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교][이슬람교][기독교]이슬람의 역사, 이슬람의 개인주의, 이슬람교의 탄생, 이슬람교의 神(신)개념, 이슬람교의 돼지고기 금식, 이슬람교와 기독교, 이슬람교와 종교대화운동, 이슬람교 관련 시사점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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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이슬람교][이슬람교][기독교]이슬람의 역사, 이슬람의 개인주의, 이슬람교의 탄생, 이슬람교의 神(신)개념, 이슬람교의 돼지고기 금식, 이슬람교와 기독교, 이슬람교와 종교대화운동, 이슬람교 관련 시사점 분석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이슬람의 역사

Ⅲ. 이슬람의 개인주의

Ⅳ. 이슬람교의 탄생

Ⅴ. 이슬람교의 神(신)개념

Ⅵ. 이슬람교의 돼지고기 금식

Ⅶ. 이슬람교와 기독교

Ⅷ. 이슬람교와 종교대화운동

Ⅸ. 결론 및 시사점

참고문헌

본문내용

물신숭배(물질주의, 무신론적인 이념들)에 대항하여 인류를 위한 그분의 뜻을 이루고자 노력하는 종 말이다.”
1982년 2월 케냐 나이로비를 방문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카두나(Kaduna)에서 그리스도인들과 무슬림들이 다함께 “자비로운 한 분 하느님의 태양 아래” 살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킨 뒤, 그리스도가 준 이웃사랑의 덕목(마태 22:37-39참조)과 관련, 무슬림들의 “성서도(하느님에 대한) 믿음의 계명과 함께 선행을 통해(그 믿음을 증명해) 보여라”(꾸란 5:12 등 참조)고 촉구했다는 사실을 부각시켰다. 교회 역사상 처음으로 교황이 꾸란을 ‘성서’라고 불렀을 뿐만 아니라 직접 그 내용을 인용했던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 자리에서 이루어지기로 계획되었던 현지 무슬림 지도자들과의 만남은 그들의 내부적인 사정으로 무산되었다. 이는 두 종교 사이의 대화가 순탄치만은 않다는 것을 보여준 상징적인 일화였다.
한편 개신교 측에서도 콜롬보 대회에 대한 반향(反響)으로 독일, 필리핀 등 세계 각지에서 그리스도인과 무슬림들이 함께 참여하는 조직 혹은 모임이 결성되어 일선 공동체 사이의 대화와 협력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유럽 차원에서는 영국 버밍험 셀리 오크(Selly Oak) 대학 부설 ‘이슬람 및 그리스도인 무슬림 관계 연구소(Centre for the Study of Islam and Christian-Muslim Relations)’에서는 양측의 학자들이 공동으로 연구활동을 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이 순조롭게 추진되지만은 않을 것이다. 공동체에 축적된 역사적 반목과 갈등의 앙금, 그리고 양 진영에서 각각 ‘전의(戰意)’를 가다듬고 있는 다양한 형태의 근본주의적 저항 때문이다. 한편에서는 ‘이슬람’의 부흥을 위해서라면 폭력도 불사하겠다는 전사(戰士)들이, 다른 한편에서는 이슬람을 “종말론적 현상” 혹은 “적그리스도의 유혹”으로 저주하는 근본주의자들이 다양한 형태의 각오를 ‘지고한 분’의 이름으로 다지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와 이슬람이 세계적으로 규모가 가장 큰 2개의 종교공동체를 이루고 있다는 점과 이 두 종교가 공히 사회정의와 평화를 이상으로 삼고 있다는 사실을 놓고 볼 때, 교회와 무슬림 공동체 사이의 관계개선을 위한 노력은 역사적으로는 물론 신학적으로도 중대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에 역행하는 종교적 쇼비니즘이 얼마나 높이 고개를 들지, 이 문제는 주로 종교외적 요인, 즉 정치, 경제, 사회적인 변수에 의해 좌우될 것이다. 그러나 종교대화운동, ‘풀뿌리 종교인들’ 사이의 화해와 협력, 더 나아가 보다 정의로운 사회를 위한 노력은 내부적인 각성이 없이는 결실을 거두지 못할 것이다. 이는 두 종교공동체 지도자들은 물론 일반 교인들이 상대방의 믿음의 실체를 이해하고, 진심으로 인정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누구도 자신의 신앙의 자[尺]로 타인의 신앙을 잴 수는 없다. 참된 신앙은 ‘스스로 정당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1948년 12월 10일 파리에서 채택된 UN 세계인권선언의 근본정신이기도 하다.
