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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예수그리스도(예수, 그리스도)의 칭호와 부활, 예수그리스도(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와 성이해, 예수그리스도(예수, 그리스도) 성령세례, 예수그리스도(예수, 그리스도)와 역사적 예수탐구, 예수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예수그리스도(예수, 그리스도)의 칭호
1. 메시야, 그리스도
2. 인자
3. 하나님의 아들
4. 지혜화 말씀, 로고스
5. 주
6. 야웨의 종, 하나님의 종
7. 구주
8. 하나님

Ⅲ. 예수그리스도(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1. 반(反) 예수파
2. 11사도
3. 비주류파

Ⅳ. 예수그리스도(예수, 그리스도)의 족보
1. 예수 그리스도와 아브라함의 관계
2. 예수 그리스도와 다윗의 관계

Ⅴ. 예수그리스도(예수, 그리스도)의 성이해

Ⅵ. 예수그리스도(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세례

Ⅶ. 예수그리스도(예수, 그리스도)와 역사적 예수탐구
1. 위로부터의 기독론
2. 아래로부터의 기독론
3. 평가
1) 위로부터의 기독론
2) 아래로부터의 기독론
4. 대안적 접근
1) 위로부터의 기독론
2) 아래로부터의 기독론
3) 어거스틴적(the Augusinian)이다

