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관][여성문학][금오신화][박씨전][설국][한국인][여성][여성문학 여성관][금오신화 여성관][박씨전 여성관]여성문학의 여성관, 금오신화의 여성관, 박씨전의 여성관, 설국의 여성관, 한국인의 여성관 분석
본 자료는 4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해당 자료는 4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4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소개글

[여성관][여성문학][금오신화][박씨전][설국][한국인][여성][여성문학 여성관][금오신화 여성관][박씨전 여성관]여성문학의 여성관, 금오신화의 여성관, 박씨전의 여성관, 설국의 여성관, 한국인의 여성관 분석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개요

Ⅱ. 여성문학의 여성관
1. 이경자의 『절반의 실패』
2. 박완서의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
3. 이문열의 『선택』
4. 양귀자의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5. 공지영의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Ⅲ. 금오신화의 여성관

Ⅳ. 박씨전의 여성관

Ⅴ. 설국의 여성관
1. 고마코에게 나타난 모성적 여성상
2. 요코에게 나타난 모성적 여성상

Ⅵ. 한국인의 여성관

참고문헌

본문내용

져 있었다.」
이렇듯 고마코의 外的인 아름다움인 官能도 作品속에서 오래 지속되지 않고 사라지게 된다. 女性의 아름다움을 추구한 가와바타가 고마코에게서 外的인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관능을 소멸시키고 內的인 아름다움이라 할 수 있는 母性을 나타낸 이유는 무엇일까? 이것은 앞에서도 말한바와 같이 성장배경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즉 어머니의 죽음으로 인해 모성애를 모르고 자라게 됨으로 인한 그것에 대한 갈구, 이것으로 인해 어머니의 품속과 같은 자연으로의 회귀욕구도 나온 것이라 생각된다. 그래서 고마코에게서 관능적인 아름다움을 소멸시키고 마지막에 ‘은하수’ 안으로 승화되어가는 모습을 통해 모성적인 여성상을 갖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2. 요코에게 나타난 모성적 여성상
요코가 사랑하는 그러나 육체적, 지리적으로 먼 곳에 존재하는 男子들이 두 명이 있다. 유키오와 남동생 이들은 먼 곳에 존재하므로 요코의 사랑에 응하는 경우가 전혀 없다. 그래서 그 사랑은 ‘헛수고’의 사랑이 된다. 그런데 그 사랑이 헛수고이면 일수록, 또 無償이면 일수록 아름다움과 순수함은 증가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사랑에서 官能이 제거되고 純粹한 동경만의 사랑, 그리고 한없이 주고 대가를 바라지 않는 곧 母性的인 사랑이 엿보인다.
아래의 場面에서 肉體的으로 가까이 할 수 없는 유키오를 간호하는 모습을 통해 잘 나타나 있다.
「두 사람의 거동으로는 부부처럼 보이긴 했지만, 사내는 분명히 환자였다. 환자를 상대하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남녀라는 거리가 없어지고…(中略)…사실 자기보다도 나이가 많은 사내를 돌보는 앳된 여인의 어머니 같은 태도는…」
이 장면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은 병든 아이를 간호하는 母이다.
그리고 아래의 장면에서도 요코가 어린이를 좋아하는 모성적인 상이 나타난다.
「옆에 있는 여탕에 요코가 여관집 아이를 데리고 들어왔다. 옷을 벗기거나 씻어 주거나 하는 것이 여간 친절하게 구는 것이 아니어서 나이어린 어머니의 달콤한 목소리를 듣는 것처럼 호감이 갔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 요코는 누에고치창고의 화재로 昇天하고 대우주의 품에 안기면서 더 큰 母의 성질을 부여받는다.
「그 필사적으로 힘껏 버틴 얼굴 밑에 요코의 승천할 듯이 멍해진 얼굴이 늘어져 있었다. 고마코는 자신의 희생인지 형벌인지를 안고 있는 듯이 보였다.…(中略)…그렇게 말하는 목소리가 미친 듯이 보이는 고마코에게 시마무라가 가까이 다가가려고 하다가 요코를 고마코에게서 빼앗아 안으려고 하는 사나이들에게 밀려서 비틀거렸다.…(中略)…쏴아하는 소리를 내면서 은하수가 시마무라의 속으로 흘러내리는 것 같았다.」
