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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철][철기][철기시대][철 기원][철 제조][철기의 보급][철기시대의 주거지][철기시대의 토기][철기시대의 미술]철의 기원과 제조, 철기의 보급, 철기시대의 주거지, 철기시대의 토기, 철기시대의 미술(철, 철기시대)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철의 기원과 제조
1. 철의 기원
2. 철의 제조
1) 운철설(隕鐵說)
2) 채광착오설(採鑛錯誤說)
3) 산불설(山火說)

Ⅱ. 철기의 보급
1. 철기 보급
2. 철제 농기구의 발달

Ⅲ. 철기시대의 주거지
1. 양주 수석리유적
2. 보령 교성리유적
3. 보령 진죽리유적
4. 보령 관창리유적
5. 대전 궁동유적
6. 김해 대청유적
7. 제주 삼양동유적
8. 삼천포 늑도유적

Ⅳ. 철기시대의 토기
1. 경질무문토기
2. 회백색연질토기(와질토기)와 무문양의 타날문토기
3. 타날문토기의 형성과정과 성격
4. 기타 문제

Ⅴ. 철기시대의 미술
1. 삼한시대의 장신구
2. 독무덤
3. 널무덤
4. 말형 호랑이형 대구
5. 동예 군장의 도장 / 낙랑 금제 장신구

참고문헌

본문내용

토되고 있다(최성락 2002:97). 영광 군동유적이나 함평 순촌유적에서는 회색연질토기와 함께 적갈색연질토기에서도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서울 풍납토성(국립문화재연구소 2001)에서도 타날문토기와 함께 회색 혹은 적갈색의 무문양 토기가 공존하고 있다.
따라서 전형적인 와질토기가 출토되지 아니한 지역에서는 회색연질토기와 적갈색연질토기가 무문양의 타날문토기 단계를 거쳐 완전한 타날문토기가 만들어졌을 것으로 보는 것이 토기의 변화에 대한 적절한 해석일 것이다. 따라서 회색연질토기를 무조건 와질토기로 볼 것이 아니라 무문양의 타날문토기가 영남지역의 와질토기와 같은 단계로 인식하여야 할 것이다.
3. 타날문토기의 형성과정과 성격
타날문토기란 토기 제작과정에서 타날기법을 이용한 토기로 종래 김해식토기로 불리어졌으나 이를 대신하여 토기명칭으로 사용된 것이다(최성락 1987). 타날기법에 대한 연구는 최근 많이 이루어졌으나 이를 어떤 과정으로 채용되었을까 하는 문제는 여전히 논의의 대상에서 제외되고 있다. 이 문제는 타날기법이 중국이나 낙랑으로부터 전파되었다는 시각만으로 풀릴 수 없다고 본다.
남부지역의 경우, 토기의 제작기술이 발달되는 과정에서 타날기법이 채용되었다. 즉 청동기시대의 무문토기는 손으로 빗어 만든 토기이다. 기벽이 일정하지 못하고, 두터우며 경도도 높은 편이 아니다. 이후 토기의 경도를 높이고 기벽을 일정하게 하는 노력으로 빗질과 같은 정면수법을 사용하였고, 뒤이어 타날기법이 채용하였다. 이것은 당시 사회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하여 새로운 제도기술을 필요로 하였을 것이다.
따라서 타날문토기가 일시적으로 남부지역에 유입되었으며 중국이나 낙랑지역과 같은 방법으로 토기를 만들었다고 볼 수는 없다. 일부 토기의 제작기술이 유입된 것은 부정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이에 앞서 만들어진 경질무문토기와 경질찰문토기로부터 점차적으로 발전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4. 기타 문제
기타 문제로는 토기의 제작기술의 발전문제, 토기와 가마의 기원 문제 등이 있다. 먼저 토기의 제작기술의 발전문제이다.
Ⅴ. 철기시대의 미술
1. 삼한시대의 장신구
삼국지위서 동의전에는 한(韓)에서는 \"옥과 구슬을 재보(財寶)로 삼는데, 옷에 꿰매어 장식하기도 하고, 목에 매달거나 귀걸이로 장식한다. 그렇지만 금은이나 비단은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以珠爲財寶 或以綴衣爲飾 或以縣頸垂耳 不以金銀錦繡爲珍)\"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옥으로 장식하는 것은 청동기시대 이전부터 이미 계속되어 온 것이지만, 삼한시대의 가장 큰 특징으로는 유리구슬의 제작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전, 중기에 속하는 것으로는 당진 소소리와 부여 합송리에서 관옥(管玉)이, 다호리 1호 무덤에서는 소옥(小玉)이 출토된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삼한후기가 되면 구슬의 재질과 종류가 다양해진다. 