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대의 미술(북송과 남송의 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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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당대의 시대적 배경

Ⅱ. 북송과 남송 회화의 비교

Ⅲ. 북송의 회화
1. 화원 회화
(1) 산수화
(2) 화조화
2. 재야 회화
(1) 산수화
(2) 도석인물화
(3) 화조화

Ⅳ. 남송의 회화
1. 화원화
(1) 산수화
(2) 도석인물화
(3) 화조화
2. 재야회화
(1) 수묵화
(2) 화조화
(3) 산수화

Ⅴ. 맺음말

Ⅵ. 참고자료

본문내용

산수화라는 수묵화의 한 기본형식을 이루는 것은 묘선이었고 묘선이 전화한 준이었다. 斧劈준은 다만 산모양과 암석, 흙언덕을 살부침하고 명암을 주는 것만이 아니라 필력의 웅장한 위력까지도 나타내는 것이었다. 마원 하규를 계승하는 그 후의 원체산수화가 표현의 엄정성을 약화시켜 한 유형에 빠지면서도 지킨 것은 묘선이었다. 그러나 묘선의 본질적인 의미는 이미 사라지고 그 외형만을 지켜나갔던 것이 원대의 원체계산수화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2) 도석인물화
남송의 인물화가들은 종전부터 전해오던 화법을 답습하면서 날로 간솔하여지다가 수묵으로 전향하였고 粗畢 또는 簡筆化하였다. 남송의 인물화는 한마디로 말해서 쇠퇴하였다
남송의 인물화가 역시 선종에서 더 많이 부흥되었다. 선종승 노--이 창시한 「罔兩畵法」은 이공녹의 백묘도석화 보다 훨씬 자유로운 수묵기법이다. 또 양개의 간필묘사법 도석인물화는 매사고를 매개로 하여 이공록과 관련되어 있다. 그 결과로 남송의 도석인물화는 기법상 奔放하게 변화되어 왔으며 더욱 묵희 성격과 접근한 작품이 나왔다. 양개는 화원 출신의 화가지만 선승들과 두터운 교우 관계가 있는 작가였다. 이로써 보면 남송 및 원대의 도석인물화가들은 선적이 있던 없던 간에 모두 선종의 사상과 관념에 강력한 지배를 받았다. 이와같은 도석인물화의 특성을 가장 잘 발휘한 사람이 원승 인니라이다. 그의 회화 기법에는 허식이 제거되고 강력한 화가의 의지가 노출되어 있었다.
도석화는 백묘화파 이외에 수묵도석화의 수묵기법을 위주로 하는 적극화파가 있었다. 그것은 목계를 대표로 하는 육통사파이다. 목계는 수묵도석화에 능할 뿐 아니라 수묵산수화에도 능하여 송대 일품화의 제일인자라고 할 수 있다. 목계는 그림을 그릴때 시각성을 매우 충실히 하였다. 목계의 대표작으로는 『관음원학도』가 있는데 이 작품속에서 각종 수묵기법을 볼 수 있다. 뛰어난 기교라고는 할 수 없지만 주제의 표현은 매우 충실하게 하였다. 목계화의 지지자들은 대부분 선종 계통에 있었다. 그러나 목계의 화풍은 오히려 선종의 묵희와 백묘파의 도석화풍을 초월하였다. 그리고 이공록 이전의 도석화를 발전시켰다. 목계의 산수화 역시 북송의 풍격이었다. 목계의 회화예술은 선종사상보다 우월하였고 그 영향은 원대의 인니라 작품 속에서 정돈된 목계의 회화요소를 볼 수 있다.
(3) 화조화
북송 징종조 吳元瑜에 의해 주도되고 완성된 제2차 화원체화라고 칭할 수 있는 화조화에 의해 시도된 色彩本位의 황씨체와 몰골법의 서씨체와의 융합조화는 선묘중심에서 색채의 暈染 에 의한 표현으로 옮겨진 새로운 화조화였다. 그러나 남송 화원에서는 그러한 색채본위의 화조화는 다시 전통적인 線描主義로 대치되는 경향으로 바뀌어서 시대가 흐를수록 선묘는 강화되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황전을 스승으로 모시고 혹은 서희양식의 영향을 받아 몰골사용을 주장하는 일파와 趙昌화풍의 계승자 등 몇 화풍으로 유별할 만 한 것도 있었다. 다만 원체화조화의 전반적인 특색은 세련된 描體와 色彩, 특히 색채의 미와 색조가 정비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철저하게 사실성이 추구되었다는 점과 여기에는 시적인 정취도 혼입시키고 장식적인 효과도 풍부하였다는 점이 특색이다.
