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과 다윈의 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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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서론
1.1 연구방향과 목적
1.2 기본개념

2. 중도 이론
2.1 유신론적 진화론
2.2 지적 설계론

3. 중도 이론 비판과 그에 대한 반박
3.1 유신론적 진화론 비판과 반박
3.2 지적 설계론 비판과 반박

4. 중도 이론의 의의와 조화를 위한 모색

5.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않는다는 비판은 어느정도 사실이다. 그러나 지적 설계론이 애초 시작된 것이 법학을 전공한 논리의 전문가의 글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상기한다면 진화론의 그러한 비판은 지적 설계론의 본질을 잘못 이해한 것이다. 지적 설계론은 결국 새로운 접근법으로 진화론의 발전을 도모하는 것이다.
“진화론은 지금도 새로운 증거들이 발견되면서 검증이 진행되는 하나의 이론이지 사실이 아닙니다. 증거가 부족하기 때문에 진화론은 많은 허점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하이오 주 교육위원회 '지적 설계론의 교육 과정 포함'법안 통과 때의 판결문 중
두 번째로 진화론자들이 지적 설계론에 대해 비판하는 것은 바로 ‘지적 설계자’에 대한 정의 문제이다. 진화론자들은 ‘지적 설계자’를 성격적 창조론에서 말하는 ‘신’의 의미를 다르게 표현하는 것뿐이라고 이야기한다. 다시 말하면, 지적 설계론은 유신론적 창조론의 ‘신’의 자리를 다른 이름을 빌어 바꾸어 버린 것뿐이라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사실 지적 설계론의 출발은 앞서 말했듯 ‘신’의 존재를 전제하고 진화론의 이론을 받아들인 유신론적 창조론과는 다르다. 물론 지적 설계론자들 중에서는 지적 설계자의 존재를 신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다. 한편으로는 그것을 지구에서 사는 인간의 지식수준을 뛰어넘는 다른 행성의 생명체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지적 설계자에 대한 명확한 정의를 내리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이것은 지적 설계론이 정확하게 지적 설계자가 ‘무엇’인지를 그들의 가장 중요한 주제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결론을 말하자면 진화론의 두 번째 비판에 대해서도 같은 반론을 펼칠 수가 있다. 지적 설계론은 진화론의 논리적 한계에 새로운 시각을 가져온 것뿐이지 진화론을 ‘신’이라는 존재를 전제로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진화론자들은 그들의 논리에 내재된 어쩔 수 없는 빈틈을 인정해야 한다. 그것이 새로운 증거를 찾아내고 그 증거가 진화론의 증거로 확실하다는 결론이 나올 때까지는 이 빈틈은 메워질 수 없다. 창조론자들이 그렇듯 내가 있음에 저들은 있을 수 없다는 흑백 논리적 사고를 버려야한다. “진화론은 일종의 종교이다.”라고 주장한 마이클 루즈의 생각은 옳다. 아직 완전한 정답을 가지고 있지 않은 채 그것만을 고집하는 것은 일종의 믿음이다. 그리고 한편으로 설사 지적 설계자들이 신을 가정하고 있다손 치더라도, 신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진화론에 대한 완전한 근거와 논리를 갖추고 있지 못한 지금으로서는 인간의 정신적, 문화적 측면에서 인류에게 있어 매우 중요한 ‘종교’에 대한 무차별적인 공격일 뿐이다. 이것은 창조론자들의 진화론에 대한, 중도 이론에 대한 비판과 다를 바가 없다.
4.중도 이론의 의의와 조화를 위한 모색
그렇다면 중도 이론은 우리에게 있어 어떠한 의미를 갖는가? 그 의미는 우리에게 중도 이론이 왜 필요한지에 대하여 말해준다. 앞에서 본 바와 같이 진화론과 창조론의 첨예한 대립속에서 중도 이론은 그 대안으로 나왔다. 이것은 결코 섞일 수 없을 것과 같던 두 이론의 ‘양보’를 의미한다. 중요한 것은, 지금으로서는 어느 누구도 창조론이 옳다, 진화론이 옳다 판단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물론 창조론자들과 진화론자들은 서로의 생각이 옳다고 생각하지만.) 이 양보는 극단의 두 이론, 아니 믿음이 서로 융화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한쪽이 다른 쪽으로 눈을 돌릴 여유인 것이다. 그로 인한 양자의 발전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중세 이후로 지금까지 학계는 둘로 나뉘어 끝없는 혼란에 빠져있다. 우리에게 있어선 정신적인 측면과 물질적인 측면 모두 없어서는 안 될 보완적 관계이다. 극단적인 생각은 정신적 측면이나 물질적 측면 중 하나를 배제하려 든다. 그렇다면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 선행되어야 할 작업은 무엇인가. 중도 이론이 그 해답이다. 양자 상호 불간섭적 입장을 버려야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배타적인 이론이며 이율배반적이라는 인식부터 고쳐야 한다. 창조론이 종교적이고 정신적 측면이며 진화론은 자연과학적이며 물질적인 것임을 전제해야한다. 진화는 과학적이고 창조는 신앙의 ‘문제’라고 선을 그어버렸다. 인간에게는 두 가지 모두가 의미있고 필요한 것인데 이러한 생각은 인류역사에 대한 모순이다. 두 가지 측면은 융합이 되고 상호보완적인 것이 되어야지 서로를 배타적 존재로 인식해서는 안 된다. ‘유신론적 창조론이 기독신앙을 뿌리 채 흔들려는 과학의 종교침입이다.’ ‘지적 설계론은 과학을 위장한 신의 과학파괴이다.’ 라는 생각은 버려져야 하며 이러한 중도 이론에서 주장하듯 공통분모를 찾기 위해 조화를 시도해야한다.
5.결론
인간은 완전한 존재가 아니다. 이것은 진화론과 창조론 모두 전제하고 있는 것으로 어찌 생각하면 이 사실이 두 이론의 대립과 반목을 불러왔을 수도 있다. 필자는 중도 이론이 그 해결책이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이 글을 전개해왔다. 인간은 완전한 존재가 아니기에 아직 모르는 것이 아는 것보다 더욱 많이 남아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모자라는 부분을 자신과 다른 입장의 수용을 통해 채워가야 한다. 물론 중도 이론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창조론과 진화론 모두 한계를 지니고 있듯이 그 사이의 중도 이론이 가진 한계 역시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필자는 중도 이론이 진화론과 창조론 대립을 해결할 ‘답안지’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 답안지는 창조론을 믿는 사람, 진화론을 믿는 사람, 그리고 그 가운데에 서있는 사람들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풀어가야 할 문제이다. 단지 진화론과 창조론 양 진영은 중도 이론과 같은 열린 생각과 자세를 가지고 서로를 보충하는 조화적 관계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참고 문헌
1.정용재, 찰스 다윈, 서울: 믿음사, 1988
2.김학현, 다윈이 들려주는 진화론 이야기, 자음과모음사 2005
3.임원규, 창조 대 진화연구, 목원대 신학대학원 2002
4.필립 키처, 과학적 사기, 주성우 역, 이제이북스사, 2001
5.임번삼, 잃어버린 생명나무를 찾아서,
6.국민일보 2005-09-01
◎참고 사이트
http://blog.naver.com/fixonthelamb/800155547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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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2페이지
  • 등록일2008.11.30
  • 저작시기2008.11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4983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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