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신공정기술, 산업기술, 전자기술, 정보통신기술]한국의 신공정기술, 한국의 산업기술, 한국의 전자기술, 한국의 정보통신기술(ICT), 한국의 우주기술, 한국의 해양과학기술, 한국의 농업기술, 한국 영화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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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 신공정기술, 산업기술, 전자기술, 정보통신기술]한국의 신공정기술, 한국의 산업기술, 한국의 전자기술, 한국의 정보통신기술(ICT), 한국의 우주기술, 한국의 해양과학기술, 한국의 농업기술, 한국 영화기술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한국의 신공정기술

Ⅱ. 한국의 산업기술

Ⅲ. 한국의 전자기술

Ⅳ. 한국의 정보통신기술(ICT)

Ⅴ. 한국의 우주기술
1. 위성체 설계
1) 고해상도 전자광학카메라
2) 저해상도 카메라
3) 과학 측정 센서
4) 탑재체 데이터 전송시스템
5) 구조 및 열제어계
6) 자세제어계
7) 추진계
8) 전력계
9) 원격측정 명령계
2. 국내 제작부품

Ⅵ. 한국의 해양과학기술
1. 해양기초기반 기술
2. 해양환경보전 및 방제 기술

Ⅶ. 한국의 농업기술

Ⅷ. 한국의 영화기술
1. 입체영화
2. 70mm 영화

참고문헌

본문내용

에서 다 같이 주연을 맡고 있으며 <난중일기>의 김기영 감독이 김씨의 작품을 맡으리라는 얘기가 나돌아 충무공 영화를 둘러싼 3파전은 자칫 잘못하다가는 법정에까지 번질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이순신”도 70mm로 제작되지 못했다. 특히 김진규의 <성웅 이순신>은 총 제작비 1억5천-2억, 제작기간 3년, 감독 3번 교체, 해전 씬 특수촬영, 동원인원 10만, 네거티브 필름만 8만자(평균 1만2천자-1만5천자 사용)가 소요되는 등 대규모로 제작되었다. 그러나 제작비가 부족해 35mm 시네마스코프 촬영으로 끝났다.
그러나 태창흥업은 <이순신>을 준비하면서 장석준의 기획에 따라 70mm 카메라를 제작하고 있었다. 렌즈를 수입하고 장석준의 설계에 따라 몸체를 만드는 작업이 계속되었다. 결국 장석준이 70mm 카메라를 완성하여 <춘향전>(70)을 70mm로 만들게 되었다. 첫 유성영화, 첫 컬러시네마스코프에 이어 “춘향전”이라는 전통적 소재와 기술 실험이 다시 만나는 순간이었다.
흥행저조로 불황에 허덕이는 영화계는 피차 사운을 걸고 대작에서 돌파구를 찾고 있다. 잇따라 제작발표가 쏟아져 나온 70mm 영화가 바로 그런 몸부림. 태창은 지난 30일 오후 종묘에서 70mm <춘향전>을 떠들썩하게 공개 크랭크인했다.
이번 태창 영화사에서는 본방 희유의 TODD AO식 70미리 촬영기를 2년간의 기일속에 개발하였는데 1대2 비율의 웅휘한 화면으로 펼쳐지는 태창 70미리 푸로세스의 위력은 영사화면 미국 다드 AO 푸로세스와 동일한 비율인 1대2로서 촬영은 6사운드 추럭을 함께 수용하는 70미리 1본을 율동하는 방식을 택하였고, 촬영렌즈는 미첼제의 76미리 대서용 68미리 및 44미리 근사용, 22미리의 파노라믹용 세 가지를 사용하였는데 필림 스피드는 1분간 140.25피드 1초에 30후레임이다. 카메라 셔터는 디졸빙 타입으로 최대 170도 개방이 가능하며 노출은 1초와 1/60초이다.
그러나 70mm 영화 제작은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촬영기를 완성했다 해도 사운드 작업, 현상, 인화 등으로 이어지는 완전한 공정을 마련해야 했기 때문이다. 독자적인 한 세트의 시스템을 갖추어야 하는 일이었다. 이 작업에 참여했던 나상원은, 한 작품만을 위한 기재라는 점을 감안하여 적당히 제작한 부분도 있었다고 한다. 70mm <춘향전>은 평균 작 4편의 제작비가 든다는 기사도 있지만, 기술개발비 명목으로 지출된 부분을 제외하면 컬러 시네마스코프 2편 정도의 제작비가 들었다.
