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소설의 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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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고전소설의 작자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론
 -소설에 관한 시대적 인식과 작가

Ⅱ. 본론
 1. 15세기 소설 창작 초기 단계에 밝혀진 작자들
  (1) 작가가 밝혀진 작품과 그 작자들
  (2) 비판적 지식인
 2. 18세기 소설작품의 대량 유통기
  (1) 직업적 작자층, 그리고 몰락 양반층
  (2) 여성 작자와 공동 창작
 3. 장르로 본 소설의 작자
  (1) 판소리계 소설의 작자
  (2)대하소설의 작자층
 4. 작가가 문제시되는 소설들
  (1)최치원의 작가 문제
  (2)홍길동전의 작가 문제

Ⅲ.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라 작품 도처에서 수시로 발견된다. 이런 ‘전지적 작가시점’은 우리 고전소설 전반에서 발
견되는 보편적 현상이기도 하다.
또한 <보월빙>의 후편인 <윤하정삼문취록>에서 펼쳐질 사건담에 관한 예고적 설명이
전편 (<보월빙>) 작품의 도처에 깔려있는 점에서 이러한 작품 내적 진술이 작가가 아닌
후대인에 의해 작품 말미에 첨부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의구심 해소시켜줌.
따라서 작품 말미의 작품 제작동기 및 작자에 관한 일련의 진술은 작품 제작에 관한 사실정보가 아닌 작품 내용에 관한 신빙성을 제고하기 위한 일종의 작품 전개 기법에 해당된다.
4) 작가의식에서 본 작자층?
: <보월빙>연작의 작품 구조를 통해 추출되는 작가의 서술시각 내지 작가의식으로 볼 때,
→이 작품의 작자층은 종래 일부의 견해인 몰락양반층이 아니라 상층 벌열일 것임.
(p.76) <보월빙연작>에서 드러나는 작가의식에 따르면 전총적 신분 체계를 비롯한 일체
의 기존체제의 당위성과 충, 효, 열 등의 도덕규범은 하늘의 뜻에서 나오는 것이므로 이
에 대한 거역이나 변화의 추구는 용납될 수도 가능하지도 않다. 뿐만 아니라 인간은 ‘人
名在天’이라는 숙명론에 따라 각자의 신분과 분수에 맞게 살아야 하며 이를 거역하려는
인위적 노력이나 의지는 결국 파멸의 결과를 낳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상택, 위의 책, 76
∴ 조선조 대하소설의 향유층, 즉 작자층과 독자층이 일단 양반 사대부였으리라는 추측.
조선 후기사회에서의 소설에 대한 인식이 매우 긍정적인 방향으로 격상되고 있었음.
(p.76~77)조선조 사대부층의 소설관이 지극히 부정적이었으며 조선조 소설의 익명성이
주로 이러한 사회분위기에서 연유하고 있으나 조선조 후기에 와서 사정이 달라진다.
이유원의 『임하필기』에 실려있는 <소씨명행록>이라는 국문 소설의 창작에 관한 기록
(<한국 고전소설의 세계> p.103)에서 이원요의 꿈에 소씨라 자칭하는 여자가 나타나 깨
어나 형제와 숙질이 도와 후편을 짓다가 제사를 늦게 모시게 된 것에 대해 이유원이 ‘문
자의 묘가 입신지경에 이른 것’으로 찬탄하는 태도에서 엄격한 소설 배격론과는 굉장한
차이를 두고 있음을 볼 수 있다.
(p.78)이 밖에도 조선조 후기의 상층 지식인이나 벌열층의 인식은 매우 긍정적으로 바뀌
었으며 소설향유의 열의도 매우 높았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이종태는
고종황제의 어명을 받들어 소설 언번 작업에 관여했을 수 있는 것이며 그가 언번한 일련
의 소설작품은 <명주보월빙>처럼 한문본으로 이미 행세해 오던 작품을 국문본으로 언번
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4. 작가가 문제시되는 소설들
(1)최치원의 작자 문제.
