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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속공예][금속공예 역사][금속공예 대표작가][금속공예 작품][귀금속공예]금속공예의 기원, 금속공예의 의미, 금속공예의 역사와 금속공예의 대표작가, 금속공예의 작품 및 금속공예의 귀금속공예 분석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금속공예의 기원

Ⅱ. 금속공예의 의미

Ⅲ. 금속공예의 역사
1. 삼국시대
2. 통일신라
3. 고려시대
4. 조선시대

Ⅳ. 금속공예의 대표작가와 작품
1. 작가 소개
2. 작품 특징
1) 무제
2) 여름밤의 이야기

Ⅴ. 금속공예의 귀금속공예
1. 고대의 귀금속공예
2. 그리스도교 시대와 중세의 귀금속공예
3. 16세기
4. 18세기
5. 19세기
6. 20세기
7. 마야, 잉카의 귀금속공예
8. 페르시아
9. 중국(中國)
10. 한국의 귀금속공예

참고문헌

본문내용

카롤링조(朝)의 귀금속공예의 기법이다. 12세기 로마네스크 시대 초기에는 금을 파서 에나멜을 박아 넣는 샹르베(champleve)의 기법이 발달하였다. 13세기에는 그 탁월한 누금세공에다 자연의 나뭇잎을 모방한 금조각(金彫刻)이나, 새와 짐승을 조그맣게 주조한 것들을 첨가하여 더 호화롭게 장식하였다. 13세기 말에는 금의 표면에 음각(陰刻)하고 거기에 투명한 칠보유(七寶釉)를 부어 넣는 칠보기법(bassetaille)이 창안되었다.
3. 16세기
16세기 후반에는 경질(硬質)의 돌에 칠보나 보석으로 장식한 금을 장식한 그릇들이 만들어졌다. 고딕 시대의 형태를 계승한 귀금속공예는 유럽 전반에 걸쳐 발전되었다. 바로크 시대에는 이형(異形)장식(裝飾)형태가 나타났다. 나무의 뼈대 위에 은판을 달아서 구성한 은제(銀製)가구(家具)도 이 무렵에 많이 만들어졌다.
4. 18세기
다른 나라에서는 두드려 성형하는 방법을 쓰고 있을 때, 프랑스에서는 형(型)을 만들어 주조한 것을 장식하였는데, 디자인이 훌륭하고 주조와 조금(彫金)의 기술이 크게 발달해 있었다. 영국의 아담 양식의 은기는 공업적 방법의 도입으로 크게 성과를 올렸다.
5. 19세기
나폴레옹 원정은 프랑스 패션을 다시 유명하게 하여 앙피르 양식이 전 유럽에 퍼졌다. 중엽까지 종래의 여러 가지 양식을 받아들여 융합 구성한 빅토리아 양식이 생겼다. 후반에는 귀금속세공이라는 기능도 공업화 되었다. 공업화에 맞서 윌리암 모리스나, 아르 누보(art nouveau)의 양식과 관련을 가지는, 수공(手工)예 부활의 흐름은 독창적인 작품을 만들어내는 방향으로 유도되었지만 성과는 별로 없었다.
6. 20세기
공업의 발달 추세에서 물러나 소수의 공예작가들이 독립된 공방(工房)을 가지고 예술적으로는 훌륭한 작품을 만들고 있으나, 대세는 현대 기계에 의한 단조, 압형(press), 선반가공, 금속피복 등의 기법인 진공증착, 기계연마 등을 사용하는 공장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7. 마야, 잉카의 귀금속공예
중남미에 정착하고 있던 이들은 일찍이 금공기술이 발달하였다. 16세기 신대륙이 발견되었을 때에 이미 그들은 냉단법(冷鍛法), 가열해서 무르게 만드는 법, 두들겨 튀어나오게 하는 세공, 조금(彫金)외에도 엷은 금판을 형(型)에 씌어서 두들겨 같은 모양을 만드는 법, 나무나 보석에 금을 씌어 장식하는 법, 납땜 같은 것에 숙달해 있었다. 또 금선(金線) 제조법, 납형법(蠟型法)으로 가운데가 비는 장식품 만드는 법, 누금세공이라 하는 장식법을 알고 있었다. 도금이나 금의 합금을 식물성 약산(弱酸)으로 부식시켜 금을 첨가하는 방법도 터득하여 훌륭한 장식품을 만들었다.
8. 페르시아
