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설화 속에 나타나는 영웅들의 비극성 - 아기장수설화, 이몽학 오뉘 힘내기, 당금애기, 바리공주 네 작품을 바탕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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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신화|설화 속에 나타나는 영웅들의 비극성 - 아기장수설화, 이몽학 오뉘 힘내기, 당금애기, 바리공주 네 작품을 바탕으로 -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본문
Ⅱ-1. 아기장수설화
Ⅱ-2. 이몽학 오뉘 힘내기
Ⅱ-3. 당금애기
Ⅱ-4. 바리공주

Ⅲ. 맺음말

본문내용

두 그룹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요소이다. 사실 이들은 비극문학의 필수전제조건으로 주인공과 운명(또는 세계)의 대립이 없다면 비극(성)은 시작될 수 없다. 이러한 대립은 이미 본문을 통해 충분히 밝혀졌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이 정도의 언급에서 그치도록 한다.
그런데 주인공과 운명의 대립, 즉 주인공이 운명에 대항하는 모습과 그 결과에서 두 그룹 간의 차이가 아주 두드러져 보인다. 설화 속 주인공들은 모두 운명 앞에서 끝내 좌절하게 되지만 신화 속 주인공들은 운명을 이겨내고 신으로 추앙받게 되는 것이다. 아기장수설화에서 아기장수는 아무 반항도 할 수 없는 갓난아기 때 권력으로부터 일방적인 횡포를 받아 끝내 죽음을 맞이한다. 이몽학 오뉘 힘내기에서도 누이는 아들을 중시하는 가부장적 유교질서아래,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에 의해서 죽게 된다. 이처럼 설화 속 주인공들은 뛰어난 능력과 자질에도 불구하고 운명(세계)에 의해 불합리한 죽음을 맞이한다. 아기장수와 누이의 죽음이 독자에게 더욱 비극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그들이 작품 속에서 실제적으로 죽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죽음을 통해 우리를 억누르는 세계의 실체가 오싹하리만치 잘 드러나기 때문이다. 독자들은 이 두 작품을 읽으면서 아직 아무것도 한 것 없는 아기와 누이를 친부모의 손에 의해서 죽게 만드는 불합리한 사회의 횡포를 깨닫게 된다. 그것이 불합리하다는 것을 알지만 한편으로는 그 절대적인 힘을 인정할 수밖에 없음을, 독자들은 아기장수와 누이의 죽음을 통해 알게 되는 것이다. 즉 두 설화의 진정한 비극성은 독자가 눈에 보이지 않으나 엄청난 힘으로 작용하고 있는 운명의 불합리성을 깨닫게 되는 바로 이 지점에서 나온다. 아기장수와 누이는 뛰어난 능력을 타고 났지만, 운명에 의해 한층 더 어려운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회적으로 낮은 계층(농민의 자식, 여성)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그들의 탄생은 곧 죽음을 예고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설화 속 주인공들과 마찬가지로 신화 속 주인공들도 비범한 능력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러나 이들은 설화 속 주인공들보다 더 높은 사회적 계층에서 태어난다. 설화 속 주인공들이 뛰어난 능력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사회적 계층 때문에 결국 죽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면, 신화 속 주인공들은 운명을 이겨낼 힘이 그들의 출생신분에 암시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호위호식하며 자랄 수 있는 그들이 시련을 겪고 추락하는 모습은 한층 더 비극적으로 느껴질 수 있겠지만, 어쨌든 분명히 설화와 신화 속 주인공들의 결말은 서로 정반대이다. 당금애기와 그 세 아들들, 그리고 바리공주는 시련을 이겨내고 신이 되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다루었던 신화들이 비극적 이야기가 아니며, 신화 속 주인공들에게서 전혀 비극성을 찾을 수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특이한 점은, 설화 속 주인공들과 상반되는 신화 속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독자가 설화 속 주인공들의 운명을 통해서 느끼는 것과 마찬가지로 비극성을 느끼게 된다는 점이다. 설화를 통해서 독자는 불합리한 권력이나 사회구조 등의 절대성을 인식하게 된다. 그리고 신화를 통해서도 인간이 뛰어 넘을 수 없는 절대적 무엇을 느끼게 되며 그 굳건한 장벽 앞에 서 있는 자신을 바라보게 되는데, 신화를 통해서 제시되는 거역할 수 없는 운명은 설화의 그것과는 다르다. 설화를 통해서 독자가 느끼는 절대적인 운명은 인간이 살아있는 동안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권력, 사회구조 등) 그러나 신화를 읽으며 독자가 마주하게 되는 운명은 ‘죽음’이다. 신화에서 죽음이라는 요소는 이야기가 흘러가는 가운데 간접적으로 제시된다. 바리공주가 저승여행을 시작하는 지점, 당금애기가 탄생과 죽음을 관리하는 신이 되었다는 부분에서 독자는 죽음을 생각하게 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너무나 은근하게 제시되어 있기 때문에(신화라는 갈래의 특성상, 인물들이 지극히 뛰어남을 강조해야 한다는 목적아래 가려진 것으로 보인다) 독자는 그것을 보지 못하고 지나쳐 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분석하는 과정에서 죽음이라는 요소를 잡아낼 수 있는 이상, 그것을 신화 작품들의 비극성을 극화시키는 장치로써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발표조가 시작에 앞서 비극성이 독자가 감응하는 정도에 따라 나올 수 있다고 전제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편 신화는 설화처럼 비극성의 단순 제시에서 그치지 않고 그것을 해소(또는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한다. 신화는 죽음 또는 인간이 도무지 해결할 수 없어 보이는 시련을 극복한 뒤 신이 된 주인공들을 ‘믿으면 된다’고 이야기한다. 독자는 죽은 영혼을 극락으로 천도하는 오구신(바리공주)을 믿음으로써 죽음에 대한 공포를 어느 정도 이겨낼 수 있다. 그리고 출산과 병을 주관하는 신이 된 당금애기를 믿음으로써 병으로 인한 죽음의 공포 또한 극복할 수 있다.(옛날에는 의학기술이 발달하지 않아 작은 병으로도 죽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그런데 당금애기에게 빌면 병을 고쳐준다고 하니 얼마나 안심이 되었겠는가) 바리공주와 당금애기의 경우 이들이 자식을 가진 어머니신이라는 점에도 주목할 수 있다. 한국인에게 있어 어머니는 언제라도 기댈 수 있는 편안한 존재의 상징이다. 죽음의 공포 속에서 어머니와 같은 존재가 나를 인도해 줄 것이고, 어머니 같은 신이 병을 낫게 해 줄 것이라는 말은 상당히 매력적이다.
영웅적 주인공들을 통한 신화와 설화 속의 비극성은 이와 같이 다른 방식으로 구현된다. 신화와 설화 모두 비극적 운명을 제시하지만 설화는 단순 제시에서 그치고, 신화는 그 해결방식까지 제안한다는 점에 가장 큰 차이가 있다. 독자가 신화와 설화를 읽었을 때 느껴지는 비극성의 강도 차이가 바로 여기에 기인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이것이 신화가 설화보다 비극성을 더 훌륭히 구현한다거나, 설화가 신화보다 더 뛰어나다거나 하는 식의 가치판단으로 이어져서는 안 될 것이다. 신화에서 죽음의 해결방식이 제시되는 이유는 그것이 신화이기 때문이고(신이 관장하는 영역이 그것이니까), 신화와 설화에서 나타나는 비극성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찾아보는 일이 그러한 일원주의 지향보다 더 큰 의미를 지닐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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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9페이지
  • 등록일2010.03.08
  • 저작시기200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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