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판 한국문학통사 4 (조동일) 요약,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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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제4판 한국문학통사 4 (조동일) 요약, 정리 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0. 중세에서 근대로의 이행기문학 제2기 1860~1918년

10.1. 민중종교운동과 문학 4―9
10.1.1. 민중종교운동의 경과 4―9
10.1.2. 동학사상의 표현 방법 4―13
10.1.3. 동학혁명의 문학 4―18
10.1.4. 유교와 불교에 의거하는 길 4―24
10.1.5. 증산교의 득도 기록 4―30
10.1.6. 대종교의 주장 4―34
10.1.7. 노선 전환의 두 방향 4―39
10.2. 구비문학의 활기와 긴장 4―46
10.2.1. 대원군 집권기의 전환 4―46
10.2.2. 판소리의 상승과 변모 4―53
10.2.3. 민요에 나타난 항거와 비판 4―64
10.2.4. 민요 개작 운동 4―71
10.2.5. 설화의 변모 양상 4―77
10.2.6. 재담 기록의 의도와 방법 4―81
10.3. 구시대 국문문학의 지속과 변모 4―89
10.3.1. 노래로 부르는 시조 4―89
10.3.2. 가사에서 전개된 종교사상 논쟁 4―93
10.3.3. 경험 확대를 보인 가사 4―101
10.3.4. 역사의식을 고취한 가사 4―111
10.3.5. 규방가사의 변모와 각성 4―116
10.3.6. 산문 기록의 양상 4―124
10.3.7. 활자본 잡가집 4―127
10.4. 한문학에 부과된 사명 4―134
10.4.1. 문학과 사상의 정통 재확인 4―134
10.4.2. 개화ㆍ계몽의 길 4―139
10.4.3. 문장가의 사명 4―147
10.4.4. 한문학의 저변 확대 4―155
10.4.5. 우국문학의 진통 4―159
10.4.6. 적극적 항쟁의 문학 4―165
10.4.7. 신문과 잡지에 실린 한시 4―173
10.4.8. 한문학의 유산 정리 4―178
10.5. 의병 투쟁의 문학 4―181
10.5.1. 투지를 선포한 격문 4―181
10.5.2. 투쟁의 경과 기록 4―184
10.5.3. 기백과 울분을 나타낸 한시 4―189
10.5.4. 투쟁을 위한 가사 4―197
10.5.5. 투쟁의 경과를 되새긴 가사 4―205
10.6. 신구 문학관의 대립과 교체 4―211
10.6.1. 한문학 세대의 주장 4―211
10.6.2. 국문문학으로의 전환 이론 4―217
10.6.3. 소설에 대한 관심과 논의 4―223
10.6.4. 일본 유학 세대의 견해 4―230
10.6.5. 문학사의 출현 4―238
10.7. 국문운동과 문체 혁신 4―243
10.7.1. 전환기의 상황 4―243
10.7.2. 국문 사용의 확대와 공식화 4―247
10.7.3. 국문 사용을 둘러싼 논란 4―254
10.7.4. 국문연구의 열의와 성과 4―260
10.7.5. 작문법 개발을 위한 노력 4―266
10.8. 국문시가의 새로운 양상 4―272
10.8.1. 1890년대의 독립ㆍ애국가 4―272
10.8.2. 1900년대 이후의 창가 4―278
10.8.3. <대한매일신보> 가사 4―287
10.8.4. 신문ㆍ잡지 가사의 다양한 모습 4―295
10.8.5. 시조의 변모 4―301
10.8.6. 언문풍월에 대한 관심 4―309
10.9. 시대 각성을 위한 산문 갈래 4―315
10.9.1. 역사ㆍ전기문학 4―315
10.9.2. 번역서의 기여 4―322
10.9.3. 다시 나타난 몽유록 4―327
10.9.4. 동물우화를 이용한 논란 4―333
10.9.5. 시사토론문 4―335
10.10. 소설의 판도와 신소설의 위치 4―340
10.10.1. 방각본ㆍ필사본소설의 변모 4―340
10.10.2. 활자본 신작구소설 4―347
10.10.3. 한문소설의 마지막 모습 4―355
