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지역 기독교의 기원과 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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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통영지역의 이해
1) 지리적 특성
2) 문화적 특성

2. 통영지역의 개신교 전래
1) 초기 선교 활동 (1894-1910년대)
2) 통영지역에서 기독교 선교활동

3. 통영지역의 교회 설립
1) 대화정교회
2) 미수교회
3) 장평교회
4) 욕지(동항리)교회
5) 안정교회

4. 결론

본문내용

가 2명 강도사 1명 신학생수는 2명 조선인 장로는 9명 남자 전도사는 7명 남자 전도인은 1명 부인 전도인은 5명 영수가 30명 남자 서리집사가 50명에 이르고 세례교인은 638명이며 교인의 합은 1697명으로 나타나며 주일하교 평균은 1207명이었다.
당시 통영지역은 조직 교회 4개 처, 미조직 교회 26개 처, 1925년에 입교인 75명, 성찬에 참여한 세례교인 도합 638명, 모든 교인 도합 1697명, 주일학교 모이는 평균수 1207명으로 나타나 있다. 이 통계 자료에 나타난 지역은 거제와 고성지역을 포함하고 있음으로 지금 연구대상지역과 일치하지 않지만 대략의 당시의 교세와 교회의 현황은 짐작할 수 있다.
4. 결론
지금까지 경남 통영지역의 기독교 전래와 그 수용과정을 대략적으로 살펴보았다. 사회적으로 학문적으로 소외되었던 도서 해안지방의 일부인 통영에서의 기독교가 어떻게 전래되고 발전되었는가에 대한 간략한 흐름정도는 파악해 보았다. 이제 통영지역의 기독교역사의 흐름 가운데서 이 지역의 특징과 교회사적인 의의를 살피면서 결론을 맺고자 한다.
통영지역은 앞에서도 설명했듯이 지역적으로 다도해의 한 중심으로서 많은 섬들을 포함하고 있는 곳이다. 그러면서도 개항이 될 때는 부산과 함께 일본과 가까이 있는 항구로 일찍이 개항이 되었다. 그 이유로 기독교는 다른 곳보다는 빨리 복음이 전해진 곳이다. 해안지역의 뿌리 깊은 우상숭배로 인해서 복음이 잘 받아 드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한번 받아들인 복음에 대해서는 확고하며 끈질긴 생명력을 발휘한다.
그럼 통영지역이 가지고 있는 교회사적 의의를 살펴보기로 하자 첫째, 보수주의적인 경향이 짙게 나타난다. 예양협정 이전에나 이후에나 이 지역은 호주 장로교 선교부의 주도 아래 복음이 전해진 곳이다. 그럼으로 장로교의 성향이 짙은 보수주의적이고 복음적인 신앙이 뿌리 깊게 내려져 있다. 이 지역의 특성도 보수주의적인 정서가 아주 강하게 나타나고 있는데다가 신앙의 색깔까지도 장로교의 전통을 이어받은 호주 장로교의 신학적 신앙적인 흐름이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앞에서도 살펴보았지만 전국적인 기독교인구 분포를 비교해 봐도 이곳이 전국에서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난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그것은 사람들의 성향이 한번 받아들인 것에 대해서는 잘 변하지 않는 그런 특징이 있다. 우상이든지 기독교든지 한번 믿게 되어진 것은 특별한 체험이나 사건이 있지 않고는 잘 변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특히 도서지역에는 많은 교회들이 아주 오래 전부터 있었지만 부흥이 잘 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것은 도서지역의 교역자들이 타지역에 비해서 너무 자주 옮기는 이유도 있겠지만 더 큰 이유는 지역 주민들이 복음을 받아들이는데 걸리는 시간이 너무나 오래 걸리게 되는 특징이 있어서 이다.