2. 재야회화
(1) 수묵화
이상주의를 표방한 재야의 수묵화단은 화원 이상의 큰 발전을 하였다. 주로 사대부, 문인, 선승, 도사 등의 餘技的 화가에 의해 성황을 이룬 것이지만 그들은 뛰어난 수묵 기법을 완전히 소화하고 있는 점에서 餘技것으로 평가된다. 이 이상주의는 화원에 흘러가 많은 영향을 주었다.
(2) 화조화
먼저 세한삼우와 사군자를 묵일색으로 그림으로써 사대부와 문인의 고결한 인격을 나타내는 기운이 조성되었다. 묵죽은 북송의 문동, 소철의 화풍의 영향이 많았다. 화가로는 양무구로 그는 북송의 화광중인이 창조한 묵매도를 하층 형식적으로 정비한 화가이다. 송말 이래 그를 모방한 묵매가 많았던 것으로 보아 그의 영향력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다음으로 정사초를 들 수 있다. 그의 「난도」는 그의 전칭으로 전하고 있으나 원대 작품이다. 그밖에 같은 계통의 것이 워싱턴에도 있다. 초맹견은 구선에 능하였다.
위의 정사초와 더불어 송말부터 원대에 걸쳐 활약한 사대부 화가로서 남송 멸망을 계기로 묵란과 더불어 수선에 커다란 의의가 가해졌다. 엄동설화를 견디는 묵죽묵란 등의 모습에 권문에 아부하지 않고 고난을 견디어 가는 청렴한 화가 자신을 투영시킨 것이다. 조국 멸망의 비통한 심정을 화필에 의존했던 작화의 태도는 섬세한 기법의 습득보다 가지와 잎을 단숨에 그리는 종일적인 화풍을 선택하고 그 기백을 추구했던 것이었다. 송말에서 원대에 걸친 이상주의 수묵화의 주된 형식은 그러한 방자한 화풍과 결부시킴으로써 더욱 진전해 나간 것이다.
(3) 산수화
목계는 『소호팔경도권』의 단간으로 불리우는 『어촌석조도』, 『연사만종도』 의 작가로 전해지고 있다. 소호팔경은 강남의 습윤한 자연을 평원산수형식으로 그린 것이며 특히 빛과 그림자 즉 시간의 추이에 따라 변화하는 자연의 경관을 명암 표현으로 묘사한 점이 특색이다. 위의 작품에 보이는 것도 수묵은 교묘히 사용되었으며 묵조는 아름답고 여백은 충분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습윤의 대기, 광음과 명암의 표현 등에는 헛점이 없다. 이 점은 남송 말 원초에 나타난 여기적 작가에 의한 이상주의적 수묵산수화의 한 전형이며 또 동양산수화를 대표하는 명작으로 손꼽힌다.
Ⅴ. 맺음말
송대의 회화는 참으로 복잡하다. 즉 畵論上으로는 寫意와 寫實의 구별이 있었고, 화법상으로 수묵산수화의 高揚과 沈滯가 있었으며, 화가에 있어서는 화원, 문인, 사대부, 禪餘畵家 들의 구별이 있어 이와 같은 각 畵派들이 高低와 沈滯의 정황으로 묘사형식의 작품을 생산하였다. 더욱이 명대 이후의 작품은 그 양식과 필법이 모두 이 송대에 기원을 두고 있어서 중국 회화의 조형이념은 이후부터 진보되지 못 하였다. 그러나 중국 繪畵史上 송대의 회화는 중요한 작용을 한만큼 높이 평가되고, 또 질적으로 탁월한 것이 많았다.
Ⅵ. 참고자료
J.캐힐, 중국회화사, 열화당 미술전서
한 당 오대 송의 회화, 동양의 명화, 삼성 출판사
김청강, 동양미술사, 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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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8.01.10
  • 저작시기200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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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4466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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