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의 성립배경, 기구, 조직 및 EU통상정책의 특징 및 EU정책결정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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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 유럽연합(EU)

Ⅰ. EU의 성립배경

1. 유럽경제협력기구
2. 유럽이사회
3. 유럽석탄철강공동체
4. 유럽방위공동체의 실패
5. 유럽경제공동체
6. 유럽공동체의 확대

Ⅱ. EU의 기구 및 조직

1. 이사회
2. 집행위원회
3. 정상회의
4. 유럽의회
5. 구주사법재판소
6. 기타
1) 회계감사원
2) 경제사회위원회(EESC)
3) 지역위원회
4) 유럽중앙은행

Ⅲ. EU의 주요 공동정책

1. 일반 공동정책
2. EU정책의 특성

Ⅳ. EU 통상정책의 특징

Ⅴ. EU 정책결정과정

1. 협의절차
2. 협조절차
3. 공동결정절차
4. 동의절차

Ⅵ. EU의 완전통합화 과정

1. 통합으로의 과정
2. EUROPE 1992와 마스트리히트 조약
3. EURO 출현과 통화 단일화

본문내용

만들어 버렸는데, 이러한 혼란 속에서 사회주의가 확산될 것을 우려했던 미국은 이른바 마샬 플랜에 의해 130억 달러 상당의 원조를 제공하였다. 이때 이 원조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국가간의 협력을 도모하기 위하여 유럽 16개국으로 구성된 유럽경제협력체(OECD: Organization for European Economic Cooperation)가 설립되었다.
그러나 OECD는 마샬플랜이라는 특별한 임무의 수행을 위해 조직된 단체인 만큼 장기적으로 유럽 국가들의 경제협력을 이끌어갈 만한 역량은 갖추지 못했다. 이에 보다 강력한 기구의 등장이 요구되어졌고 그 결과 새로이 출범한 것이 EEC와 EFTA이다.
유럽공동체(EEC: European Economic Community)는 로마조약(Treat of Rome)의 부산물로서 '단일시장의 구축과 정책조화'라는 목적을 가지고 1957년에 설립되었다. 벨기에 프랑스 이탈리아 룩셈부르크 서독 네덜란드의 6개국으로 출발한 EEC는 이후 1967년에 ECSC(유럽석탄철강공동체)와 EURATOM(유럽원자력공동체)을 통합하면서 명칭을 유럽까지 협력을 확대시켜 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EC는 1981년에 그리스를, 1986년에는 포르투갈, 스페인을 새로이 회원국으로 받아들임으로써 그 세력을 확장시켜 나갔다.
유럽에게 있어 1980년대는 금욕과 인내의 시대였다. GATT의 우루과이 라운드에서는 미국에게 농업문제로 주도권을 넘겨줬고, 일본은 거품 경제의 절정기. 한편, 같은 시기의 유럽경제는 정체에서 정체로 이어지는 상황에서 간신히 미 일 2대 경제대국의 진입을 저지하고 있던 상태였다. EC의 시장통합도 국가별 비관세장벽이 족쇄가 되어 도저히 단일시장이라고 부를 수 없는
상태였다.
이대로 가다가는 통합이 공중분해 되어버릴 것이라는 위기의식을 느낀 들로르 집행위원장이 이끄는 유럽위원회는 1985년, 통합에 이르기까지의 구체적인 대책을 제시했다. 이것이 EU(유럽연합)를 향한 첫 걸음이 되었다.
유럽위원회에서는 EU의 성립을 저지하는 세 가지 비관세장벽이 명시되었고, 분야별로 가멩국이 철폐해야 할 282조의 규제조항이 제시되었다. 92년말에는 지적소유권 문제와 부가가치세, 기업과세 등, 타협하기 힘든 22개 항목을 제외한 거의 모든 규제항목의 철폐가 완료되었다. 유럽의 시장통합을 향해 크게 전진했다.
2. EUROPE 1992와 마스트리히트 조약
EC는 1991년 기준으로 인구 약 3억 5천 만명과 GDP 6.8조 달러에 달하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경제블럭이다. 그러나 1995년 EFTA국가들의 신규가입에 따라 EU는 NAFTA를 능가하는 최대의 블록이 되었다.
