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화기가사와 고전과의 관계
본 자료는 4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해당 자료는 4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4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본문내용

는 관계없는 국민가요로써 원류를 이어갔다. 그러나 개화기시가는 가사체 문학을 계승하면서도 당대의 미적 실현을 이룩했고 다음 시기 시가문학의 바탕이 되었다고 평가된다.
임진왜란이 문학향유층 확대에의 기본 토대를 마련했으며, 대내외적인 정치적·역사적 변동으로 인해 조선의 정치세력은 위정척사파와 개화파로 나뉘고 전통유가사상과 위정척사파의 사상은 개화기시가의 유교적 봉건사상의 잔재와 유교 윤리적 주제를 낳았고 개화파의 개화사상은 개화기시가의 중심 주제로 안착되었다.
16C의 3당시인, 17C의 유몽인·이수광·허균, 18C의 시조집 및 민요집, 19C의 박지원·정약용·이옥의 계보를 이으며 예부터 시작된 문학에의 민족의식은 역사의 흐름 속에 점점 확고해져 외래문화의 도가니와 이후 전개된 일제의 강압 속에서도 우리 민족과 함께 살아남았으며, 자칫 우리의 자주성을 잃을 수도 있는 개화를 법고창신의 개화로 이끌었다.
18세기 실학사상의 발전 형태인 개화기의 개화사상은 개화기 내에서도 자체적인 발전을 꾀했는데 이것은 『독립신문』과 『대한매일신보』의 개화기시가 내용의 차이에서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이 개화사상의 발전에는 독립협회에서 주관한 만민공동회,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의 간섭 강화와 을사조약 체결됨으로 인한 민중들의 분노, 그리고 애국계몽단체들의 계몽활동을 위해 만들어진 언론매체의 근본적 성격이 일조하기도 했다.
개화기를 맞아 최초의 신문인 『한성순보』를 시작으로, 최초의 근대식 신문 『독립신문』, 국한문혼용체를 쓰며 근대문학 형성에 영향을 미친 『황성신문』, 순국문체를 쓴 『제국신문』, 민족지 『대한매일신보』 등과 같은 다양한 신문들과 많은 잡지가 발간되었다. 개화기시가의 보급과 대중화에는 언론매체의 공이 컸는데, 언론매체에 게재된 개화기시가의 성격은 크게 무서명시가와 유서명시가의 특성에 따라 나뉜다. 언론인에 의해 창작된 무서명시가의 비판성은 홍길동전, 판소리, 탈놀이, 연암의 한문단편소설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으며 길게는 고려가요의 「쌍화점」, 의인체소설 「수성지」, 가전체문학에서까지 미약하나마 비판성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반면 일반인에 의해 창작된 유서명시가의 민중성은 사설시조·서사가사·규방가사·기녀가사와 판소리의 창작에서 시작된 민중 및 多계층의 문학 향유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허균의 常語중시 사상과 홍만종의 『순오지』, 서포 김만중의 『서포만필』은 「사씨남정기」「홍길동전」의 존재와 함께 우리말 문학의 가치를 높이 평가했는데 이것은 유길준의 『서유견문』『1895년』에 큰 영향을 미친다. 서유견문의 발표로 인해 우리 문체와 사회는 큰 변환점을 맞는다. 근대식 교육기관의 국문교육 실시, 신문 및 잡지의 국한문혼용·언문일치 사용, 개화기시가의 빠른 전파, 신체시 형식의 발달은 모두 구어체로 근접한 문체 변화가 이끌어낸 산물이다.
또한 근대적 교육기관 및 교회당이 설립되어 개화기시가가 교가 또는 찬송가로 전국곳곳에서 불렸고, 평등사상과 서구적 음을 지닌 개화기시가의 자체적 특징에 의해 개화를 꿈꾸는 민중들의 태도와 들어맞아 쉽게 유행을 하게 되었다.
이후 신체시가 나타났지만 민중들 사이에는 개화기시가가 오랜 시간 유행하였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근대화에의 열망이 너무도 넘쳐, 특별한 제재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임진왜란 후 생산된 문학인 조위한의「최척전」, 권필의「주생전」, 유몽인의『어우야담』에 수록된「홍도」에서 나타난, 사회의 변동이 개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면모와, 사실주의의 효시인 유몽인·이수광·권필·허균의 현실 문제를 중시하는 태도 및 노계 박인로의 가사 이래 나타난 사회현실을 사실적으로 반영하는 태도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또한 서포가 “진수의 삼국지보다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를 볼 때 감정이 움직인다”하며 칭송한 ‘솔직한 표현’, 허균이 감정을 중시하여 주장한 ‘情의 문학’이나, 고려가요나 기생문학·규방문학·서간체문학과 같은 우리 여류문학에서 볼 수 있던 진솔한 감정표현도 거의 사라지고, 개화기시가는 오직 개화에의 감정을 표현하는 추상적인 국민적 행동양식으로만 발전되었다는 사실이다.
비록 개화기시가가 놓친 문학적 일면도 있지만 위에서 살펴본 바에 따르면, 역사는 비단 개화기의 단면적 인식에서 파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실학사상에서 개화사상의 면모를 찾아볼 수 있고, 조선말 문학에서 개화기시가의 성격을 찾아볼 수 있으며, 홍만종 및 서포의 글에서 언문일치운동의 모태를 찾아볼 수 있듯이, 개화기시가의 생성은 개화기 전후의 대내외적 상황에만 의한 것이 아닌, 오랜 시간에 걸쳐 우리 민족 내에서 자체적·자주적으로 발전한 결과인 것이다.
이와 같은 변화와 발전 현상은 개화기 내에서 『독립신문』에서 『대한매일신보』로의 변화양상과 일맥상통한다. 이렇듯 사회는 개화기시가에 영향을 주었고 개화기시가 또한 사회에 영향을 주었다. 이것은 비단 이 시대에서만 볼 수 있는 현상은 아닐 것이다. 즉, 모든 사회와 문학은 공시적 또는 통시적으로 상호간에 영향을 주고받으며 이 영향은 곧 현대에까지 미친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조동일 교수는 “문학사에 단절은 존재하지 않고, 문학사란 계승관계를 살피는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렇게 인간의 의식은 시대에 따라 점진적으로 변화하며 의식의 변화란 결국 문화의 변화이며 이것이 바로 문화와 사회의 역동적인 관계를 말해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면에서 본다면 아무리 급격한 변혁의 시대라고 할지라도, 전통적인 사상 또는 변화의 시기 이전에 스며들어 있던 사상은 비판의 대상은 될지언정 소멸하거나 단절되지는 않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Ⅴ. 참고문헌
김윤식·김현 /「한국문학사」- 개정판 / 민음사 / 1996
박정호 /『개화기 가사의 전환기적 성격 고찰』/ 우리어문학연구 - 한국외국어대학교 사범대학 한국어교육과 / 1991
방송통신대학교 편집부 / 보충교재 -「현대문학사」/ 『주』예하미디어 / 2006
장덕순 /「이야기 국문학사」/ 새문사 / 2001
조연현 /「현대문학개관」/ 반도출판사 / 1978
홍석 著 ; 한국민중사연구회 編 / 풀빛 70「한국민중사 Ⅱ - 근현대편」/ 풀빛 / 1986
  • 가격3,000
  • 페이지수12페이지
  • 등록일2011.12.26
  • 저작시기2011.6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723139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