10.10.4. 신문ㆍ잡지 국문소설의 등장 4―360
10.10.5. 이인직과 이해조의 신소설 4―368
10.10.6. 여타 신소설의 작가와 작품 4―376
10.10.7. 번역ㆍ번안소설 4―382
10.11. 민속극ㆍ창극ㆍ신파극 4―387
10.11.1. 민속극의 발전과 변모 4―387
10.11.2. 닥쳐온 시련 4―392
10.11.3. 창극의 등장 4―396
10.11.4. 신파극으로 가는 길 4―402
10.11.5. 희곡 작품의 면모 4―408
10.12. 신체시의 불안한 위치 4―413
10.12.1. 최남선의 의욕과 파탄 4―413
10.12.2. 이광수가 택한 길 4―420
10.12.3. 현상윤, 최승구, <학지광>의 시인들 4―425
10.12.4. 김억과 <태서문예신보> 4―430
10.12.5. <유심> 시기의 한용운 시 4―436
10.13. 방황하는 세대의 소설 4―440
10.13.1. 현상윤과 양건식의 단편소설 4―440
10.13.2. 이광수의 단편소설 4―444
10.13.3. 이광수의 초기 장편소설 4―448
10.13.4. 현상응모 소설 4―454
10.14. 망명지문학의 형성 4―458
10.14.1. 망명지문학의 성격 4―458
10.14.2. 시가 4―460
10.14.3. 소설 4―467
10.14.4. 희곡 4―469

본문내용

버금가는 활동을 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생애나 사고방식에서부터 뚜렷한 차이점이 있다. 친일문학과 항일문학의 중간노선을 택했다고 할 수 있다.
10.10.6. 여타 신소설의 작가와 작품
- 또 한 사람의 중요한 신소설 작가 최찬식은 한학자 최영년이다.
- 안국선은 일본유학을 하고 돌아와 독립협회와 연관을 가지고 애국게몽운동을 하다가 체포되어 유배된 경력이 있다. <금수회의록>
10.11. 민속극, 창극, 신파극
10.11.1. 민속극의 발전과 변모
-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공연하는 떠돌이탈춤을 초빙해오는 번거로움을 덜고 떠돌이탈춤에서 볼 만한 요소를 받아들여 각기 자기네 도시의 탈춤을 큰 규모로 육성하는 경쟁을 벌였다.
10.11.2. 닥쳐온 시련
- 민속극은 한창 시절에 수난을 당하고 쇠퇴의 길로 들어섰다. 직접적인 이유가 1910년ㅇ네 나라가 망한 데 있다. 그때 진주에서는 오광대 탈을 불살라버리고 놀이를 하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그 밖의 다른 지방 탈춤에도 전승이 중단된 것이 적지 않다.
10.11.3. 창극의 등장
- 1860년대 서울에 모여든 판소리광대들은 흥행이 더 잘되게 하는 방안을 두 방향에서 찾았다. 한편으로는 대원군을 포함한 상층 애호자들에게 인정받아 지위 상승을 하고 판소리가 고급 예술일 수 있게 하려고 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시정인을 상대로 공연을 하면서 좀더 흥미로운 구경거리를 마련하고자 했다.
- 대중화를 택한 광대들이 협률사라는 단체를 결성했다. 배역을 나누어 창을 주고받는 것을 보고 큰 매력을 느낀 협률사의 광대들이 창극을 만들고자 했다.
- 정부에서 하던 협률사가 안팎의 반대 때문에 혁파되고, 1908년에는 원각사라는 민간 공연단체가 그 극장을 맡아 공연장으로 삼았다.
- 원각사라는 극단은 두 구실을 했다. 영리적인 흥행을 하는 상업적인 극단이어서 구경꾼이 많이 모여들 수 있는 종목을 마련했으며, 광대들에게는 협률사의 전례에 따라 월급을 주었는데 상당한 대우였다. 흥행이 잘되어 그럴 수 있었다. 그러면서 또 한편으로는 창설하고 운영한 사람들의 성향에서 드러나는 바와 같이, 친일파의 여론 조작을 담당했다. 연극 개량을 표방하고 창극을 하는 기회에 친일의 언사를 전하고자 했다.
- 창극은 판소리의 맛을 즐기면서 흥미로운 구경거리를 찾고자 하는 관객들을 만족시켜야 하는 시대적인 요청의 산물이었다. 탈춤과 신파극 사이 중간의 위치를 차지한다고 할 수 있다.
10.11.4. 신파극으로 가는 길
- 신파극은 일본 신파극을 이식한 연극이다.
