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습의 문학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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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들어가는 말

1. 김시습의 생애

2. 김시습의 사상과 문학(금오신화)

3. 김시습의 문학관과 작품

본문내용

집』 권14
겨울밤의 산속 풍경이 잘 제시되어 있는 시이다. 고드름이 맺힌 차가운 겨울밤에 달이 환히 비치니 적막한 산중에서 더욱 그 수심을 못 이겨 하며 시주(詩酒)를 벗삼는 김시습의 모습이 연상된다. 술을 마시면 수심은 이내 사라지니 백년 동안 언제나 취해 있길 원하나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므로 그 다음은 시로서 자신의 울분을 토로할 수밖에 없다. 아무도 대꾸해 줄 사람이 없는 산림간이기 때문에 말은 해야 소용없으며, 세계를 일방적으로 자아화(自我化)할 수 있는 시야말로 독특한 표현 양식을 빌어 그의 갈등과 울분을 다소라도 해소할 수 있었던 것이다. 시 없으면 말로는 잘할 수 없다고 한 바와 같이, 그에게 있어서 시는 말을 대신하여 자기를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며 대의를 실천하는 길이었다.
또, 그는 시를 통해 현실의 불합리와 모순에 대한 울분과 저항, 그리고 진정한 자아를 표현함으로써 그의 정신적 가치를 실현하려고 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현실에 대한 폭발적인 감정의 분출을 거의 여과없이 시화함으로써 결국 현실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문학정신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대응의 문학관은 김시습에 대한 후대인의 평가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자는 “스스로 이름남이 너무 일렀고 성격 또한 우활(迂闊)하여 시대의 형편에 용납하기 어려웠던 까닭으로 멋대로 미친 듯이 농담과 익살을 부려 가며 시속을 조롱하기를 낙으로 삼았다.” 이자 <매월당집서>
고 하였다. 여기서 “성격이 우활하여 시대의 형편에 용납되기 어려웠다.”고 함은 그의 현실에 대한 인식이 당세의 보편적인 흐름과 재도적(載道的) 문학관에서 볼 때 용납되기 어려운 경향을 띠고 있다는 지적으로 보인다. 또, “멋대로 미친 듯이 농담과 익살을 부려 가며 시속을 조롱하기를 낙으로 삼았다.”는 것은 이자가 불합리와 모순에 저항한 김시습의 대의실천의 정신을 표현한 말로서, 그의 현실대응의 문학관을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산해는 김시습을 평가하기를, “그가 혹 근심하고 비분강개하는 극치와 활활 돌고 높게 풍친 가슴속을 무엇으로 시원하게 할 수 없으면 반드시 시문에다 발산하여 붓 가는 대로 휘둘렀다.” 이산해, <매월당집서>
라고 하였다. 이것은 그가 현실에 불만을 품은 실천지성으로서 모든 갈등과 울분을 시를 통해 분출시키며 이를 해소하고자 하였음을 지적한 것이다. 또, 불의의 현실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자 한 그의 문학관에 대한 지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자도 <매월당집서>에서,
그가 옛 서울을 유람할 때에는 반드시 서성거리고 주춤거리며 비분강개해서 노래 부르며 여러 달씩 돌아가기를 잊었다. 오늘 일에 마음 상하고 옛일을 슬퍼하는 것을 본다면 수택장(數宅藏)이나 점귀부(點鬼簿) 따위의 시인이 해낼 수 있는 바가 아니어서 내가 그 사람됨을 매우 기이하게 여겼으나, 언론이나 풍채가 막연하여 찾을 길이 없었다. 이자, <매월당집서>
라고 하였다. 김시습이 역사의 현장에서 느끼는 비분강개를 시문으로 표현하였고 오늘의 일에 상심하고 옛일을 슬퍼하는 강한 현실비판 의식을 지적하였다. 이것도 그가 바로 불의의 현실에 대응한 문학관에 초점이 맞추어진 평가임은 물론이다. 이처럼, 후인들의 김시습에 대한 평가도 현실의 불합리와 모순에 적극적으로 저항하는 현실대응의 관점에서도 논의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김시습은 유년기부터 영민한 천질(天質)을 바탕으로 수학에 전념하였으나, 자신의 고고한 꿈이 부당하게 무너지는 것을 감지한 순간 스스로 방외인(方外人)임을 공언하며 국토 편력에 들었다. 이처럼, 그의 한과 분노는 현실을 등지고 국토를 편력하며 인생을 보낼 정도로 심각한 것이었으므로 세상의 모든 불합리와 모순들은 물론, 인사의 모든 것들도 도덕적 합리성과 대의실천의 입장에서 곧바로 규범을 무시한 표현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러므로 그가 한평생 수천의 시를 남긴 것은 천부적인 시적 재질도 있었겠지만 무엇보다도 방외적 삶의 현실을 통해 인식하게 된 당세의 불합리와 각종 모순에 대항한 현실대응의 산물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그의 문학의 성격도 관인문학이나 사림문학과는 판이한 성향을 지니게 되었음은 물론이다. 여기에는 그의 현실대응의 문학관이 바탕을 이루고 있음은 물론이다.
이상에서 김시습의 문학관을 살펴보았는데, 그것은 자득과 현묘, 감동과 세교, 현실대응의 문학관으로 요약될 수 있다. 먼저, 그는 시란 천기(天機)의 자연적이 노출이기 때문에 억지로 힘써서 되는 것이 아니라 자득적 천부적인 것이며, 이러한 성정의 자연스러운 유로(流露)로서 생각과 운치가 고원한 현묘의 시경(詩境)을 구현하는 데에 그의 시의 궁극적인 목표를 두고 있다. 또, 그는 실어(實語), 일관(一貫), 간성(懇誠), 발월(發越)을 갖춘 문학을 통해 독자의 감동을 강조하고 있으며, 이러한 감동을 통해서 대의실천적인 세교에 이바지하고자 하였다. 이것들은 결국 현실대응의 문학관을 바탕으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내면 중시의 문학관은 관인문학의 기교연마나 사림문학의 심성수양과는 달리, 시의 체재(體裁)와 기교(奇巧)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반면, 세교를 위해서는 독자의 깊은 감동을 중시하여 괴이하고 허탄한 것까지도 긍정적으로 수용하는 독특한 면모를 보이고 있다.
특히, 김시습의 시문학 정신은 체재와 기교, 그리고 성률(聲律) 등의 외면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반면, 내용을 보다 중시하는 시정신을 당시대의 그 누구보다도 앞장서 실천하였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이것은 구구한 격(格)과 율(律)을 배제하고 조선 사람으로서 조선시를 지어야 한다는 후대 정다산의 주체적 시의식과 상통하는 일면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결국, 그는 격(格)과 율(律)의 중국적인 작시법에 맹종하여 앵무새와 같은 흉내를 내는 시정신을 극복하고 주체적이고 개체적인 시인의 내면성을 다지는 시문학 정신의 일단을 실천하고 있었던 것이다.
◎ 참고문헌
1. <김시습의 시문학 연구> 충북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국문학 전공 김연세. 1994
2. <고전문학의 향기를 찾아서> 정병헌이지영. 2006
3. <김시습의 시문학 연구> 김연수. 1994
4. <김시습 평전> 심경호.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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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8.06.16
  • 저작시기200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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