재질은 유리와 수정, 마노, 호박, 활석 등이 있고, 형태는 곡옥, 다면옥, 관옥, 환옥, 소옥 등 다양하다. 이 중에서 수정, 마노, 호박 등은 후기에 들어서 처음으로 출현하는데, 주로 곡옥과 다면 옥으로 만들고 있다. 유리는 곡옥과 소옥이 만들어 졌는데, 시기가 지날수록 그 비중이 점차 증가한다. 삼한의 장신구는 삼국지위서 동이전의 기록과 같이 역시 옥과 구슬이 대부분이며, 목걸이, 귀걸이, 옷장식 등으로 사용되고 있고, 금은 제품은 전혀 출토되지 않는다.
2. 독무덤
독무덤은 크고 작은 항아리나 독을 2개 정도 맞붙여서 옆으로 눕힌 형식이다. 이 가운데에는 어른을 넣을 수 있을 만큼 큰 것도 있고, 어린이용이거나 세골장용인 작은 것도 있다.
3. 널무덤
무덤에서도 큰 변화가 일어나 신석기 시대의 고인돌, 돌널 무덤(석관묘) 등이 자취를 감추고 소형의 돌덧널무덤(석곽묘)과 덧널 무덤(토광목곽묘)이 출현하였고 북쪽에서는 돌무지 무덤(적석총)이 나타난다. 재래식 무덤 중에서 양식은 다소 변하였지만 널무덤(토광묘)과 독무덤(옹관묘)은 계속 나타난다. 경주 조양동의 낮은 구릉 위에 자리잡고 있는 조양동 유적에서 원삼국 시대의 널무덤과 덧널 무덤이 많이 발견되었다. 널무덤은 타원형과 장방형의 두 가지로서 각종 철제 무기를 비롯하여 청동 거울이 출토되고, 토기로는 검은 간토기, 민무늬 토기, 와질 토기 등이 나왔다. 덧널 무덤은 소형과 대형으로 구분되는데, 간단한 꾸미개를 부착시킨 시체를 나무널에 넣고 둘레에 많은 토기와 철기를 묻었다. 이러한 조양동의 무덤군은 문헌상 삼한 시대에 해당하는 유적으로 초기 철기 시대의 널무덤의 전통을 이어받아 신라의 돌무지덧널 무덤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의 성격을 지녔다.
4. 말형 호랑이형 대구
말형 15.6cm 호랑이형 19cm 허리띠의 물림쇠 장식으로 말형대구는 말의 머리는 둥글게 만들었으며 배부분은 반쪽만 만들었다. 안쪽에 혁대를 연결시키는 돌대가 있다. 호랑이형은 호랑이가 앉아서 입을 벌리고 있는 모양을 하고 있다. 이러한 대구들은 남부지방에서 출토가 비교적 많은 편이나 이 유적의 대구는 실용품으로서는 다소 큰 느낌을 준다.
5. 동예 군장의 도장 / 낙랑 금제 장신구
낙랑의 금제 장신구는 금으로 용을 조각한 것으로 화려하고 정밀하다. 동예군장의 도장은 중국의 동진으로부터 받은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가 고조선을 멸망시킨 후 역대 중국왕조는 한반도내에 연합된 강력한 세력이 서지 못하도록 여러가지 이간책을 쓴다. 낙랑이나 부여와 같은 지역에 화려하고 향락적인 문화를 이식시키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었다. 또한 초기철기 단계의 소국들에게 중국황제가 인정하는 도장과 중국 문화를 주면서 경쟁적으로 중국에 충성하고 중국의 세력권 내에 묶어두려고 했다.
참고문헌
◎ 김양옥(1976), 한반도 철기시대토기의 연구, 백산학보20, 백산학회
◎ 김원용(1977), 철기문화, 한국사Ⅰ-한국의 선사문화, 국사편찬위원회
◎ 성낙준(1997), 철기시대 무덤, 한국사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국사편찬위원회
◎ 안재호(1989), 삼각형점토대토기의 성격과 연대, 늑도주거지, 부산대학교 박물관
◎ 최몽룡·이동령·신숙정(1997), 고고학과 자연과학 토기, 서울대학교 출판부
◎ 최병현(1999), 철기문화의 개념과 문제점, 박물관연보7, 목포대학교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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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9.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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