그리고 지리적으로 위험한 환경에서 살다보니 조상 대대로부터 내려오던 뿌리 깊은 우상숭배에서 개종하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척박한 땅에 뿌리를 내린 기독교 복음이 아무리 작은 교회라고 해도 그 명맥은 잘 사라지지 않는 것도 지역적 특성이라고 볼 수 있다. 몇몇이 지켜도 자기 교회는 꼭 자기들의 손에 의해서 지키고 싶어 하는 순수하고 끈질긴 믿음을 가지게 된 것도 지역적 정서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지역적 정서에 개항할 당시 많은 서구 사상들이 들어오는 가운데도 장로교가 가지는 보수적인 성향과 이 지역의 보수적인 정서가 맞아 들어서 이 지역에 장로교적인 보수신앙이 뿌리를 내리게 된 것이다.
둘째, 민족적인 신앙의 특징이 여실히 나타난다. 한국 기독교는 복음이 전래되는 그 초기에 일제의 침략으로 인해서 그 신앙의 양상이 저항적이 되어 있다. 특히 서양문화를 빨리 받아들인 기독교인들에게는 더없이 민족주의적인 신앙으로 자리 매김이 되었다. 민족의식이 바탕에서 서양의 문물과 함께 복음을 받아들인 소위 선각자들의 대부분이 기독교인들이었다. 이런 정서로 인해서 기독교 복음이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은 민족 복음화와 민족 구원을 일직선상에 놓고 보게 됨으로 자연스레 민족적 신앙을 형성하고 실천할 수 있게 되었다.
셋째, 사회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된다. 그리고 통영의 기독교인들이 지역의 근대화에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여성운동, 교육활동, 의료선교와 같은 반봉건적인 근대화 운동에 앞장서서 활동하게 되었다. 기독 여성들은 유교적 전통으로는 다소 자유롭지 못한 환경 가운데서도 아주 적극적으로 활동하면서 많은 변화를 이루어 놓았다. 그것은 이 지역에서 활동한 여선교사들의 헌신적인 봉사와 가르침으로 이루어졌다고 본다. 그들에 의해서 여성 기독단체가 세워지고 민족운동과 사회운동을 함께 해갈 수 있도록 해주었다.
통영의 기독지성인들은 복음과 함께 새로운 문물을 빨리 받아 드려서 3.1운동과 사회 계몽운동에 많은 이바지를 하였다. 무엇보다도 교육에 많은 노력을 쏟아 부었다. 그리고 시대가 요구하는 많은 희생도 그들은 잘 감당하였다. 이들은 기도운동, 전도운동, 헌신적인 봉사를 통해서 자기가 복음을 통해서 받은 은혜와 사랑을 사회에 환원하려고 무단히 노력하였다. 그것이 열매를 맺어 지금의 교회들로 자라게 한 것이다.
끝으로 통영지역은 도서지역의 한계를 뛰어 넘지를 못한다. 어촌지역의 교회의 교세가 현재에는 급격히 감소하고 있는 추세이다. 교세의 감소 원인은 도시 혹은 육지로 이동이다. 그리고 전도가 잘 되지도 않지만 교인들 역시 전도에 소홀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직까지 우상숭배의 전통에 젖어있는 지역 주민들과 교회와의 거리감, 그리고 경제적인 어려움도 크게 작용한다. 그리고 신앙에의 열정이 다소 식어가고 있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교역자들의 잦은 이동이 도서 해안지역교회들을 더 어렵게 하고 있다. 그러나 복음의 진보는 여기서 멈출 수 없다. 이역만리까지 와서 목숨을 걸고 헌신 봉사한 많은 선교사들의 눈물로 뿌린 씨앗을 그대로 방치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이제는 이 지역교회들도 현실주의적인 안일한 신앙, 형식주의적인 신앙에서 벗어나서 복음의 순수성으로 돌아가고 전도의 열정으로 돌아가 이 땅에 전해진 복음이 찬란하게 꽃 피울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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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0.04.14
  • 저작시기200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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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599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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