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의 장례문화에 대한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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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 론

Ⅱ. 본 론
1. 장례의식의 의미
2. 기독교 전통에서의 죽음 이해
3. 장묘(葬墓)에 대한 기독교의 관습과 전통
4. 서양의 장례 문화
1) 이탈리아의 장례 문화
① 기독교 이전의 민간장례풍속
가. 임종 직전
나. 임종
다. 곡비(prefiche attittadoras)의 존재
라. 장례 음식
마. 상중애도
② 기독교 전파 이후의 장례문화
가. 절차
나. 매장
③ 현대적 장례문화
④ 이탈리아 묘지의 특이성
가. 실내묘소(모셜리움)의 발달
나. 예술성이 담긴 묘지
2) 폴란드의 장례문화
① 폴란드의 전통적인 장례식
가. 편안하게 망자를 보내기 위한 풍습들
나. 이승과 저승을 분리하여 망자로 하여금 이승으로
돌아오지 못하게 하는 풍습
다. 매장
라. 조상숭배의 풍습
② 민간 종교와 가톨릭과의 융합에 의한 현대 폴란드의 장례문화
③ 폴란드 장례문화의 특징
3) 러시아의 장례문화
① 슬라브인의 전통적인 장례의식과 그리스정교의 전파
② 16세기 그리스정교 도입 이후 기독교적인 장례의식
③ 소비에트로 인한 장례의식의 변화
④ 현대의 그리스 정교의 장례의식

