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소의 사회계약론 & 홉스의 리바이어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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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루소의 사회계약론 & 홉스의 리바이어던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홉스-인물과 시대
2. 루소-인물과 시대
3. 홉스 TEXT 분석
4. 루소 TEXT 분석
5. 이론의 비교와 한계에 대하여

본문내용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권리에 의해 통치되는 것이 아닌 개개의 인간들의 동의와 계약으로부터 나온 권리에 의해 통치되는 국가를 의미한다. 홉스의 이론에서 국가 통치권자의 권리는 절대적이다. 영구적이며, 무제한이고, 불가분한 것이기에 분권도 할 수 없다. 국가 통치에 잘못이 있을 경우에도, 권리를 양도한 개개인에게 책임을 묻게 된다. 잘못된 통치자에게 권리를 양도한 것 자체가 잘못이라는 것이다.
루소의 국가관은 다르다. 사회 계약을 통해 결합한 전체가 바로 주권자이며, 정부란 이런 주권조직에 종속된 집행 권력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이는 국민 전체인 주권자가 바로 법의 실질적 원천이며, 정당성의 근거가 됨을 의미한다. 절대적인 권력자를 바라지 않고, 직접 민주주의를 추구하였다.
루소는 최고 무제한적인 권리를 가지는 주권이라도 그 한계가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사회계약이 인민에 대하여 주권자에게 부여한 권리는 공공의 유익을 넘어서는 안 된다.’ 공공의 유익, 즉 공동선은 결국 일반의지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결국 주권이란 일반의지의 행사이며, 일반의지에 그 한계가 정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루소도 완벽한 평등이나 민주주의를 주장한 것은 아니다. 그는 절대 다수의 의사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였고, 로마의 독재관 제도 독재관은 로마 국법에서 유일하게 인정되어 있던 단독행정직으로, 국가가 위기에 쳐했을 때, 단독으로 국가 정책을 결정할 수 있는 직위로, 임기는 6개월로 제한되었다.
를 예로 제시하면서, 국가의 보존을 위해서, 전체 또는 다수의 이익을 위해서 때때로 제한된 독재체제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요소의 그의 이론에서 중우정치와, 독재정치가 파생되는 결과를 나타나게 된다.
3. 현실과 비판
두 사상가의 이론은 당시의 급격한 사회변화와 맞물려 그들의 이론은 가다듬어 지지 않은 채로, 현실에 적용되었다. 이상을 실현할 수 있는 기회로도 볼 수 있지만, 미완의 이론에는 많은 허점이 존재했다.
홉스는 영국의 왕당파로, 청교도 혁명이 발생하자 프랑스로 망명하였다. 크롬웰의 신정부가 수립된 후 귀국하였으며, 그의 신생공화국에 대해서 큰 기대를 걸고, 새로운 국가의 탄생을 축하하면서 ‘리바이어던’을 저술했다. 국가의 강력한 권력을 옹호하는 그의 이론을 크롬웰의 새로운 정부에서 실현하고 싶어 했을 것이다. 그는 절대 군주제의 지지자였지만, 왕권신수설에는 반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크롬웰의 새로운 정부는 왕과 귀족을 배재하며 시작하였지만, 의회 해산을 거쳐, 결국에는 독재로 나아가 버렸다. 통치기간 동안 네덜란드와의 무역 경쟁 등에서 우위를 점하게 되기는 하였지만, 크롬웰이 죽자 왕정이 복고되었다. 크롬웰을 지지하는 입장이었지만, 정쟁에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홉스는 찰스 2세의 즉위 이후에도 연구를 계속해 나갈 수는 있었다. 기대를 걸었던, 크롬웰의 신생국은 홉스의 이상을 실현해주지 못하고 끝나버렸다. 크롬웰은 홉스의 사상을 가지고, 정부를 새운 것이 아니었다. 그에게 홉스의 의견은 하나의 조언에 불과하였을 것이다. 뒤의 명예혁명을 통하여, 영국은 사회계약론에 부응하는 사회를 만들었지만, 입헌 군주제가 시작됨으로써, 홉스의 이상인 강력한 군주제의 구현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루소는 자신의 저서 ‘사회계약론’에서 자신의 저서에서 분명이 자신의 이론이 이론일 뿐임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그의 이론은 결코 이론에 그치지 않았다. 그의 저술은 프랑스 혁명의 정신적 지주, 사상적 이정표가 되었다. 프랑스의 계급 갈등은 극에 달했고, 결국 과격한 혁명의 시대가 도래 하였다. 사회계약론은 루소에게는 자신의 주장에 불과했고, 그가 완전히 실현할 수 없었던 추상적인 이상을 정확히 알리기 위한 목적으로 쓴 순수한 이론을 추구한 사색인 것이었다. 즉, 루소의 의견은 더욱 가다듬어지고, 현실에 적응도를 높일 필요성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이론은 갑작스럽게도 실현의 기회를 접하게 되었고, 그 뒤를 이은 혁명가들이 루소의 이상을 따르기 위해, 상당히 급격하고, 과격한 혁명을 수행하게 되었다. 로베스피에르가 루소의 절대적인 신봉자였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그는 루소가 언급한 덕을 중요하게 생각하였으며, 그것을 위하여 공포정치를 시작하게 된다. 공포정치가 끝났지만, 사회의 혼란은 가중되었고, 결국 나폴레옹 제국의 탄생으로 이어져 버린다. 혁명 정부는 루소의 이상을 추구하는 사회였지만, 그의 이상에 반하는 사회가 나타나 버린 것이다.
두 철학가 모두 근대적인 사상을 제시하였다. 중세의 장기간적인 질서에 반발하는 것으로, 상당히 과격한 면을 가지고 있다. 현대 민주주의의 바탕이 되는 사회계약론을 주장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나 홉스와 루소는 모두 상당한 비판을 받고 있다. 그들의 사상이 틀린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들에게 시간이 없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고전이란 오랫동안 많은 사람에게 널리 읽히고 모범이 될 만한 작품을 의미한다. 루소와 홉스, 두 철학자의 저서는 시간적 여유도 없이 고전이 되어버렸다. 사상에 대한 비판은 그들 사상의 불완전한 이해 때문에 나타난 것으로 볼 수 있다. 로베스피에르를 비롯한 프랑스 혁명가들은 루소의 저서에서 자신들에게 필요한 부분만을 악용하였다. 고대 로마 시대의 독재관 제도에 찬성하는 루소의 의견만을 수렴하여, 로베스피에르는 독재 공포정치를 시작한다. 분명 급격한 사회변혁을 뒷받침하기 위한 이론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사회계약론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체로, 사회계약론을 현실에 옮겼다. 그 결과, 처음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사회로 나아갔고, 왕정 복고를 겪은 후에야, 근대국가로 나아가게 된다.
현대의 민주주의의 기본 개념을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그들의 철학은 충분한 역사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 그들의 이론을 통해 우리는 근대 시민사회로 이행되었으며, 결국 현대 사회의 바탕이 되었다. 또한 홉스, 루소의 사상은 현대 사상가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쳐, 현대 사상의 근간이 되고 있다. 시간이 충분히 지난 현대에서 그들의 이론의 이상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의 이론의 추종자들의 모습으로 그들의 이론을 비판할 수는 없는 것이다.

키워드

루소,   교육학,   철학
  • 가격2,000
  • 페이지수14페이지
  • 등록일2012.11.30
  • 저작시기2013.3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8230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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