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요약>
1장
4장
<비판>
과연 예술은 종말하였는가?
모더니즘의 종말에 대한 토대론적 대안
<논술형 문제>
1장
4장
<비판>
과연 예술은 종말하였는가?
모더니즘의 종말에 대한 토대론적 대안
<논술형 문제>
본문내용
현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이 봐주기를 바라지 않더라도 사람들은 무엇인가를 그림을 통해 보이고자 한다. 모방을 위한 것이거나 주술을 위한 것이거나 모두 시각적 효과를 거둘 수 있는 표현의 하나일 뿐이다. 또한 그림은 인간의 감각 중 시각을 통해 받아들여진다. 가장 단순한 형태의 자극이 그림이고 여기서부터 여려가지 장르로 갈라졌다. 회화는 시각예술의 기초이다. 그렇다면 위의 내용을 통틀어 모더니즘 회화 자신을 배타적으로 잘 나타낼 수 있는 가장 큰 목표는 표현일 것이다. 즉 대상이 어떤 뜻을 부여하기보다는 표현 그 자체에 중점을 두고 생각해야 한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뒤에 나오는 “예술작품은 무엇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그냥 존재해야 한다는 것”과 상통한다.
<논술형 문제>
1. 단토의 <예술의 종말의 이론>에서 보이는 것처럼 현재는 예술작품이라는 것에 대한 규정이 없고 예술사가 그것을 예술작품이라고 하겠다고 하면 그것은 곧 예술 작품이 된다. 이것이 우리 일상 생활용품과 차이점이 존재하는가? 차이점이 없다면 내가 현재 쓰는 책상, 가방, 자동차 등 모두가 예술 작품이라 명명할 수 있지 않은가? 이것에 대해 논하시오.
앤더 워홀의 <브릴로 상자>는 슈퍼마켓에 있는 상자와 외관상으로 전혀 차이가 없다. 예술작품이라며 미술관에 있는 것도 똑같은 것을 한 달에 적어도 10번이상은 가는 슈퍼마켓에서 쉽게 볼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슈퍼마켓을 갈 때마다 그 상자를 볼 때 어떤 생각을 하는가? 물론 아무 생각하지 않고 지나친다. 그 이유는 그것이 내게 주는 메시지나 감동, 미적 쾌감 등이 전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냥 단순한 박스라 보고 아무 생각을 가지지 않는다. 그러나 미술관에서 작품이라 전시되어 있는 <브릴로 상자>를 보면 어떠한가? 그때도 우리는 그것을 보며 단순히 ‘박스가 있네’ 라며 지나치는가? 대부분의 사람이라면 그것을 보고 단순히 그냥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일단 그것을 보며 의문을 가진다. ‘이 박스가 왜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을까? 뭔가 내가 보지 못한 아름다움이 여기 숨어 있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작가가 이것을 통해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전달하고 싶은 의도가 있기 때문은 아닐까?’ 라는 의문을 가지게 되고 그 작품을 조금 더 주의깊게 관측하게 된고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 애쓰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이 같지만 다른 두 상자가 보여주는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게 된다. 전자는 우리가 보고도 별 생각없이 지나치게 만들었던 것이고, 후자는 우리가 좀 더 주의깊게 보고,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우리 생활용품들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생활하면서 우리 주변에 있는 많은 물건들을 보면서 그것을 유심히 살펴보며, 생각해보고 깨달음을 얻기 위해 노력해 본 적이 거의 없을 것이다. 따라서 그것들은 전자의 브릴로 박스처럼 작품이 아니라 단순한 생활용품이 된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평소에 지나쳤던 그런 생활용품들이 우리에게 보여주고자, 또는 전달하고자 하는 무엇인가를 가지게 되었을 때, 그리고 그것을 우리가 느끼게 되었을 때, 그것은 생활용품을 넘어 예술 작품이 되는 것이다. (김현준)
2. 바자리적 구조 하에서의 서양 회화의 발전과 모더니즘으로의 이행은 어떻게 다른지 1000자 내외로 서술하시오.
