상이 왜 정치에 반영되지 못하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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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조선 후기 사회가 직면하고 있었던 국제환경의 영향 아래 실학의 외래적 요인들이 조성되어 갔다. 실학은 대륙정세의 변동이나 서세동점이라는 역사적 사건과 무관할 수 없었다.
실학은 서학 및 명청대 학술의 수용 등 조선 후기사의 주체적 전개과정 속에서 형성되고 발전되어 갔다. 아울러 실학자의 이러한 사상전환은 기존 사상을 전적으로 부정하고 얻어진 단절의 결과가 아니라 그것을 비판적으로 수용함으로써 가능하였기 때문에, 조선 후기의 실학사상은 전통 성리학의 발전적 자기극복 과정에서 성장하고 발달하였던 것이다.
실학(역사적 의미와 연구의 전망)
실학사상이 가지고 있는 역사적 의미를 규정하는 데에도 오늘의 연구자들은 완전한 합의에 이르지를 못하고 있다. 일부의 연구자들은 실학사상이 조선 후기의 사회경제적 발전을 이끌었고, 각종 제도의 개혁을 가능케 해줌으로서 조선 후기의 발전에 적극 기여했음을 강조했다.
또한 이 사상은 조선 후기의 민중을 대변하는 사상으로서 민생의 안정과 발전을 위해서도 기여했고, 개항기에 이르러서는 개화사상의 형성에 원인으로 작용했으며 동학농민전쟁기 사회개혁사상의 배경이 되었음을 주장하고 있다.
이와 같이 실학사상을 긍정적으로 보아 왔던 견해에 대하여 최근에 이르러서는 그 긍정 일변도의 평가에 대한 신중론이 대두되고 있다.
그리하여 당시의 사회와 실학자 개개인의 제약성으로 말미암아 실학 사상은 조선 후기 사회에 있어서 본격적 변혁이념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거나 사회의 변혁을 도출해 낸 데에는 이르지 못했음을 지적하기도 한다.
사실 당시의 실학자들은 자신의 현실개혁안을 정부 당국에 제시하여 이를 관철시킬 수 있는 통로와 능력을 가지지 못했다.
그리고 자신의 견해를 조정이나 사회의 공론으로 만들기 위한 적극적 노력을 전개하지도 아니했다. 또한 그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이론을 확대 재생산하기 위한 구체적 노력을 전개하지도 아니했다. 나아가서 19세기 중엽 이후 실학사상은 그 사회개혁적 의지가 약화되는 현상을 드러내었다.
한편, 실학사상과 개화사상의 관계에 있어서도 이 양자를 직결시키는 것은 오히려 개화사상의 근대적 측면을 매몰시키는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견해가 제시되기도 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실학에는 그 한계성이 적지 아니하게 발견된다. 이 때문에 실학의 역사적 기능을 재평가하려는 기운이 오늘의 연구자에게서는 나타나고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실학사상은 당시 지배층의 성리학과는 구별되는 사상으로서 조선 후기의 사회에서 몇 가지 긍정적 기능을 발휘했다.
즉 실학사상은 조선 후기의 지식인들이 당시 동양의 사상계를 지배하던 일종의 중세적 보편주의를 극복하고 조선의 역사와 문화가 가지고 있는 개별성과 고유한 가치를 발견하는 데에 이바지했다. 그리고 조선의 전통과 현실에 관한 연구를 촉진시켜 주었다.
이러한 발견과 인식은 분명 민족적 자각의 강화와 관계되는 현상이며, 조선의 학문적 전통을 올바로 세우려던 그들의 노력은 긍정적 평가를 받을 수 있다.
또한 실학사상은 비록 범유학적 개혁사상으로서의 한계가 있다 하더라도 당시 사회가 가지고 있는 제반 모순에 대한 그침 없는 성찰의 결과를 나타낸다. 그들은 토지제도 및 군역제도의 개혁과 환곡 수취과정에서의 문제점을 바로 잡고자 했다.
또한 그들은 노비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등 당시 사회의 신분제에 대해서도 개선의 방안을 찾고자 했다. 그들의 이러한 성찰이 비록 현실적 개혁으로까지 직결되지는 못했다 하더라도, 그들이 조선 후기 사회의 문제점을 발견하고 드러내는 것은 개혁을 향한 여론의 조성에 있어서 기초가 되는 일이었다.
그러므로 비록 실학사상이 적극적인 측면에서 현실 개혁을 직접 유도해 내지는 못했다 하더라도, 또 다른 측면에서 실학자들이 수행한 그 현실 개선의 필요성을 강조해 준 역할만은 긍정적으로 평가 해야 할 것이다.
한편 실학사상은 조선의 중세철학을 대변하는 성리학을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을 통해서 조선 후기의 사람들이 객관적 자연관과 평등한 인간관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을 주고 있었다.
즉 실학사상은 당시의 조선인들에게 새로운 사유형태를 일깨워 주었다. 이 점에서도 실학이 또 달리 발휘하고 있었던 긍정적 기능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긍정적 기능을 감안할 때 실학사상에 관해서는 좀더 깊은 연구가 우리에게는 계속 요청되고 있다.
조선 후기의 실학사상에 관한 연구를 위해서는 몇 가지의 과제가 확인되어야 한다. 우선 실학사상은 조선 후기 전체 사상사의 맥락에서 연구되어야 한다.
조선 후기 사상계에서는 정학(正學)이라고 불리던 성리학이 지배층의 이익을 대변하면서 여전히 강세를 드러내고 있었다. 그리고 탈성리학적 개혁사상인 실학(實學)이 새롭게 대두되고 있었다.
이와 동시에 사학(邪學)으로 지칭되던 각종 종교사상들이 병존하고 있었다. 이들 다양한 사상들은 당시의 사회에서 각자 고유한 기능을 발휘하고 있었다고 생각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조선 후기의 사상을 논할 때에는 당시 존재하던 다양한 사상들의 특성을 주목하고 각 사상이 가지고 있는 상호관계를 밝혀 나가야 한다.
즉, 우리가 실학을 연구할 때에는 성리학이나 ”사학‘(邪學)과 실학의 상호 관계를 밝혀야 실학의 특성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우리는 실학자 자신의 사상이 당대에는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어떻게 인식 평가되고 있었는가를 좀더 명확히 밝혀야 한다.
실학사상에 대한 당대의 평가 여하에 관심을 갖지 않거나 그 역사적 사회적 기능을 도외시한 채 오늘날의 시각에서만 그것을 규정하고 긍정적으로 평가해 줄 수는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학이 가지고 있는 철학적 구조에 대한 인식을 심화시켜 나가야 한다.
그들이 제시한 현실 개혁안의 철학적 기초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함으로서 그 개혁안의 역사적 의미와 기능을 올바로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실학과 근대사상 내지는 개화사상과의 관계 여부에 관해서도 좀더 철저한 연구가 요구된다.
이와 같은 측면에서 실학연구가 더욱 계속된다면 우리는 조선 후기의 사상계가 가지고 있는 특성을 좀더 잘 알 수 있을 것임에 틀림이 없다.

키워드

실학사상,   정치,   실학,   조선후기,   조선,   실학자,   개항
  • 가격2,300
  • 페이지수14페이지
  • 등록일2007.11.28
  • 저작시기2007.11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439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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