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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한국고대국가

Ⅱ. 한국고대사회

Ⅲ. 한국고대신화

Ⅳ. 한국고대도서관
1. 고조선과 한사군 시대
2. 삼국 시대와 통일 신라 시대
1) 고구려(B.C.37-A.D.667)
2) 백제(B.C.18-A.D.660)
3) 신라(B.C.57-A.D.935)
4) 발해(A.D.699-926)
5) 후삼국 시대(A.D.901-918)
3. 고려 시대(A.D.918-1392)
1) 내서성, 비서성, 비서사, 비서감, 전교서, 전교사
2) 수서원
3) 문덕전, 수문전, 어서방, 어서각, 비서각, 비각, 보문각, 보문서
4) 자신전, 경덕전, 연영전, 집현전
5) 중광전
4. 조선 시대(A.D.1392-1910)
1) 교서감, 교서관, 전교서
2) 춘추관, 예문관
3) 집현전, 보문각
4) 승문원
5) 선원전
6) 홍문관
7) 성균관, 존경각
8) 비서사
9) 문서루, 문서고
10) 융문루, 융무루
11) 세손 강서원, 춘방
12) 규장각
13) 향교와 서원 문고

참고문헌

본문내용

고려 초에는 내서성이라 칭하던 것을 위와 같은 순서로 개칭하였다. 이들은 국가 출판 기관의 구실을 했으며, 문적뿐만이 아니라 초제향문이나 판목까지도 보관하고 있었다. 그러나 인쇄 작업은 서적점이나 서적포에서 행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2) 수서원
성종 9년(990년), 왕의 교서로 서경에 설치되었는데 많은 도서를 소장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서 주목할만한 점은 당시 궁중에서만 비장하던 도서를 궁외에도 도서를 두어 신하들이 이용하게 하였다는 사실이다. 또 도서보관에 대한 고려조의 첫 기록이다.
3) 문덕전, 수문전, 어서방, 어서각, 비서각, 비각, 보문각, 보문서
이들 모두가 궁중에 있던 도서 보관 장소이다. 특히 보문각은 도서를 보관한 이외에 학사들이 모여서 강론하기도 하였다 하니 ,학사들이 보문각 장서를 열람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한편 수문전은 문덕전을 보문서는 보문각을 개칭한 것이며, 어서방, 어서각, 비서각은 동일시설인 듯 하다.
4) 자신전, 경덕전, 연영전, 집현전
자신전이 경덕전을 거쳐 연영전으로 개칭되었는데, 이자겸의 난으로 소실된 후 인종 16년(1038년)신궐의 완성으로 집현전이라 부르게 되었다. 특히 연영전은 숙종 때의 대표적인 도서관으로 왕이 친히 장서를 열람, 논의했다.
5) 중광전
고려사 숙종 6년(1101년)2월 무오도에 중광전에서 책을 열람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중광전이 고려 왕실의 장서처였음을 알 수 있다. 이때, 중광전이 보존하던 책에는 장서인 이 찍혔는데 이때의 장서인이 찍힌 책이 현재에도 전해지고 있다.(2권:통전, 중광회사)
4. 조선 시대(A.D.1392-1910)
조선은 유교를 국시로 하여 고려의 불교문화와는 다른 문화를 꽃피웠다. 태종13년(1413년)에 있은 \"태조 실록\"의 완성으로 시작된 방대한 실록 등 서적의 편찬과 서원의 형성 등은 도서 문화의 융성을 말해 주고 있으며, 집현전, 예문관, 규장각으로 이어지는 왕실 도서관은 그 방대한 도서 보유량으로 유명하다. 인쇄술과 제지술은 더욱 발달하여 이를 전담하는 부서가 생겨났으며, 중종 14년인 1519년에 이르러서는 유생들에 대한 서적의 원활한 공급을 위해 오늘날의 서점 형식의 서사까지 설치하게 되었다. 그러나 고려조와 마찬가지로 왕실 도서관에 대한 기록만이 알려져 있을 뿐이다.
1) 교서감, 교서관, 전교서
이 태조가 건국과 동시에 고려조의 전교사와 동일한 기관으로 설치한 목판 인쇄를 관장하던 곳이 교서감이다. 이는 세조 6년(1460년)주자소가 교서관과 통합되어 목판본과 활자본을 아울러 인쇄, 간행하였으며 세조12년 전교서로 개칭되었다가 다시 성종15년(1484년)에 교서관으로 개명했다. 한편 교서관에 도서를 보관하던 건물을 문무관이라 했는데 선조 25년(1592년)소장 도서와 함께 왜적에 의해 전부 소실되었다.
