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선생 암살사건의 전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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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김구선생 암살사건의 전개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안두희와 서북청년단 ․ 홍종만 ․ 김지웅

2. 암살계획의 실행

3. 안두희 심문과 당국의 반응

본문내용

맨 먼저
'빤스까지 벗기는 상세한 의료 진단'을 '한 시간 이상' 베풀었고, 이어 실권자 김창룡의
특별 면회가 있었다. 김창룡과의 만남은 취조관하구 피의자의 입장이 아닌 '커피 마시면
서 아주 화기애애한 기분으로 경어를 쓰는 반가운 담화'였다.
이처럼 안두희에 대한 심문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정부당국의 발표 내용은
6월 27일 헌병 사령부 및 국방부의 발표를 '한 입으로 말하는 것(如出一口)'처럼 반복하
였다. 다만 상부 인사로 올라 갈 수록 '우려와 협박'이 추가되었을 따름이다. 이범석 총리
는 6월 27일 호남 순찰중 목포에서 암살 사건 소식을 듣고 백범에 대한 애도와 더불어
'일반 국민은 臆測과 夭言을 엄금하기 바란다'는 묘한 성명을 발표하였고, 대통령 이승만
은 6월 30일 더욱 묘한 성명을 발표하였다. 그것은 암살사건을 한국독립당 당내 분쟁의
결과로 강조하면서도, 암살 동기를 밝히지 않는 것이 김구를 위한 것이란 회괴한 어법을
구하였다.
이러한 연장선상에서 7월 1일 전봉덕 헌병사령관과 김태선 시경국장은 공동으로 [布
告文]을 통해 '군경의 건재함에 신뢰를 갖고 항간에 유포되는 造言非語와, 사실을 왜
곡.....모략 선동함에 부화뇌동하여 경거망동하지 말며......군경에 절대적인 협조를 바란다'
고 발표하였다.
이처럼 군대와 경찰은 국민들에게 엄중 조사할 테니 신뢰를 가지라고 성명하였지만,
안두희는 특무대 김창룡의 특별 배려 아래 생활하고 있었다. 김창룡은 안두희를 위해 숙
직실을 개조하여 '호텔과 같은 특별 감방'을 제공하였다. 안두희는 집에서 보다 좋은 음
식을 먹고 편안히 목욕하면서 여러 신문을 보면서 편안하게 보냈다. 또한 부인 동생 등
가족은 물론 김창룡 . 포병사령부의 장교 등이 면회왔으며, 김지웅은 거액의 돈을 주고
갔다. 이러한 과분한 대접은 안두희가 생각해봐도 '기가 막히는 모순'이었다.
그러나 특무대장 김창룡으로서는 당연한 것이었다. 김창룡의 이러한 보호로 안두희
에 대한 취조는 다만 형식적이고 정치적인 것이었다. 김창룡이 취조관 盧燁대위와 李珍
鎔중위 두 사람을 안두희에게 소개하였고, 이들은 '안소위님'이란 경어를 쓰면서 담배를
권하고, '하기 싫은 말은 안해두 된다'고 권유하였다. 또한 취조관들은 홍종만, 김지웅, 장
은산 등 '세사람을 건드리기를 기피하는 공기가 역역하여, 안두희의 진술이 윗선으로 연
결되는 거을 차단하고, 송치할 때까지 조서를 보여주지도 않고 서명 날인하게 하였다. 더
욱이 안두희는 자신의 첫공판(8월 3일)이 열리기 16일 전에 이미 자신의 형량을 알게 되
었다.
이상을 정리하면 안두희에 대한 본격적인 취조 이전에 당국은 이미 백범 암살 사건
의 전반적 특성을 ① 당내 분쟁, ② 우발성, ③ 단독성 등으로 규정하였다. 그러나 연행
된 안두희는 오히려 자신의 범행과 동료를 회고하면서 배후에 대해 확신하고 있었다.
먼저 그는 같이 암살을 모의한 서북청년회의 홍종만, 직속 상관 장은산, 모략군 김지웅
을 회고하면서, 주도 인물로 김지웅을 지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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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7페이지
  • 등록일2009.07.12
  • 저작시기2009.7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544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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