힘겨운 과정을 거쳐 자본과 인력을 투입하였으나 <춘향전>의 결과는 그리 좋지 않았다. 가장 문제가 되었던 것은 입체녹음이었다. 70mm 영화는 마그네틱 코팅을 한 사운드필름을 사용해야 한다. 그런데 장석준이 일본에서 들여온 8mm 녹음 코팅기를 모델로 70mm 녹음 코팅장치를 제작한 것이 화근이었다. 자체 제작한 사운드 코팅기를 사용하여 생필름에 코팅처리 한 후 녹음하였으나 제대로 되지 않아 사운드가 형편없이 떨어졌다.
스카라극장에서 전야제를 한다구 해서 다 갔었는데 춘향이가 그네 타고 노는 장면인데 사운드는 양철 지붕 위에 소나기가 쏟아지는 소리가 나는 거야. 그 정도로 시끄러워요 …중략… 사운드 코팅을 해서 건조를 시켜야 했는데 건조기가 없어요. 여름에 히터 틀고 선풍기를 비쳐 가며 사운드 코팅을 했다구. 필름을 보다가 건너 뛴 데는 코팅약을 갖다 놓고 붓으로 칠했다구. 두께가 다 달랐을 텐데 사운드가 제대로 들어갔을 리가 없지. 엄청 고생했지. 부산 대영극장인가 추석날인가 날짜 잡아놓고 추석날 아침에 비행기로 내려갔을 거예요. 나중에 급해 가지고 변칙을 쓴 게 몇 개 있는데, 재 촬영을 해야 되는데 35mm로 촬영해서 확대한 것도 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70mm <춘향전>은 스카라극장에서 12만 5천명의 관객을 모아 “큰 손해는 보지 않았다”고 한다. 국산 70mm에 이끌린 관객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70mm는 오랫동안 영화계의 관심사였지만, <춘향전>이 별다른 성공을 거두지 못하면서 쉽사리 포기되었다. “70mm에 진이 빠졌다”는 김태수의 말이 힘들었던 상황을 대변하고 있다. 결국 70mm 영화는 <춘향전> 단 한편에 그치고 말았다.
영화진흥조합이 1970년 8월부터 국산영화 제작비 융자사업 실시함에 따라, 1971년 70mm 명목으로 <서울의 찬가> <마의 태자> <황토기> 등 3편 융자받았다. 신필름도 <아이러브마마>(75)를 70mm로 제작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 영화들 역시 35mm 시네마스코프로 완성되었다. 이 사례는 기술의 국산화가 다다를 수 있었던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다. 국내에서 자체적으로 고급한 기술을 실현하는 것은 그만큼 어려웠다.
와이드스크린 시대를 맞아 웅장한 화면이 볼거리로 제공되면서 차별적인 기술이 전면에 나타나게 되었다. 그러나 영화 내용보다 부각되는 테크놀로지는 주객이 전도되는 느낌을 주기도 했다.
영화가 점차로 대형화해 감에 따라 점점 초창기 모습으로 되돌아가는 것 같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결국 영화가 처음 나왔을 때처럼 구경거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얘기다.
영화의 기술요소는 의미를 전달하는 수단일 뿐 아니라 영화의 존재방식이기도 하다. 그러나 70년을 전후하여 나타난 기술 실험들은 그다지 성공적이지도, 새로운 기술표준으로 전환되지도 못했다. 영화산업의 세계적인 하향세를 반영하는 일이었다. 이 시기의 기술에 관해 더욱 중요한 것은 ‘기술 국산화’와 결탁한 지배담론의 영향이다. 앞에서 인용한 입체영화나 70mm 카메라에 관한 기사에서도 나타나지만 테크니스코프는 이점이 보다 분명하게 드러난다.
참고문헌
강길모 외 3명, 해양과학기술(MT)의 현안과 활성화 방안 연구, 해양환경·안적학회, 2006
박인수 외 1명, 정보통신기술(ICT) 표준화 정책, 대한전자공학회, 2009
오영균, 산업기술연구회평가에 대한 메타평가, 한국정책분석평가학회, 2011
염재철, 영화 기술의 발전과 영화의 변모에 관한 미학적 고찰, 한국미학회, 2005
장주수 외 6명, 전자기술의 발전과 전자부품 기본 고장률의 추이, 한국철도학회, 2011
전용수, 우주기술개발사업 예산안 분석, 대한민국국회,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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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3.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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