관용과 선린의 정신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한편으론 신앙의 선조들이 지어놓은 역사적 부채를 줄이고, 다른 한편으론 근본주의적인 동료 교인들을 설득하기 위한 노력일 것이다. 비록 이슬람이 직접 거론되지는 않았으나, 2000년 3월 12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바티칸 미사를 통해 ‘지난날 교회가 저지른 범죄’를 고백하며 용서를 구한 것도 이러한 미래지향적인 노력의 일환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Ⅸ. 결론 및 시사점
다원주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는 현 시점에 여러 종교와 사회의 다변화는 종교 간의 접촉이 다양해지고 더욱 많아지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세계 3대 종교에 속하는 기독교와 이슬람교는 이러한 접촉 현상이 이제 비단 한 지역의 일만으로 되지는 않고 범세계적인 상황으로 되었다. 약 10억으로 추정되는 기독교의 인구와 16억으로 추정되는 이슬람교의 인구는 가히 이런 상황을 짐작케 한다. 특히 두 종교가 유일신이라는 같은 특성과 근원지의 지리적 위치의 동일성과 성경과 꾸란의 유사성과 상이성에 대한 해석과 의미의 수용은 여러 가지 충돌의 요인이 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기독교의 성부성자성령 하나님의 삼위일체 신관과 이슬람교의 유일신관 -Tauhid- 에서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논란의 소지로 지금까지도 계속되는 신의 대한 용어를 보면 개역 성경에서는 ‘하나님’과 ‘여호와’로 칭하고 있으며, 아랍어 꾸란에서는 ‘알라’라 칭하고 있고 한국어판 꾸란에서는 ‘하나님’이라 표기하고 있다. 두 종교가 ‘하나님’용어를 같이 사용하는 것(영어판 역시 God 으로 같이 사용)으로 인해 ‘하나님’과 ‘알라’를 같은 신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다르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아 있다. 또한 하나님의 개념에 대한 성경과 꾸란의 내용의 유사한 부분과 상이한 부분으로 인해 기독교와 이슬람교 상호 간의 논쟁의 여지가 끊임이 없다. 특히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기독교의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전반적인 현실과 타종교에 대한 기독교의 배타적인 성경관으로 기독교내의 이슬람교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근래에 이르러 국내 기독교의 선교적 차원에서 타종교에 대한 관심의 점차적인 부상으로 선교적 차원에서 이슬람교에 대한 이해와 지식의 추구가 일어나고 있다. 그러므로 먼저 이제까지 일반적으로 회교(회회교) 또는 모하멧교라 불려진 잘못 전해진 이름부터 이슬람교라 정립된 후 연구 되어져야 한다. 국내의 이슬람교의 세(勢)는 아직은 미약한 단계지만 세계적인 추세에서 본다면 무시할 수 없는 수(數)를 포함하기에 더욱 기독교의 무슬림에 대한 선교적인 관심이 요구된다.
참고문헌
◇ 김정위(1981), 이슬람 문화사, 서울 : 문학 예술사
◇ 박양운(1999), 그리스도교와 이슬람, 가톨릭출판사
◇ 쇼캣 모우캐리(2003), 기독교와 이슬람의 대화, 예영커뮤니케이션 출판
◇ 슈스톤 스미드, 세계의 종교
◇ 안네마리 쉼멜, 김영경 역(1999), 이슬람의 이해, 분도출판사
◇ 이원삼 외(2001), 한권으로 읽는 이슬람 1400년, 월간중앙 2001년 11월호 별책부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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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1페이지
  • 등록일2011.04.19
  • 저작시기2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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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669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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