- 나말여초 문인 원작설
최치원과 그리 멀지 않거나 동시대에 생존하면서 신라 붕괴와 고려 건국의 역사적 사건을 체험했을 唐유학생 출신의 신라계 문사 또는『수이전』의 저자일 가능성이 높다는 추정을 바탕으로한 박인량 원작설 등이 있다.
이 견해의 주된 논거는 작품 출전인 『수이전』의 저자가 박인량임이 유력하다는 것, 작품의 회고적 성격상 최치원 자신의 이야기를 썼을 가능성이 적다는 것, 작품 말미에 있는 種牧丹 至今猶存(최치원이 심은 모란이 지금도 있다)라는 표현이다.
최치원과 대동소이한 처지에 있었거나 적어도 최치원의 처지에 공감할 만한 처지에 있던 지식인 내지는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최치원이 느꼈던 고독감을 그처럼 잘 포착해 소설호할 수 는 없었으리라는 것이 그러한 추정의 중요한 근거이다. 이런식으로 사유해 들어가면 최치원의 작자는 나말여초를 살았던 6두품출신의 문인지식인이었을 개연성이 높다고 볼 수 있다.
- 조선조 문인 재창작설
박일용은 작품에 드러나는 비판적 지식이층의 소외의식과 비판의식 등을 고려하여 「최치원」을 기존 최치원 전설을 바탕으로 조선초기 어느 문인의 손에 의해 재창작된 전기계 소설이라고 추정한다. 하지만 이것은 소설의 발생을 조선 초기로 보는 견해에 따른 것이다.
- 최치원 원작설
김건곤은 삽입시의 풍격, 운자의 쓰임, 辭語에 대한 검토 등을 토대로 작품이 최치원 본인에 의해 창작되었을 것임을 논증한 바 있다. 그리고 최치원의 당에서의 행적을 작품의 내용과 연관지어 해석해 볼 때 「최치원」은 「유선굴」과 「심경」의 형식을 기본 설정으로 차용하고 있지만 세부 내용에서는 최치원 자신의 개인적 체험과 처지, 세계관이 반영되어있다.
주인공이 처한 소외된 처지의 부각, 서사적 흥미 요소와 화려한 시문의 과시, 그리고 여귀와의 만남의 이면에 교묘히 삽입시킨 당대 사회 현실의 배경 등의 측면을 고려해 볼 때, 이 작품은 최치원이 고변에게 자신의 처지와 재능을 알리기 위한 의도적인 목적 하에 지어졌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최치원의 당에서의 행적과 작품의 내용, 삽입시의 성격, 관습적 어구의 활용 등을 살펴볼 때 「최치원」의 원작자는 최치원 본인일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작품의 기본 성격은 최치원이 율수 현위로 재직했을 당시의 체험적 사실을 바탕으로 기존 전기의 설정을 빌어 자신의 입장과 처지를 표백한 것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2)홍길동전
Ⅲ. 결론
위에서 한국 소설은 독자 소설이라고 하였다. 대부분의 소설들의 작자가 알려지지 않은 이유를 시대나 문단의 분위기 외에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소설의 주 독자라 할 수 있는 상층여성독자들은 작가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사대부 신분일 때는 물론이고 그렇지 않을 때에도 여성 독자에게 환영받을 소설을 보수를 받고 쓰는 것은 체면이 많이 손상되는 일이어서 작가가 자기 이름을 내놓을 수 없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소설 창작에 있어서 중국과 일본에서는 남성이 대부분인 것에 반해 한국소설은 여성독자소설이 기본 특징인 것을 봤을 때 남성 작가들이 다 지었다고 볼 수 없다. 여성 작가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여성작품을 남성 작가가 본뜨는 일이 흔히 있었다고 추정되는 것이 한국소설에서 특기할 사항이다.
*참고문헌
박희병, 한국 전기소설의 미학, 돌베개
이상택, <한국 고전소설의 이론>, 새문사
조동일, <한국문학통사3>, 지식산업사
조인호, 고소설사의 전개와 서사문학, 아세아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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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3.02.08
  • 저작시기2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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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830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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