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렌체에서 온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2 과제 서평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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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피렌체에서 온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2 과제 서평 완료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제 1장 - 서적 일지

• 첫 번째 : 미켈란젤로에 관한 참고서적의 일지와 서평---------------p.3∼14
• 두 번째 : 미켈란젤로의 작품 자료 --------------------------p.15∼18




제 2장 - 미켈란젤로의 일대기

•첫 번째 : 미켈란젤로는 살아있었다.----------------------------p.19




제 3장 - 미켈란젤로를 알아가면서...

•첫 번째 : 조사하면서 느낀점 -------------------------------p.20∼21
•두 번째 : 미켈란젤로에 대한 나의 생각------------------------p.22∼23

본문내용

고 무엇보다 세상의 그 어떤 권위보다 진리를 통해 자유로운 자유인 그리고 형제에 대한 깊고 따뜻한 정을 가진 참으로 훌륭한 인격자이다. 그의 인간됨을 설명하는 몇 가지 일화들은 아직도 생생히 기억이나지만 그중에서도 단연 '삐에타'에 얽힌 일화는 감동적이다.
그는 '허상'이나 '가상' 보다는 '실재'를 존중한 <실재론적 정신>을 가진 예술가이다. 그가 그린 벽화나 천정화 속의 사람들은 역대 그 어떤 화가들이 그린 인물보다 많은 수의 인물들을 그렸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그가 그린 그 수 많은 인물들 중 동일하거나 유사한 인물들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그는 그림 속의 어떤 인물을 그릴 때, 결코 상상하거나 다른 그림을 참조하지 않았다고 한다. 항상 스케치북을 들고 거리로 나가 자신의 그림 속의 인물과 유사한 분위기를 가진 사람들을 관찰하였고, 적당한 인물을 발견하면 바로 길거리에서 스케치를 시작하였다고 한다. 한 번은 예수그리스도를 닮은 인물을 찾았으나 도무지 적당한 인물을 찾을 수가 없었는데, 적당한 인물을 찾으려고 한달동안 로마의 구석수석을 헤매였다고 한다. 어느 날 드디어 적당한 인물을 찾고는 기뻐하면서 자신의 작업실로 초대하였는데, 그를 보조하든 시종들은 한결같이 불만이었다고 한다. 이유인 즉은 '그리스도'의 얼굴을 찾는다고 한 달 동안 고생하더니 기껏 '걸인' 한 명을 데려왔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진실을 꽤뚫는 미켈란젤로의 눈은 정확했다. 그리스도의 모델이 된 그 '걸인'은 후일 '모든 걸인들의 아버지'로 불리는 '성 베느와'였다.
미켈란젤로는 교황의 명령으로 벽화나 천정화를 그리기 시작했으나, 그의 그림을 그리는데 있어서 그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사명감에 의해서 그린 화가이다. 어느날 사다리 위에서 천정화를 그리고 있는 그에게 하인이 편지를 가지고 왔다. 그리고 편지를 받아든 그는 고개를 아래로 숙일 수가 없어서 편지를 하늘로 쳐들고 읽기 시작했다. 너무 오랫 동안 천정을 보고 그림을 그려서 고개가 뒤로 약 45도 가량 젖혀 있었고, 앞으로 숙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편지를 읽은 뒤 그대로 천정화를 계속 그리기 시작했다. 하인이 걱정이 되어 교황에게 보고했고, "몸도 생각하면서 작업을 하라"는 교황의 충고에 "영혼의 갈증이 육체의 선보다 더 귀한 것이죠"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 이후 그는 늘 하늘을 쳐다보며 산책을 했다고 한다. 그는 참으로 '소명의 인간'이었다. 오직 그가 해야할 일을 위해서 모든 시간과 노력과 생명을 소모한 예술가의 모습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존경할 만한 그의 인품은 '자유인'이다. 