Ⅷ. 예수그리스도(예수, 그리스도)와 교회

Ⅸ.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음 16:18-19를 성서적인 근거로 본다. 그러나 콜첼만은 “예수의 종말론적 자기 의식은 오늘의 교회에 대한 생각을 배제한다.”고 잘라 말한다. 위의 구절이 오늘날 예수 자신의 말씀이 아니라는 주장은 네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서 보여지고 있다.
(1) 통계학적 논증 : 교회에 대한 두 번의 언급, 마태복음에만 기록, 이것은 매우 불리한 통계학적 수치인 것이다.
(2) 종말론적 논증 : 복음서의 예수는 종말론적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였다. 그는 교회를 형성하여 그것을 존속케 할 의도를 보이지 않는다. 요한네스 바이스는 이 구절을 “형성되어 가는 카톨릭 교회의 정신”을 반영한 것이라고 한다.
(3) 교회사적 논증 : 베드로는 실제로 초대 교회에서 지도자로서 확고한 지위를 가지고 있지 않다. 이방 선교에서 주도적으로 일한 사람은 바울이다.
(4) 심리학적 논증 : 베드로는 심리적으로 매우 불완전한 특성을 가졌다 그런 그에게 천국의 열쇠를 맡긴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이러한 네 가지 외에도 최근 초대 교회의 연구에서 초대 교회에는 유대파와 헬라파 유대인의 갈등이 있었음을 보여 준다. 결론적으로 마태복음 16: 18-19는 바울 계열의 공동체와 긴장 및 대립 관계에 있었던 베드로 계열의 유대-그리스도인들의 공동체가 그의 법통과 정통성을 주장하기 위한 관심에서 첨부된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예수의 관심사는 교회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를 에벨링 교수의 말대로 “교회의 설립자”로 볼 것이 아니라 “교회의 기초”라고 보아야 한다. 이것은 복음서의 구절로 뒷받침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예수의 사건 전체와 관련하여 말할 수 있다. 예수의 삶의 사건을 통해서 교회의 기초를 이룬 것은 다음과 같다.
(1) 예수는 특별한 사람들로 구성된 그룹을 만들 의도를 전혀 가지지 않고 먼저 이스라엘 안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고자 한다. 이 하나님의 나라는 사회적이며, 공동체적인 것이며 온 우주적인 것이다. 하나님의 종말론적 나라를 세우려 한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의 기초는 “종말론적 하나님 백성에 대한 예수의 의지”에 있다.
(2) 온 이스라엘 안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고자 하였던 예수의 활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제자들의 부르심이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의 부르심을 듣고 그의 뒤를 따르는 사람들로부터 세워지기 때문이다. 제자들에게 보장된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결합 외에 아무것도 없다. 그리스도는 부르고 제자들은 따르는 여기에 교회의 궁극적인 기초가 있는 것이다.
(3) 예수의 죽음과 함께 깨어졌던 종말론적 공동체는 그러나 그의 죽음과 함께 새롭게 탄생한다. 새 인간성의 공동체는 그의 부활로 증명되며 교회의 기초는 여기에 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을 통하여” 정초 되고 부활의 능력 속에서 실현된다. 그러므로 부활의 능력 속에서 실현되는 교회는 “십자가의 공동체”,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통하여 정초된 공동체”이다.
십자가에서 하나님은 그의 “마음”을 완전히 드러낸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공동체로서의 교회는 그 자신을 십자가로부터의 교회로, 십자가 아래에 있는 교회로, 그리고 십자가 그림자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의 연대 속에서 있는 교회로 이해한다.” 교회는 철저히 십자가의 교회인 것이다.
Ⅸ. 결론
교회(기독교)의 진리는 오직 항상 역사적으로 중재되는 형태 속에서만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내용과 형식을 쉽게 분리할 수 없다. 성서이해와 교리, 신학 등도 그렇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신앙의 변화와 재해석의 요구가 단지 외부에서 강요된 것인가? 아니면 예수의 복음에서 생겨난 것인가? 또 어느 한도까지 변화가 요구되는 것인가? 교회의 변화와 갱신의 필요성은 단지 외부에서 주어진 것이 아니라, 바로 예수의 요구와 선포로부터 주어진 것임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예수의 ‘회개요구’: 예수의 회개요구(마 4:17, 막 1:15)는 단지 부정적으로 죄로부터의 돌이킴만을 요구하는 게 아니라, 사고와 행동 전체의 전환을 요구한다. 회개는 마음만의 돌이킴이 아니라 전 인간의 포괄적, 전체적 방향전환이다. 그리고 회개는 일회적 행위만이 아니라 하나님과 또 이웃을 향해 마음을 여는 계속적인 태도이다. 바리새인들과의 논쟁에서 예수는 그들의 자기의(自己義), 전통-형식에 대한 병적인 집착을 비난했다. 왜냐하면 이것은 하나님과 이웃의 새로운 요구에 귀가 멀게 만들기 때문이다.
예수의 ‘다가오는 하나님 나라’의 선포: 다가오는 하나님의 나라에 견주어 볼 때, 지상의 모든 것은 잠정적이고 불완전한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끊임없이 방향전화, 개혁, 갱신, 자기비판의 요구 앞에 서 있다. 교회는 스스로 하나님과 역사 속의 하나님의 행동에 대해 폐쇄적일 수 있는 위험에 항상 처할 수 있다. “세상의 소금이 되라”, “십자가를 지고 자기를 따르라”, “한 알의 썩어가는 밀알이 되라”는 예수의 말씀은 바로 자기희생, 자기포기를 요구하며, 하나님의 새로운 활동에 마음을 열어 놓을 것을 요구한다. 교회는 자기 자신을 목표로 삼아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를 증언하고 반영하는 거울일 뿐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나라를 목표로 삼는 교회는 항상 자신이 약속의 지평 위에서 움직여 나간다는 확신을 가지고 고착된 한계를 넘어서 새로운 관점, 새로운 전망을 획득해야 한다. 교회는 예수의 복음, 하나님의 나라를 완전히 다 이해했다거나 실천했다고 말할 수 없다. 교리와 신학도 진리를 향해가는 길 위의 정류소이지,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교리와 신학을 항상 심화하고 확대하도록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한다.
참고문헌
김승태(1995) / 예수교 전도 금지령 : 기독교 신앙의 자유 허용 과정에 대한 자료 II, 복음과 상황
송영찬 /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 논문
신광철(2003) / 개항기 한국사회의 그리스도교 이해, 종교연구 33
산전영임 외, 김용한 역(1982) / 선과 그리스도교, 서울 : 전망사
이찬수(2004) / 한국 그리스도교 연구 100년
정승우(1975) / 예수, 역사인가 신화인가, 책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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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1.05.20
  • 저작시기2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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