B.C 550년에서 B.C 330년의 아케메네스조(朝)의 금속공예는 이미 조금(金), 두드려서 성형하는 것, 주조, 보석감입(寶石嵌入) 등의 기법이 발달하였다. 고대 이란의 금속공예는 사산조 때에 최성기에 이르렀다. 형태, 장식, 기술이 매우 발달해서, 사냥이나 잔치의 풍경이 부조되어 있고, 보석세공에 칠보도 쓰고 있다.
9. 중국(中國)
전국시대(戰國時代)에 동제품의 표면에 금은상감을 하거나 도금을 하였고, 금은으로 그릇 만들기가 시작되었다. 거울, 항아리, 수레, 대구(帶鉤)의 표면에 금은판을 박아 넣어 인물, 괴수, 추상문을 정교하게 나타낸 것이 만들어졌다. 또한 인형, 잔, 괴수형의 것을 금은으로 주조하였다. 한(漢)나라 때에 기술은 더욱 발달해서 디자인도 새로운 양식이 생겼다. 그리스방면에서 유행되던 누금세공의 장신구도 만들기 시작하였다. 한나라에서 당(唐)나라에 걸쳐서 보관(寶冠)금구나 두발(頭髮)금구 등에 이와 같은 기술을 이용한 정교한 장신구가 만들어졌다. 당나라의 금은기에는 사산조 페르시아의 영향이 짙게 보인다. 송(宋)나라 때는 여전히 당나라 때를 계승한 것이지만, 명(明), 청(淸) 때에 이르면 표면적, 말초적 기교가 눈에 띄어 활력을 잃어버린 작풍이 되었다.
10. 한국의 귀금속공예
한나라의 발달한 귀금속공예품이 낙랑(樂浪)을 통해 커다란 영향과 자극을 주어, 삼국시대에 벌써 정교한 귀금속공예가 만들어졌다. 고구려, 백제, 신라의 고분에서 출토된 많은 유물들이 당시의 귀금속공예의 수준을 잘 보여주고 있다. 고구려의 공예품은 보존된 것이 많지 않지만 낙랑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위치에 있었으므로 기량이 제일 우수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백제나 신라의 고분에서 출토된 태환식(太環式) 귀걸이 등에는 정교한 누금세공으로 장식이 되어 있었다. 신라 금관이나 과대( 帶) 같은 것은 당시의 귀금속공예의 수준이 잘 나타나고 있다. 5세기에서 6세기경의 것인 보검(寶劍)의 칼자루와 칼집에 장식된 누금세공과 감입한 홍마노(紅瑪瑙)의 기법은 귀금속공예의 극치를 이루고 있다. 이런 기법이 통일신라 때에는 더욱 발달해서 지금까지 전해온 사리함(舍利函) 같은 데서 볼 수가 있다.
불교가 전해져 온 뒤로 금은은 주로 불상(佛像), 사리(舍利)구(具) 등 종교적인 내용의 것에 많이 쓰였다. 고구려의 불상은 중국의 영향이 짙게 담겨져 있다. 당시의 불상 가운데는 반가사유미륵상(迦半思惟彌勒象)의 우수한 것들이 삼국에서 만들어지고 있었다. 통일신라시대에는 귀금속공예 수준도 한결 높아졌다. 통일신라시대 때의 고분발굴의 예가 많지 않아 금관이나 과대 등의 출토품이 많지 않으나, 불교 유불인 사리함구에 우수한 금은제품이 많다. 이것은 고려에도 계승되어 금제소탑 등이 많이 만들어졌으며, 정교한 음각, 양각이나 감석세공의 아름다운 금은기(金銀器)가 나왔다. 금이나 은으로 실처럼 가는 선을 기물 표면에 상감한 금은입사기법으로 장식하는 것도 발달하였다. 금을 여러 문양으로 투각(透刻)하고 거기에 정교한 음각과 부조(浮彫)로 기품 있는 장식구를 만든 것이 많이 남아 있다.
참고문헌
▷ 김종태(1990), 한국수공예미술, 예경
▷ 데이비드A.라우어, Design Basics 조형의 원리, 예경
▷ 야나기 모네요시, 공예문화
▷ 창작공예의 이론과 실제, 신광출판사
▷ 천은천·김연수(2003), 금속공예, 솔
▷ 최공호(1992) 전통의 창조적 구현, 디자인과 공예통권 163호, 서울 디자인과 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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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1.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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