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문명의 역사 서양문화사를 읽는 10가지 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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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서양문명의 역사 서양문화사를 읽는 10가지 테마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헬레니즘문화의 성립
2. 크리스트교의 공인
3. 카롤루스 대제의 서로마 제국 황제 대관식
4. 십자군 원정
5. 르네상스
6. 인쇄술의 발명
7. 종교개혁
8. 계몽사상
9. 19세기 시민문화의 발전
10. 미국문화의 범람

본문내용

한편 르네상스 시기의 문화 부흥에 힘입어 예술에 대한 수요가 증대하면서 일부 예술가들은 자유로운 정신노동자로 신분의 상승을 이루기도 하였다.
르네상스 시기 문화 부흥의 구체적인 면들을 살펴보면, 우선 과학의 영역에서는 르네상스의 성과가 보다 합리적인 사고체계를 형성케 하여 17세기 과학혁명의 밑거름이 되었다. 연금술이 발전했으며 수학에서 소수와 대수의 개념이 발견되었다. 이 시기의 인쇄술의 발명은지식의 일대 혁명을 가능케 하였으며 항해술과 항법이 발달해 신항로 개척의 밑바탕이 되었다. 또한 화포, 인쇄술, 나침반 등이 발명되었는데 이는 모두 아라비아, 중국에서 발명한 것을 방법적으로 혁신시킨 것이었다. 여러 문예 분야도 중흥기를 맞았다. 르네상스의 문학은 고전주의로의 복귀가 아닌, 고전주의에서 탈피하는 장르로 발전해 나가면서 국민문학이 자리잡게 되었다. 단테의 <신곡>이나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등이 그 예이다. 음악에서는 14세기에 세속가곡이 출연하여 기존 종교의 엄격한 격식을 탈피하고 기교음악의 형식을 취했으며 미사곡이 발전하였다. 공예 분야에서는 목공예, 금속공예, 유리, 직물공예가 발전하였다. 특히 도자기 분야의 발전이 두드러졌는데, 고대 신화와 영웅 이야기 및 기독교적 문양과 장식을 삽입하였으며 당시 직물은 화려한 색채를 유행시켰다.
인문주의적 열정과 세속주의적 관점은 특히 미술 분야에서 두드러졌다. 개인적 성취를 추구하는 미술가들은 세속군주 및 부르주아라는 새로운 후원자들 속에서 세속취향을 더욱 발전시켜 조토, 다빈치, 라파엘로, 미켈란젤로 등의 많은 걸작품들이 산출되었다. 건축에서는 고딕 건축의 수직적 상승성을 배제하고 조화를 이루면서도 장중한 공간을 살리는 특색이 나타났으며, 조각에서는 고대의 흉상형식이 중요한 과제로 등장하고 기념비 등이 청동으로 제작됨으로써 건축으로부터 독립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회화에서는 현실적인 자연과 인체의 아름다움이 주요 소재로 등장했으며 원근법이 발달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르네상스는 서양문화에 있어서 단순한 부활을 뛰어넘은 창조의 움직임이었다.
7. 종교개혁 (Reformation)
- 선정이유: 기독교 문명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르네상스와 함께 근대 서 양문화의 발전에 실질적 주체로 작용하였다.
종교개혁은 르네상스와 함께 유럽의 문화를 근대화한 2대 정신운동이며, 교회의 속성화에 대한 개혁으로 출발하여 중세적 권위를 배격하고 신앙의 자유와 분열을 낳게 한 일대 정신개혁운동으로서 유럽 근대화의 커다란 사건이다. 더욱이 종교개혁은 개인 및 민중생활에 직접적 관계가 컸는데, 그 영향은 생활의 전반에 깊은 자극을 주었다.
