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의이해_감상문_고인돌탐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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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사의이해_감상문_고인돌탐험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답사에 앞서

Ⅱ. 본론
1. 거석문화의 신비를 찾아서
2. 고인돌이란?
3. 삼거리 고인돌군
4. 부근리 고인돌
5. 오상리 고인돌군

본문내용

지는 모르지만, 넓은 복판에 홀로 서있는 고인돌이 여러 가지 추측을 연상케 한다.
강한 권력을 가졌던 부족장의 무덤 이였을 수도 있고, 마을의 제사를 지내던 단으로 사용이 되었을 가능성도 있고, 또는 묘역을 상징하는 묘표석으로 묘역 조성집단의 권위와 위용을 드러내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위치상 평지이기 때문에 집단으로 움막을 짓고 지냈던 마을의 경계점을 표시했던 묘표석과 제단으로 사용 되었을 것이란 생각이 더 강하게 든다.
국사시간에 고인돌 하면 대표적인 사진으로 보았던 것이 바로 이 고인돌이 아닌가?
이것은 중부지방에서는 보기 드문 탁자식(卓子式) 일명 북방식 고인돌이다.
2장의 굄돌이 직사각형 돌방[石室]을 구축하고 그 위에 거대한 덮개돌[蓋石]을 얹어 놓는 형식으로, 전체지상 높이 260cm, 덮개돌의 길이 710cm, 너비 550cm로 남한에서는 가장 규모가 큰 고인돌 이라고 한다.
그런데, 북방식은 4개의 굄돌로 덮개돌을 받치고 있는 여긴 짧은 2장의 굄돌이 없는 것이 어찌 된 것일까? 뒷면에 약간 남아있는 짧은 덮개돌로 봐서는 오랜 세월을 지나오면서 파괴된 것은 아닐까 추정이 된다고도 한다.
정면에서 보았을 때 좌측 굄돌이 비스듬하게 세워 져있는 것이 언제라도 무너질 것만 같다.
원래 비스듬한건지, 시간이 지나면서 기울어진 것 인지 알 수는 없지만 어떻게 그 무거운 굄돌을 받치고 있을까?
지표면에 보이는 것보다 깊게 굄돌을 세웠을까? 그렇다면 굄돌은 얼마나 큰 것 이였을까?
그렇다고 하더라도 아직까지 버티는 것 또한 신비스럽기만 하다.
주변에 초등학교 학생들이 견학을 온 것 같다. 모두들 궁금해 하는 것은 어떻게 이 무거운 것을 여기까지 옮겨 올 수 있었을까 하는 것이다.
어떤 노인 분은 산신령이 여기에 옮겨 놓은 것이라 농담 삼아 한 예기지만, 그렇다고 해도 믿을만한 예기라 생각이 든다.
지도상으로 부근리 고인돌군 근방에 채석장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곳 역시 구릉에 가까운 곳이다.
자동차로도 1시간이상의 거리라 추측이 되며, 덮개돌의 무게가 적은 것이 2~3톤 정도이며 대부분이 5톤에서 ~ 수십 톤이 된다고 하는데 이것을 옮기기 까지 수많은 인력과 도구가 사용 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고인돌 1기를 만드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을까?
고인돌이 만들어지는 그사이에 시체보관은 어떻게 하였을까?
시체를 먼저 매장한 후에 나머지 굄돌과 덮개돌을 쌓았을까?
여러모로 많은 의문점을 가지게 된다.
그런 의미에선 이것은 정말로 강한 권력을 소유했던 지배자의 무덤 이였을까?
그렇기 때문에 정말로 당시의 사람들은 지배자가 죽은 후에도 그 강력한 힘의 영속성이 계속 존재할 것이라 믿었던 것은 아닐까?
개인적인 생각은 지배자에 대한 감사와 경의의 마음이 스스로 발동하여 이와 같은 고인돌을
탄생한 것이라 본다.
어쨌든 모두들 이 거대한 고인돌 앞에서 그 신비스러움과 경건한 마음에 모두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이다.
이곳에서 한참을 고인돌에 빠져들다가 약 2km를 달려 마지막 목적지인 오상리 고인돌 군으로 자리를 이동하였다.
5. 오상리 고인돌군
1)질서 정연한 가부장적 문화를 엿볼 수 있다.
부근리 고인돌에서 약 2km를 달리다 보면 내가면 오상리 산 125,구릉 능선 상에 위치하고 있다.
북방식 12기의 고인돌 군으로서 현재 남아있는 형태가 뚜렷하여 바로 알아볼 수 있다.
삼거리 고인돌 군 에서 보았던 것처럼 집단으로 고인돌무리가 형성되어있다.
마치 공동묘지, 또는 가족묘지 같기도 하고 맨 위쪽의 큰 고인돌을 중심으로 아래로 중, 소형 고인돌이 차례로 석여 위치한 것을 보면 일부다처제였다는 설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특징은 대부분 굄돌 4개 와 덮개돌이 가지런히 보존되어 있어서 북방식 탁자형 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총 12기가 있다고 하는데 1기는 덮개돌이 없고 1기는 덮개돌만 있다.
덮개돌만이 있는 것이 남방식이 아닐까 추정도 해본다.알림판에는 남방식, 북방식이 공존하고 있어서 학술적 가치가 크다고 하며, 유물로는 무문토기,대롱옥,반달돌칼,화살촉등이 발견되었다.
그런데 오상리 고인돌을 보니 각각 다음과 같은 느낌의 차이점을 발견하게 된다.
첫째로 삼거리 고인돌은 서민적이다라는 느낌이 들며, 둘째로 부근리 고인돌은 위엄이 있으며, 신성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오상리 고인돌을 보면 정말 깨끗하다. 신비스러움을 느끼게 된다.
딸아이는 알림판에 설명된 무덤이라는 말 때문에 무섭다고 하지만, 난 마치 고인돌의 신비함이 끌어 당기듯이 한참을 그곳에서 발걸음을 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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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1.04.09
  • 저작시기2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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