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신학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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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는다.
2. 주님에의 유혹과 우리 자신에의 유혹
이 사건의 중요성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는 주된 이유는, 이것으로부터 우리 자신의 유혹과의 유비를 찾아내려고 하는 경향과 습관에서 기인한다.
3. 우리 주님에의 유혹의 특별한 형태
이제 우리는 둘째로 그 유혹, 또는 시험이 어떤 특별한 형태를 가지고 있는가를 탐구해보아야 한다.
4. 주님에의 유혹에 대한 해석
위에서 말한 것들은 상투적인 ‘예수의 생애’, 또는 복음서 역사에 대한 흔한 도덕적인 변조물에서 흔히들 예수의 생에서의 이 위기를 좀 다르게 해석하는 것들과도 연관된다.
제19장 예수의 공생애에서의 계시
1. 그리스도의 계시적 기능의 여러 측면들
(1) 그리스도에 의한 계시의 네 분야
① 자연 안에서의 계시, 다른 말로 하면, 세상의 창조 때부터 무한히 계속되어 나가는 일반계시 ② 죄의 유전과 구속의 시작으로부터 성육신 때까지의 구약 경륜 하에서의 계시 ③ 주님의 탄생으로부터 그의 부활과 승천하기까지의 지상의 공적 사역동안의 하나님의 계시 ④ 그가 승천하신 뒤로부터 성신의 무오한 인도하심 아래서 되어진, 마지막 영감된 증인의 죽음에까지 미치는, 그의 선택된 종들을 통하여 그가 중재하셨던 계시
(2) 복음서에서의 예수의 계시적 사역
우리는 여기서 지상에서 수행되었고, 복음서에 묘사되고 기록되어 있는 예수의 계시사역의 마지막 언급 단계만을 특별히 살펴보기로 한다.
2. ‘발전’에 관한 문제
예수의 생애와 가르침에 고나한 현대적 논의를 살펴볼 때 사실 진리에 대한 주관적인 통찰력의 발전이 그에게 부과되어 있는 경우는 그가 오류로부터 그 오류를 제거하신 것으로 발전하셨다고 가정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역사나 비평의 문제와 같은 상대적으로 비교적 중요하지 않는 문제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3. 예수의 가르침의 방법
발전 가능성의 문제는 곧바로 ‘가르침의 방법’의 문제로 이끈다. 왜냐하면 다른 어떤 것에서보다 방법의 관점이 상황의 발전의 변화정도와 순응이 관찰될 수 있는 것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예수의 가르침의 방법은 분명히 특별한 성격을 띠고 있다. 한마디로 말하면 진리를 조직화하고 교의적으로 응집성 있는 진술의 특성이 있다.
(1) 직유와 은유 (2) 제한된 의미의 비유 (3) 특례의 비유 (4) ‘풍유적’인 방법 (5) 비유적 가르침의 철학 (6) 제 4복음서에서의 ‘참’과 ‘참됨’
4. 구약성경에 대한 예수의 태도
예수 자신으로부터 구약성경에 대한 그의 관계와 태도의 분명한 이해의 내면적 관점을 찾는다는 것은 상당히 중요한 일이다. 이 말은, 예수께서 전체 구약운동을, 자신을 그 목표로 하는 신적으로 방향 지워지고 영감 된 운동으로 여기셔서, 그의 역사적인 출현과 사역이 없이는 구약은 그 목적과 의미를 잃는 것으로 여기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5. 예수의 신론
우리 주님의 신론의 중심엔 하나님의 아버지 되심에 관한 그의 가르침이 온다. 하나님의 아버지 되심과 사랑에 표현된 자애로우신 측면과 함께, 우리 주님의 가르침에서는 하나님의 성품의 초월적인 면이 상당히 나타난다.
6. 하나님 나라에 관한 예수의 가르침
공관복음서에 의하면, 예수의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는 첫 사신이 ‘하나님 나라’에 관한 것이다. 우리 주님께서는 당신이 선포하시고 도입하시려 오신 새로운 사물의 질서를 어떤 이유에서 ‘하나님 나라’란 이름으로 부르셨는가!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영광에 관심을 갖고서 신적 최고권의 실제적 행사를 의미한다.
(1)구약에서의 하나님 나라
구약에서의 하나님 나라는 먼저, 창조로 시작되었고 전 우주에 미치는 섭리로 확대되는 하나님의 통치를 말한다. 구약은 또한 미래로서의 나라를 말하기도 한다. 이미 그 나라인데도 그것을 또 바라야만 한다는 것은 이상하게 보일 수가 있다. 그것도 상대적인 진보의 나라가 아니라 절대적인 새 창조의 나라라는 말이다. 이 모순인 것 같은 것에 대한 설명은 다음과 같다. 구약에서 후에 하나님 나라라 불리 우는 것은 내용상 두 가지 다른 개념과 관련된다.
첫째로, 여호와께서 전례 없는 의미로 이스라엘의 구원자와 통치자로 나타나시겠다는 것이다. 둘째로, 이스라엘 역사에서는 그 신성적 나라가 결코 모두 파기되지는 않았지만 하나님 나라를 새롭게 가져온다고 말하는 것이 적절할 정도로 사라져간 때가 있었다. 셋째로, 메시야 예언도 비슷하게 논의될 수 있다. 바라는 메시야적 왕은 언제나 궁극적 왕인 여호와의 완전하고 이상적인 대리자일 것이다. 유대적 종말론에는 물질주의가 상당히 혼합되어져 있다. 예수 자신께서도 이 종말론적인 구약의 화법을 사용하셨다. 그가 가까웠다고 선언하시는 그 나라는 구약의 관점에서 미래에 있던 그 나라였던 것이다.
(2)복음서에서의 하나님 나라
복음서에서 ‘하나님 나라’의 의미로 쓰인 ‘바실레이아’란 말은 두 가지로 옮길 수가 있다. 추상적인 용법으로는 왕의 통치와 행사 또는 그 작용을 의미한다. 하나님 나라라고 말씀하셨을 때 예수께서는 추상적으로 그 말씀을 쓰셨는가? 아니면 구체적인 의미에서 그리하셨는가? 그는 하나님의 통치를 의미하셨는가? 아니면 그 통치의 구체적인 구현을 의미하셨는가? 아니면 그 결과적인 실재를 의미하신 것인가? 예수의 구약에 대한 친밀성에서 판단 할 때 우리는 선험적으로 그도 역시 ‘왕권’의 추상적 개념에서 출발했으리라는 가정을 할 수 있다.
(3)하나님 나라와 교회
가이샤라 빌립보에서의 가르침에 더해짐과 발전을 보여 주는 두 요소는 그 나라를 외적 유기체로 만드신 것과 그 위에 성신의 새 권능을 부여하신 것이다. 그 나라를 교회의 형태로 조직화하신 것에 관한 한 주제가 남아 있다. 하나님 나라를 주제로 한 우리 주님의 가르침에 객관적 발전에 대한 분명한 예가 있다. 교회의 목적 자체라는 가장 좋은 증명은 교회가 종말론적 세계에 포함된다는 데에 있다. 왜냐하면 그 종말론적 세계는 향하여 가는 사물의 질서일 뿐 아니라 이미 획득된 사물의 질서이기도 하다. 교회는 단지 행하는 것만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 열매로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열매는 미래에만 배타적으로 속하는 것은 아닌 것이다. 이것은 현세의 가장 축복된 부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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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9.05.21
  • 저작시기200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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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536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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