오직 진실과 진리만을 행위의 척도로 삼은 진정한 의미의 자유인이었다. 그가 그린 그림 속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거의 알몸으로 그려져 있다. 천지 창조 중 아담의 창조에서 조차 아담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나체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당연히 당시 고위 성직자들의 반발이 거셌다. 조선시대 대궐의 벽화에 누드를 그렸다고 상상해보라! 그것도 거기가 다 드러난... 그러나 조금만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신이 인간을 창조하는데 옷을 입혀서 창조했을까? 신이 만든 인간의 인체보다도 더 훌륭한 것이 세상에 있을 수 있을까? 벌거벗었다고 부끄러워하는 것은 인간이 지은 죄 때문이라고 성서는 말하고 있지 않는가! 추기경들의 성화에 못이겨 교황 역시도 몇 번이나 그를 설득 하려하였다. 그러나 그는 작업을 그만두거나 아니면 자신의 의지대로 그리게 허락하라고 말하며 결코 타협하지 않았다. 결국 그는 자신의 의지대로 그림을 그려 갔고, 그 일로 교황청 내의 수 많은 적들을 만들고 말았다. 사실상 교황의 보호가 없었다면 미켈란젤로는 성당의 벽화들을 계속 그려나가지 못했을 것이다. 당시 교황은 유일하게 미켈란젤로를 전적으로 믿고 있었던 단 한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런일 때문인가, 누구도 생각치 못했던 불행이 그에게 닥쳤다. 당시 한 수도원의 평범한 수도승이었던 그의 형이 '이단'이라는 누명을 쓰고 화형에 처해졌던 것이다. 그가 범한 괘심죄가 그의 형이 대신하여 받았던 것일까! 그러나 더욱 놀라운 것은 수도승인 형 주변의 대부분의 사람이 억울하다고 통곡을 하는데, 유독 미켈란젤로는 통곡도 울음도 항의도 하지 않고 침묵만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소문은 퍼져나가고 사람들은 '교황의 개가되더니, 자신의 형이 교황에게 화형당했는데도 눈물한 방울 흘리지 않는 파렴치한 인간이 되었다'라고 손가락질을 하였다. 그는 한달동안 두문불출하고 아무도 작업실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는 오직 작업에만 몰두를 했다. 자주 음식도 마다하고 잠도 자지않고 날을 꼬박 지세우며 무언가 작업에 몰두하였다. 한달 뒤, 그가 세상 사람들에게 내어 놓은 것은 조각상이었다. 살아 있는 진짜 사람의 크기와 정확히 크기가 동일한 조각상 하나! 그것은 죽은 예수의 시신을 끌어안고 비통해 하는 성모의 모습을 조각한 <삐에타>이다.
인간의 눈에는 억울하게 죽은 아들 예수를 끌어안고 비통해 하는 성모의 얼굴에는 세상 모든 억울한 이의 한과 슬픔, 진리와 선을 추구하다 오히려 불행을 떠 안게된 모든 선량한 사람들의 고뇌가 서려 있었고, 또한 신의 뜻을 위해 목숨을 내어놓은 거룩한 사랑의 죽음 앞에 존경을 표하는 참으로 신비한 표정이 서려있다. 성모의 깊은 슬픔과 고뇌 그리고 말할 수 없는 깊은 존경의 마음은 곧 미켈란젤로 자신의 것 이었다. 누구도 그러한 내면성이 없이는 그러한 작품을 산출할 수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걸작을 세상에 주기위해서 신은 그의 형을 일찍 천국으로 데려가게 한 것은 아닐까!
톨스토이는 진정한 화가란 그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건' 그릴 수 있는 화가라고 하였다. 자신이 그리고자 한, 인간이 지닌 거룩한 모습을 거지에게서 찾아내었고, 의인의 깊고 거룩한 슬픔을 자신의 내면에서 끌어내어 작품으로 승화시킨 미켈란젤로! 진정한 실재론이란 이러한 것이 아닐까. 외면의 표정 하나 하나 그리고 내면의 깊이와 분위기를 왜곡됨이 없이 과장하지도 않고 정확하게 그려내는 것! 어쩌면 이러한 것이 솔거의 작품세계에서도 나타나는 진정한 의미의 '사실주의', 즉 '실재론적 정신' 이 아닐까?

키워드

  • 가격4,000
  • 페이지수23페이지
  • 등록일2012.12.03
  • 저작시기2012.11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823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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