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정부의부동산정책
본 자료는 1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해당 자료는 1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1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소개글

박정희정부의부동산정책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개발위주의 토지정책
2. 산업구조 개편을 위한 토지법제 정비
3. 개발에 따른 부작용과 토지정책

본문내용

1979년 7.6%, 그리고 1980년에는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게 되었다. 이에 정부는 1978년「부동산투기지역고시」라는 행정적 조치로 대응하여, 투기지역으로 고시된 지역에서는 양도차익계산을 내무부 시가표준액을 기준으로 하지 않고 국세청이 별도로 고시한 ‘기준시가’를 기준으로 산출토록 하였고, 동년 8월 8일 정부는 투기억제 종합대책을 발표하여 양도소득특별공제제도를 폐지하고 2년 미만 보유 부동산에 대해 80%의 법인세특별부가세율과 양도소득세율을 적용토록 하는 등 투기지역 기준시가제도를 법제화하였다. 또한 토지금고가 해체되고 1979년 한국토지개발공사가 출범하였다. 곧이어 1979년 8월 30일 은행감독원은 50억원 이상의 은행부채가 있는 412개 기업체가 비업무용 토지 520만평을 보유하고 있음을 발표하였는데, 이들 기업체에 대해서 1980년 말까지 이들 비업무용 토지를 모두 처분하도록 촉구하는 등「토지공개념」과「금융실명제」 실시여건을 조성코자 노력하였지만 1026 사태로 무산되고 말았다. 조영진,「전게서」, pp.221~222.
박정희 정부는 불도저식으로 국토개발을 추진했으며, 이 시기는 정보를 이용한 국내부동산 투자나 투기의 태동기였다. 오늘날 최고의 아파트단지로 인식되고 있는 동부이촌동, 반포, 압구정, 잠실이 재벌과 나눠먹기식으로 진행된 한강백사장매립에 의해 탄생했다. 이른바 대규모 공유수면매립사업은 재벌과 정치권이 벌인 최대의 투기잔치였던 셈이다. 또한 경부고속도로 건설, 여의도, 영동주택단지조성사업 등도 이 같은 한탕식의 투기가 감행된 전형적인 후진국형 부동산정책과 부동산투기의 시작이었다.
  • 가격1,000
  • 페이지수5페이지
  • 등록일2010.05.03
  • 저작시기2010.5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859618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