종교개혁으로 말미암아 중세에 통일되어 있던 기독교 세계가 분열하게 되고, 그러한 분열은 프로테스탄티즘 내에서의 한없는 분파운동으로 더욱 심하여졌다. 이러한 종교적 분열에 정치적경제적 이해관계가 엉클어져서 유럽은 종교전쟁에 휩싸이게 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사람들은 점차 종교적 관용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종교개혁은 각 개인에게 그의 내부의 소리,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것을 권고하였다. 그럼으로써 종교개혁은 르네상스와는 다른 의미에서 인간의 개성을 해방시켰다. 종교개혁은 어디까지나 종교적인 운동이요, 신앙문제가 그 중심이었다. 프로테스탄티즘은 순수한 내면적인 신앙을 찾아 신과 인간을 직결시킴으로써 중세교회의 모든 권위를 부정하고 그 보편적 지배에 종지부를 찍었다.
종교개혁은 프로테스탄티즘, 즉 근대 직업윤리와 새로운 금욕적 생활윤리를 탄생시키고 중산계층에 널리 파급시켜 유럽 근대사회 발전의 중요한 정신적 지주가 되었다. 또한 종교개혁은 유럽을 문화적으로 구분하였다. 16~17세기 종교개혁과 종교전쟁의 결과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을 비롯하여 서독일과 남독일의 일부, 폴란드의 대부분 등 유럽의 태반은 카톨릭을 고수하였고, 이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은 신교로 개종을 하였다. 이러한 종교에 따른 지역차이는 문화적인 차이를 일으켰다.
한편 종교개혁은 전통적인 민중문화의 면모를 크게 변화시켰다. 종교개혁과 함께 성직자들의 주도로 민중문화의 개혁운동도 전개되었다. 관대함, 자발성 등 이교적이고 분방했던 민중의 전통적인 문화 및 윤리체계와 상반되는 예의, 근면, 엄숙 등의 새로운 윤리가 주입되었다. 개신교는 신앙에서 개인의 내면성과 실천을 중시했다. 독일의 경우 아우크스부르크의 종교화의 이후 민중신앙의 자율성이 크게 감소되었으며, 민중문화의 지형 역시 통치자의 종교적 결정에 따라 크게 좌우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무제한적 소비관습에 기초한 민중들의 태도와 가치에 영향을 끼쳤고, 민중문화를 반(反)문화에서 종속문화로 변형시켰다. 이 시기에는 또한 독일, 스위스 등지에서 마녀사냥이 성행하기도 했다. 교회는 대중 교화의 대상으로서 마술을 악의 등가물로 제시했으며, 국가는 마녀사냥을 통하여 농촌지역을 통합하려 했다. 여기서 민중문화와 엘리트문화 사이에 폭력을 동반한 일종의 문화적 교류와 타협 및 상호부정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이러한 문화적 압박에 대하여 이 시기 민중은 대체로 보수적 태도를 취하여, 지배집단의 가치체계를 수용했던 것 같다. 그러나 민중은 기존 사회질서로부터 비롯된 고통에 대하여 다양한 방식으로 항의하기도 했다. 특히 축제는 일상으로부터의 일탈과 휴식 등 긴장 완화의 기능도 보유했지만 동시에 기존의 질서에 대하여 도전하는 기회로 전화(轉化)되기도 했다. 한편 종교개혁이 일어난 16~18세기에는 여성의 예속화 역시 본격화되었다. 개신교적 모델은 남성과의 동반을 강조하여 여성의 독자적 조직과 주체성을 제거함으로써 종속화 경향을 강화하기도 했으며, 문학이나 예술 등에 기존의 성관념에 대립되는 ‘방자한 여성’의 이미지가 희극적이고 축제적인 방식을 통하여 다양한 형태로 표현되기도 하였다.
<참고목록>
- 서양사강의, 배영수, 한울 아카데미, 2000
- 유럽문화사, Peter Rietbergen, 정지창김경한 옮김, 知와 사랑, 2003
- 서양정치사, 허재일소치형, 건국대학교 출판부, 1999
- cafe.daum.net/eurohc
- www.naver.com
- www.arouse.pe.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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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0.12.03
  • 저작시기2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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