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과 원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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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영웅과 간웅
2. 승전의 공 다투면서 벌어진 관계
3. 두 사람의 출신과 살아온 길
4. 거듭 깊어지는 갈등의 골
5. 명장의 졸장의 '죽을 자리'
6. 다시 등장한 '명장 원균, 원균의 공을 가로챈 이순신' - 원균 옹호론
7. 이순신과 원균, 더 이상 적으로 만들지 말자

본문내용

자가 나오기 마련이다. 원균이 전통적인 피해자였다면, 요즘의 피해자는 이순신까지도 포함되고 있다. 하지만 진정한 피해자는 전란의 시기를 살다간 우리의 선조, 민중들이다. 모두가 피해자인 이상, 단 한 명이 이를 극복한 대상으로 설정되는 것보다는 모두가 그 시대를 극복하려고 노력한 인물로 남는 것이 더 아름다운 역사의 기록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원균이 개전 전 전쟁을 대비해 극히 미흡한 준비를 하였다는 것도 원균이 임란발발 불과 2개월전에 경상우수사로 부임한 것을 고려하면 그렇게 탓할 수만은 없었던 것으로 보이며, 최근의 학설은 이순신의 파직이 원균의 모함에 의한 것이라는 통설적 견해에 의문을 제기하며, 그보다는 소서행장의 반간계에 의한 것이었다고 보는바, 옳은 판단이라 생각된다. 왜냐하면 임란 당시 원균과 이순신은 서로 상쟁하는 관계였고 왜적과의 전투에 있어 전술에 대한 이견충돌이 잦았던 것으로 보이며, 이순신을 파직한 죄명을 살펴보아도 원균의 모함으로 파직되었음을 보기는 힘들다.
그러나 원균이 이순신과 선무일등공신에 책봉된 것과는 관련해서 원균을 공을 높이 평가하는 견해는 적당하지 않다고 생각된다. 원균이 패장임은 역사가 증명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등공신이 된 이유는?..당시 상황을 살펴보면 전쟁이 끝나고 서인이 정권을 장악 했고 공신을 정한이도 서인 이었다. 알고 있듯이 원균은 서인이다. 원균은 패장임에도 불구 하고 1등공신이 된 필연 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본다. 조정내 원균옹호론자들이 원균의 패전으로 말미암아 약해진 자신들의 입지를 세우기 위해서라도 공신책봉에 그를 빼놓을 순 없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원균이 명장이고 1등공신이 될만큼 뛰어난 인물이었다면 같은 당파의 어느 누구든지 흠모 하는 한사람이라도 글을 남겼을 것이다. 우리나라가 아니라면 싸움을 했었던 일본이던지 중국이던지 남아 있어야 이치에 맞다.
요컨대 원균은 패장이고 이순신이 승장이라 하여 반드시 전자는 형편 없는 장수이고 후자만이 민족의 영웅이라고 말할 수는 없으며 또한 이것만으로 내린 인격적인 판단도 섣부른 것이다. 그러나 최소한 당시의 행적을 미루어 객관적인 평가를 내릴 필요는 있다고 본다. 원균도 나라를 위하여 적과 맞서 싸웠으며 결국 장렬히 전사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이순신의 지략과 전술은 원균에 비해 뛰어났으며 원균에 대한 일방적 격하는 위험한 발상이나 그렇다고 해서 이순신이 덜 위대한 것은 아닐 것이다.
< 참고문헌 >
-「다시 쓰는 임진대전쟁」, 양재숙, 고려원, 1994.
-「원균 그리고 원균」, 고정욱, 여백, 1994.
-「원균을 위한 변명」, 이재범, 학민사, 1996.
-「이야기 인물한국사」5, 이이화, 한길사, 1997
-「원균」, 고정욱, 산호와 진주, 2004.
-「임진왜란 해전사」, 이민웅, 청어람미디어, 2004
-「원균과 이순신」, 도현신, 비봉출판사, 2008
-「이순신을 폄훼하는 '원균 명장론'의 실체」, 송우혜, 논문, 2006
-「이순신, 원균의 시대별 여론 양상과 평가」, 장학근, 논문,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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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9.12.30
  • 저작시기20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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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5706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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