2) 춘추관, 예문관
원래 예문 춘추관이었다가 태종14년에 독립된 관서로 분리되었다. 예문관은 집현전 폐지 이후, 집현전 소장 도서를 인수 관장하던 중 세조 3년에는 유생들을 위하여 서적을 간행하기도 하였다.
3) 집현전, 보문각
이조 시대의 집현전은 고려 시대부터 있던 기관으로 당시 수집-보관되었던 많은 서적을 물려받은 것이다. 이는 정종2년(1400년)보문각이라 개칭되었다가 다시 집현전으로 불리었다. 세종10년(1428년)에는 장서 수의 증가에 따라 장서각을 신축하였다. 집현전은 주로 학술 연구의 중심이 되어 학술원 ,또는 한림원과 같은 역할을 하는 기관이었다. 세조2년(1456년)에 폐지되어 모든 소장 도서들은 예문관으로 이전되었다.
4) 승문원
승문원은 여러 조칙과 사대교린의 문서를 보관하였던 기관으로 도서와는 직접적인 관계는 없는 일종의 문서관이었다.
5) 선원전
선원전은 이씨 왕가 상전의 특수한 기록류를 별도로 보관하던 곳이다.
6) 홍문관
궁내의 경적을 관장하였고, 성종10년(1479)에는 예문관으로부터 집현전의 업무를 인수받아 규모가 확대되었다. 홍문관에는 서적을 보관하는 장서각이라는 건물이 따로 있었으며 서양 도서도 소장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7) 성균관, 존경각
존경각은 성균관 부속 도서관이었으며 오늘날의 대학 도서관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8) 비서사
연산군 12년(1506)내출 서적의 이장처였다. 내출 서적이란 왕이 불필요한 도서를 따로 보관토록 한 경우의 도서라 추측된다.
9) 문서루, 문서고
승문원과 유사한 성격의 각 기관이 별도로 문서 보관을 위하여 설치하였던 장소.
10) 융문루, 융무루
경복궁 내에 있던 도서를 소장하던 건물
11) 세손 강서원, 춘방
춘방은 왕세손을 모시고 강의하던 일을 맡아보던 곳으로 많은 양의 장서가 소장되었다.
12) 규장각
규장각은 일종의 왕립 연구소 내지 학술원 역할을 하다가 정조 원년(1777)에는 교서관까지 예속시켜 인쇄 ,출판 업무까지도 관장하였다. 정조 5년(1781)에는 규장각 소장의 도서목록인 \"규장각 총목\"이 완성되었는데 당시 규장각의 총장 서수는 4만 여권에 달했으며 경-사 -자-집의 4부로 분류했다. 이외에도 궁내에는 봉모당, 주합루, 망묘루, 문헌각, 옥당 등의 장서보관처가 있었다.
13) 향교와 서원 문고
서원은 사학 기관으로 중종38년(1543)주세붕이 경상도 풍기에 세운 백운동 서원이 그 효시가 된다. 이후 각 지방마다 설립되게 된 서원에는 반드시 서고가 있었고 많은 장서가 있었으며 서생들이 이를 이용하였다. 안동의 도산서원이나 풍기의 소수 서원에서 우리는 옛서원과 부속된 도서관의 자취를 엿볼 수 있다. 특히 도산서원에는 잘 정리된 도서관과 적지 않은 수효의 판본을 가지고 있어서 서원은 학교, 도서관, 그리고 출판의 일을 동시에 수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백린(1982), 한국도서관사 연구, 서울 : 한국 도서관협회
송호정(2003), 한국고대사 속의 고조선사
송기호(2003), 중국의 한국 고대사 빼앗기 공작, 역사비평
윤내현(1986), 한국고대사신론, 일지사
졸저(1993), 한국의 신화연구, 서울 : 敎文社
최광식, 한국 고대국가의 지배이데올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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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1.10.02
  • 저작시기2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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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705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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