그러나 1980년 초는 EC에 있어서 매우 힘든 시기였다. 1975-80년대의 EC
평균성장률은 2.7%에 달했으나 1980-85년에는 그것이 1.4%로 급강하하였던
것이다. 반면 같은 시기의 미국은 2.2%와 2.5%를 기록했고 7.6%와 3.8%의
성장을 하였다. 이 같은 결과는 유럽인들에게 '고도성장을 위해서는 단순한
관세철폐 이상의 무엇'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생겨나게 하였다.
마침내 1985년 유럽집행위원회는 EC를 보다 통합화된 시장으로 발전시키
기 위해 필요한 282개의 제안을 담는 백서를 발간하였다. 상품, 서비스, 자본
외에 노동이동의 자유화 등을 담은 1985년의 백서는 그 최종시행일을 1992
년 12월 31일로 잡고 있었기 때문에 'EUROPE 1992'라고도 통용되었다.
EUROPE 1992의 실현은 EC가 곧 공동시장으로 출발함을 뜻하는 것이다.
3. EURO 출현과 통화 단일화
이와 같이 유럽통합은 결과적으로 매우 빠른 페이스로 추진되었으나, 상식
적으로 생각해도 세율도, 통화정책도, 외교정책도, 국민감정도 각기 다른 나라
에 하나의 법률, 통화, 의회를 도입한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EU도
발족 당시부터 여러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특히, 통화단일화는 최후까
지 EU 가맹국을 괴롭히던 문제였다. 그 첫 번째 관문이었던 EURO(유로)의
도입은 1999년 1월1일에 달성되었는데, 2001년까지의 시점에서는 국제상거래의 결제통화로서 장부상으로만 사용되고 있을 뿐이며, 실제로 EURO화로 물건을 구입할 수 있게 되었으며, 현재 모두들 큰 혼란 없이 변화에 적응해나가고 있는 듯하다.
통화단일화를 향한 준비는 실은 1970년부터 시작되었다. 유럽위원회는 70년에 3단계로 구성된 경제통화동맹(EM: European Monetary System) 8개년 계획을 제출, 10년 후인 80년까지 통화 단일화를 도입하는 통화기구를 설립하는 것 등이 제안되었다. 그렇지만 71년에는 미국의 신겅제정책으로 금본위제가 정지되고, 73년에는 고정환율제가 변동환율제로 이행했으며, 게다가 제1차 오일 쇼크로 인한 경제혼란 등으로 인해 도저히 차분하게 통화단일화를 논할 분위기가 아니었기 때문에, 결국 74년 EC 수뇌는 80년까지 통화동맹 결성을 단념했다.
그러나 화폐 단일화의 꿈은 사라지지 않아, 1987년에는 다시 유럽통화제도(EMS: European Monetary System) 구상을 채택한다. 이 구상은 각 EC 가
맹국의 통화환율을 고정시키기 위해 협력하여, 시장에 개입할 것, EC의 공통
통화로서 유럽통화단위(ECU: European Currency Unit)를 창출하는 것이 현
안으로 올랐으나, 영국이 환율협정에 반대하는 등, 처음부터 난항이었다. 그러
나 끈질긴 교섭결과 81년에 유럽통화단위(ECU)가 EC의 공식표시단위로 채용되어 각 가맹국의 준비자산, 결제수단으로서는 물론이고, 민간 금융시장에서도 이용되게 되었다. 1988년 EC 수뇌는 통화단일화 달성의 구체화를 위해 통화전문 위원회(들로르 위원회)를 설치 (1) 94년까지 지역 내 자본이동의 완전 자유화를 달성하고, 전가맹국은 환율협정에 참가할 것, (2) 94년 이후에 유럽중앙은행 창설을 위한 구체적인 준비를 개시하고, (3) 93년에 최종적인 고정환율을 결정한 후에, (4) 가맹국의 과반수의 참석으로 일단, 참가국만으로 99년 1월1일에 단일통화인 EURO화를 발행하기로 합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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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1.09.21
  • 저작시기2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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