통속적인 구경거리로 자라난 격정극이며, 엽기적인 흥미를 내세워 관객을 모았다.
10.12. 신체시의 불안한 위치
10.12.1. 최남선의 의욕과 파탄
- <해에게서 소년에게>는 한 연만 보면 자유시이고, 여섯 연을 서로 견주어보면 아주 특이한 정형시이다. 정형시와 자유시를 각기 극단화하고자 한 시도가 이 작품에서는 한꺼번에 나타났다. 일정한 토막 수가 되풀이되면서 각 토막을 이루는 글자 수가 달라질 수 있는 우리 시가의 기본 원리를 양면으로 파괴했다.
- <꽃두고>는 자유시이기만한 형식을 택했다. 외형은 시 같지만, 읽어보면 줄을 바꾸어 적은 산문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 최남선은 7.5조의 장시도 부지런히 지었다. 1908년 3월에 단행본으로 내놓은 <경부철도노래>가 그런 것이다.
그러면서 다른 한편으로 전통적인 형식이나 소재를 잇는 데도 관심을 보였다. ‘국풍’이라고 일컬은 시조를 지어서 전통과의 연결을 꾀해, 자기 작품세계가 개화 쪽으로만 치닫지 않도록 했다고 할 수 있다.
10.12.2. 이광수가 택한 길
- 이광수의 시는 형식 시험에 몰두한 것이 얼마 되지 않고 시대의 고민과 문제에 더 많은 관심을 가졌다. 웅대한 구상을 갖추고 울분을 토로하고자 한 장시가 몇편 있어 주목된다.
10.12.5. <유심>시기의 한용운 시
- 한용운은 신체시를 짓겠다고 나선 문학청년이 아닌 승려였으며, 불교유신운동을 일으키려고 애쓰고 있었다. 1910년 <조선불교유신론>을 내놓아, 불교가 구습에서 벗어나 대중종교로 다시 태어나 시대적인 사명을 수행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10.13. 방황하는 세대의 소설
10.13.2. 이광수의 단편소설
- 이광수는 일본 유학을 해서 서양 전래의 새로운 지식을 공부한 것을 큰 자랑으로 삼고, 일본에 수용된 서양문학에 심취해 그 비슷한 것을 우리말로 이룩하려고 했다.
조선사회는 무엇이든지 잘못되었다고 매도하는 민족허무주의자의 심리 상태를 가지고, 그릇된 인습을 청산하며 진정한 자아 각성을 추구하는 선각자 노릇을 한다고 자부했다.
10.13.3. 이광수의 초기 장편소설
- 이광수는 단편소설을 발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장편소설 <무정>을 썼다.
고전소설에서 이룩한 성과를 잊으면 최초의 본격적인 장편소설인 것처럼 보인다. 신소설보다는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은 분명해 획기적인 의의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
- <무정>이 최초의 본격적인 근대 장편소설이라는 평가는 구소설과의 관련을 살피지 못한 데 기인한다.
- <무정>에서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무지하고 몽매하고 추악하다고 기회 있을 때마다 나무랐다. 이형식의 하숙집 노파를 본보기로 들어 누구나 혐오감을 느끼게 묘사했다. 그런 대목에 민족허무주의 증세가 심각하게 나타나 있다.
- <개척자>에서는 조선의 빈곤과 무지를 극복하자면 과학에 의한 발전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는 당위론을 늘어놓으면서 김성재를 옹호했다.
10.14. 망명지문학의 형성
10.14.1. 망명지문학의 성격
- 망명지문학은, 1905년 또는 1910년 이후 국권이 상실되자 뜻있는 사람들이 해외로 망명해 창작한 문학이다. 망명을 한 곳은 미국, 만주, 상해, 소련 등지였다.
- 망명지문학과 국내에서 이룩한 문학을 비교해보면, 주제에서는 망명지문학이 언제나 앞섰다고 할 수 있다. 항일투쟁을 주장하는 작품창작이 망명지에서는 가능하고, 국내에서는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1919년 이후의 국내문학은 표현이 뛰어난 근대문학으로 발전하고, 망명지문학은 그런 변화를 겪지 못하고 앞 시대의 표현 방법을 되풀이했다.
참고문헌
제4판 한국문학통사4 / 조동일 / 지식산업사 / 2006
  • 가격2,000
  • 페이지수13페이지
  • 등록일2010.05.16
  • 저작시기2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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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61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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