위와 같이 승천함으로써 요코에게 부여된 모든 俗性과는 단절되고 오직 聖母的인 像 하나로 결합되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고마코와 시마무라 사이를 갈라놓음으로서 고마코에게 부여된 관능적인 아름다움을 소멸시키고 모성 하나만을 남게 하고 있다.
Ⅵ. 한국인의 여성관
인류역사의 흐름과 다를 바 없이 한국 사회는 전통적으로 \'가\'(家)를 단위로 하여 남자를 그 대표자로 삼는 가부장권 제도가 확립되어 왔다. 이 가부장권 제도는 소유권 사상, 사유재산제도와 결합하여 여성의 신분과 지위를 낮은 것으로 만들어왔는데, 후대로 내려오면 올수록 여성의 지위는 낮아지게 되어 조선왕조 후기에는 여성의 자유가 극도로 속박되고 지위가 낮아졌다.
가부장권 제도를 기반으로 한 여성하위의 관념은, 신라의 삼국통일과 더불어 다량의 중국 문물을 흡수하면서 유교적인 남존여비적 여성관으로 고착되었다. 유교적인 여성관은 오륜(五倫)에 있는 부부유별란으로 집약되는데, 이것은 \"남성에 대해 여성이 순종하는 것은 하늘의 이치\"라고 하는 사상이다. 이러한 부부유별에서 오는 여성의 위치는 매우 제한되고 불합리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유교의 전통적인 여성관이었으며 신라시대에 흡수되어 조선사회 전체를 장악하게 되었던 것이다.
조선시대에 있어서 여성의 생활은 \'가정\'을 벗어나지 못했다. 불가피하게 외출을 해야 할 때에는 너울로 얼굴을 가려야만 했다. 이것은 여성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곳은 오직 \'가정\' 뿐이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전통적인 가족제도 하에서 여성은 부계혈통을 잇기 위한 자녀출산과 양육이 주요 임무였다. 가족을 위해 아이를 낳고 집안을 보살피는 등 때로는 여종으로의 비하까지도 감수해야 했다. 따라서 여자는, 무능력자이며 종속적이고 의존성이 강하므로 집에 가두어 놓고 길들여야 한다는 생각이 사회전체에 팽대했다.
가족구성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혼인의 경우도, 두 사람의 결합은 개인과 개인의 결합이 아니라 가와 가(家)의 결속이었다. 결혼 후에 여성들은, 남편과 자녀뿐만 아니라 시부모, 시누이, 시동생 등 시집식구들과 함께 지내면서 자유로운 외출은 물론 친정에 가는 것도 평생에 몇 번 갈까 말까 할 정도로 집안에 갇혀 쉴새 없이 일을 해야만 했다. 우리나라 속담에 \'며느리는 문서 없는 종이다\'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여성의 위치는 억압적이며 열등했다.
이러한 여성 억압의 양태는 조선 말기를 지나 개화기를 거치면서 잠시 회복되는 듯도 했으나, 여전히 여성은 가정중심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으며, 근대화가 추진된 후에도 남성은 경제적, 사회적 우월성을 독점하고 여성은가정내에서의 정서적 역할 수행만을 강요받았다.
종속적 여성관의 실태는 인류역사 속에 잘 나타나 있다. 남자들은 여성을 그들의 보조적 존재로 밖에 보지 않았으며, 침묵을 강요하고 현모양처로서의 교육을 강화했다. 그리고 여성들의 역할범주도 가정 내의 순종적 영역에만 국한 시켰다. 이러한 여성관은 기독교 역사에 있어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참고문헌
김종택, 한국인의 전통적인 여성관 : 속언·속담을 통하여, 대구가톨릭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1978
이인숙, 이문열 소설 선택에 나타난 여성관 연구, 인제대학교, 2004
이귀복, 금오신화에 나타난 김시습의 여성존중의식, 수서원, 2006
이원수, 박씨전에 나타난 여성관, 한국어문학회, 2000
정순원, 천단강성의 작품에 나타난 여성상 고찰 : 설국과 산소리를 중심으로, 원광대학교, 2007
최유찬, 한국 여성 문학의 흐름, 숙명여자대학교 한국어문화연구소, 2007
  • 가격7,500
  • 페이지수14페이지
  • 등록일2013.07.12
  • 저작시기2021.3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858443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