모더니즘 이전의 그림 전략은 하나의 거대한 내러티브, 미메시스에 의해 지배를 받아왔다. 각 시대의 미술 사조는 전 시대의 재현을 자신들의 작품과 비교하고 필요에 따라 변형시키면서 진보적 발전이라고 규정지어지는 형태를 갖는다. 이러한 발전의 틀 안에서 바자리 내러티브 시대는 자신에 대한 물음을 달기보다는 외부세계의 탐구에 힘써 왔다. 사소한 요소만이 약간씩 달라졌을 뿐 그 기저에는 미메시스 개념이 자리잡고 있었다. 마치 자신의 뒷몸을 끌어와 앞으로 나아가는 벌레처럼 일정한 흐름의 발전을 이루었다. 반면에 모더니즘은 바자리적 구조의 끝자락에서 자신에 대한 비판을 원동력으로 삼아 발전해 나갔다. 바로 모더니즘이라는 문화적 총체 안에서 내적 발전을 이루어 나간 것이다. 그린버그에 의하면 이러한 자기 비판적 성향은 칸트와 함께 시작되었고 회화를 가장 모던하게 만들어 주는 것은 자기 자신에게만 배타적으로 존재하는 요소만 드러내어 얻어진다고 설명하였다. 종합하여 보면, 바자리적 구조에서의 미술 발전은 직선적 발전을 이루었고 모더니즘으로 넘어가는 시기는 분절적 발전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또 모더니즘 자체에서 미술은 자기 비판을 통해서 그 추진력을 얻는다. (강승관)
<논술형 문제>
1. 단토의 <예술의 종말의 이론>에서 보이는 것처럼 현재는 예술작품이라는 것에 대한 규정이 없고 예술사가 그것을 예술작품이라고 하겠다고 하면 그것은 곧 예술 작품이 된다. 이것이 우리 일상 생활용품과 차이점이 존재하는가? 차이점이 없다면 내가 현재 쓰는 책상, 가방, 자동차 등 모두가 예술 작품이라 명명할 수 있지 않은가? 이것에 대해 논하시오.
앤더 워홀의 <브릴로 상자>는 슈퍼마켓에 있는 상자와 외관상으로 전혀 차이가 없다. 예술작품이라며 미술관에 있는 것도 똑같은 것을 한 달에 적어도 10번이상은 가는 슈퍼마켓에서 쉽게 볼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슈퍼마켓을 갈 때마다 그 상자를 볼 때 어떤 생각을 하는가? 물론 아무 생각하지 않고 지나친다. 그 이유는 그것이 내게 주는 메시지나 감동, 미적 쾌감 등이 전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냥 단순한 박스라 보고 아무 생각을 가지지 않는다. 그러나 미술관에서 작품이라 전시되어 있는 <브릴로 상자>를 보면 어떠한가? 그때도 우리는 그것을 보며 단순히 ‘박스가 있네’ 라며 지나치는가? 대부분의 사람이라면 그것을 보고 단순히 그냥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일단 그것을 보며 의문을 가진다. ‘이 박스가 왜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을까? 뭔가 내가 보지 못한 아름다움이 여기 숨어 있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작가가 이것을 통해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전달하고 싶은 의도가 있기 때문은 아닐까?’ 라는 의문을 가지게 되고 그 작품을 조금 더 주의깊게 관측하게 된고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 애쓰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이 같지만 다른 두 상자가 보여주는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게 된다. 전자는 우리가 보고도 별 생각없이 지나치게 만들었던 것이고, 후자는 우리가 좀 더 주의깊게 보고,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우리 생활용품들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생활하면서 우리 주변에 있는 많은 물건들을 보면서 그것을 유심히 살펴보며, 생각해보고 깨달음을 얻기 위해 노력해 본 적이 거의 없을 것이다. 따라서 그것들은 전자의 브릴로 박스처럼 작품이 아니라 단순한 생활용품이 된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평소에 지나쳤던 그런 생활용품들이 우리에게 보여주고자, 또는 전달하고자 하는 무엇인가를 가지게 되었을 때, 그리고 그것을 우리가 느끼게 되었을 때, 그것은 생활용품을 넘어 예술 작품이 되는 것이다. (김현준)
2. 바자리적 구조 하에서의 서양 회화의 발전과 모더니즘으로의 이행은 어떻게 다른지 1000자 내외로 서술하시오.
모더니즘 이전의 그림 전략은 하나의 거대한 내러티브, 미메시스에 의해 지배를 받아왔다. 각 시대의 미술 사조는 전 시대의 재현을 자신들의 작품과 비교하고 필요에 따라 변형시키면서 진보적 발전이라고 규정지어지는 형태를 갖는다. 이러한 발전의 틀 안에서 바자리 내러티브 시대는 자신에 대한 물음을 달기보다는 외부세계의 탐구에 힘써 왔다. 사소한 요소만이 약간씩 달라졌을 뿐 그 기저에는 미메시스 개념이 자리잡고 있었다. 마치 자신의 뒷몸을 끌어와 앞으로 나아가는 벌레처럼 일정한 흐름의 발전을 이루었다. 반면에 모더니즘은 바자리적 구조의 끝자락에서 자신에 대한 비판을 원동력으로 삼아 발전해 나갔다. 바로 모더니즘이라는 문화적 총체 안에서 내적 발전을 이루어 나간 것이다. 그린버그에 의하면 이러한 자기 비판적 성향은 칸트와 함께 시작되었고 회화를 가장 모던하게 만들어 주는 것은 자기 자신에게만 배타적으로 존재하는 요소만 드러내어 얻어진다고 설명하였다. 종합하여 보면, 바자리적 구조에서의 미술 발전은 직선적 발전을 이루었고 모더니즘으로 넘어가는 시기는 분절적 발전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또 모더니즘 자체에서 미술은 자기 비판을 통해서 그 추진력을 얻는다. (강승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