Ⅲ. 결 론

Ⅳ. 참고문헌

본문내용

작되기 전에 그들이 고인을 방문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이다. 첫 번째 통곡을 시작하면서 죽음을 확인하는 절차를 거친 후 수의를 입히고, 긴 의자 위에 짚을 깔고 머리를 '크라스느이 우골(성스러운 구석)'을 향하게 하고 시신을 놓아둔다. 묘지에 관속의 시신을 안치할 때는 머리가 서쪽을 향하고 발이 동쪽을 향하게 하며 발치에 십자가를 둔다.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이하지 않은 사람들(자살, 술에 취하여 죽은 사람, 객사, 횡사, 익사자)에게는 그리스정교의 교리에 따라 전통적인 장례의식을 따르지 않는다. 이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은 죄악으로 생각했으며, 심지어 자살자들은 묘지에 묻힐 수도 없었다. 상게서, p295-296
③ 소비에트로 인한 장례의식의 변화
1905년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면서 이전의 교회의식은 완전히 배제되기 시작하였다. 즉, 소비에트사회는 기본적으로 무신론적 이념이기 때문에 그리스 정교의 활동을 제한했고, 이에 따라 장례의식도 변하게 되었다.
장례의식의 변화를 야기한 또 하나의 원인은 20세기의 세계사적인 흐름에서였다. 도시의 성장으로 고대 묘지의 보존이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 대표적인 이유이다.
그리하여 그리스 정교이후 러시아의 전통적인 매장의식과는 배치되는 화장터가 1921년에 건설된다. 또한 고인에 대한 추모를 경시하는 풍조가 만연하게 되었다. 교회에 대한 멸시는 순환적으로 무덤에 대한 멸시로 이어진 것이다.
④ 현대의 그리스 정교의 장례의식
고르바초프의 개방정책(글라스노스트)으로 종교의 자유가 인정되고 이후 소련의 붕괴되면서 장례의식에는 다시 기독교적인 요소가 중심을 이룬다. 결국 오늘날까지 장례는 교회에서 행해진다. 이전의 소비에트적 요소의 영향으로 현대 그리스 정교의 장례의식에는 시민법회, 종교 오케스트라 음악을 포함한다. 상게서, p299
장례절차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교회에서 장례식이 거행된 후 시신은 묘지로 옮겨진다. 고인을 위해 기도하며 신자들은 고인과 작별을 하며 장례참석자들은 고인이 세상을 떠났다는 표시로 손에 불붙은 양초를 들고 있다. 고인이 죽은 뒤 3, 9, 40일에 기제사를 지내게 된다. 19세기까지만 해도 교회에서 축하하는 기독교와연관된 축제일 이외에 조상의 명복을 비는 라두니차(부활제후 제1주째에 지냄), 루쌀리(고대 슬라브인의 死者추도제), 쎄미크(부활절후 제7주째의 목요일에 행해지는 민간제사)같은 추도행사가 거행되었지만 소비에트 시기에는 더 이상 조상공양의 날을 지키지 않았다. 조성현, 『러시아의 전통적인 탄생, 결혼, 장례풍속에 관한 소고』 (소련선교회)
http://cafe.daum.net/fullsos (검색일: 2006. 11. 28)
<크렘린 궁을 지키는 병사와
무명용사를 기리는 꺼지지 않는 횃불-오른 하단>
이후 공산주의의 개방정책 이후 국가차원의 추모의 날을 대독승전기념일인 5월 9일을 국경일로 정하여 추모하고 있다. 모든 묘지에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전몰한 무명용사의 무덤이 함께 조성되어 있고 그 앞에는 "영원한 횃불"이라 하여 불이 항상 꺼지지 않는 장치와 형형색색의 화환이 진열되어 있다. 관청 부설 결혼예식장에서 예식을 올린 신랑, 신부는 반드시 이 무명용사묘를 참배하는 것이 관례로 되어있다.
이러한 역사의 굴곡속에서도 고대의 전통적인 모습이 현재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것이 있다. 죽은 영혼의 마법적 힘에 대한 믿음, 관에 고인의 물건을 넣는 행위, 사람이 죽은 지 40일 동안 죽은 영혼은 집을 방문한다는 믿음이 유지되고 있다. 상게서, p299
Ⅲ. 결론
인류의 탄생은 고대시대부터 시작되지만 동시에 인류의 죽음의 역사도 동시에 출발한 셈이다. 죽음의 존재를 알고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 한편으로는 인지능력이 뛰어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우스꽝스럽기도 한 것이 우리들이다. 하지만 죽음이 가지는 의미는 인류사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즉, 죽음은 인류사에서 매우 중요시되어 왔고 그에 따른 장례문화 역시 각국의 고유한 풍습과 전통 등에 의해서 발전해 왔다.
서양은 기독교문화가 가장 발달해 있는 곳이기에 장례문화에도 그대로 베어 있다. 앞에서 살펴본 이탈리아, 폴란드, 러시아의 경우를 보더라도 전통적인 민간풍습이 기독교의 도입 이후 점차 변모해나감을 알 수 있다. 큰 틀은 기독교문화아래에서 장례문화가 형성되었지만 민중들의 집단무의식속에 존재하고 있던 고대의 민간문화도 그 안에 녹아들어있음을 살펴보았다.
덧붙여, 전반적인 장묘의 변화는 매장에서 화장으로의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다. 즉, 절대적인 기독교 교리의 영향아래 매장이 중심이었지만 토지의 부족, 위생상의 문제 등의 이유로 정부와 민간이 모두 공통된 인식하에 종교적 신념에 어긋나지 않는 범위 안에서 화장으로 변모하고 있는 셈이다.
Ⅳ. 참고문헌
장동일, “기독교 장례문화 정립을 위한 연구”,(나사렛대학교 신학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0)
김광교, “기독교 장례문화 분석과 개선방안”, (목원대학교 신학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4)
김차영, “기독교 장례 문화에 대한 고찰”, (안양대 신학대학원 석사논문, 2000)
김정하, 「세계의 장례문화, 상실의 슬픔을 삶의 희망으로 극복하는 이탈리아의 장례문화」(한국외국어대학교 출판부, 2006)
박미령,『세계의 장례문화- 러시아인의 죽음에 대한 인식과 태도』(한국외국어대학교 출판부, 2006)
박태호, 「세계묘지 문화기행」(서해문집, 2005)
최성은, 「세계의 장례문화, 폴란드의 장례문화」(한국외국어대학교 출판부, 2006)
조성현,「러시아의 전통적인 탄생, 결혼, 장례풍속에 관한 소고」 (소련선교회), http://cafe.daum.net/fullsos
부산 광역시 시설관리공단
http://www.yeongnakpark.or.kr/cms/default.asp?menu_no=1980&p_no=1951
<참고자료>
카타콤베- http://www.kappatour.com/romavedere4.htm
이탈리아 관련 그림파일 - http://blog.naver.com/angelio92
러시아 관련 그림파일 - http://cafe.daum.net/CatholicInRus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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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7.12.29
  • 저작시기200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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